코쟁이 나라의 원불교 종법사
죽산 황도국 종사, 
미국종법사 임명을 축하하며


“코쟁이들이 비행기로 너그들을 모셔갈 것이다. 나를 본 눈이라도 한번 보자고 할 것이다. 너그들 호강하는 꼴 눈이셔서 어찌 볼거나.”

이 말씀을 받든 어느 선진님은 그날 저녁 일기장에 ‘종사주께서 오늘도 부황한 말씀을 하셨다’고 적었다.

코쟁이 나라 미국에 원불교 종법사가 임명됐다.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미뤄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사십여 명일 때 대종사께서는 남녀 수위단원 조직방안을 발표하셨다.

“저 사람들이 언답을 막으면 옥녀봉에 박을 심고,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했던 몽매한 무리들, 그들의 조롱과 비웃음은 결국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W이론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서울대 이면우 교수는 교단 초창기, 9인 선진님들의 백지 혈인기도에 대해 “원불교는 죽기를 각오하고 문을 연 교단”이라고 정의했다.  원기 60년대, 대산종사께서 해외 종법사를 천명하셨고, 2대 말에 다시 부촉하셨으나, 대중은 그 뜻을 받들지 못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 코쟁이 나라 미국에 원불교 종법사가 임명됐다.

대종사님과 대산종사께서 하신 그 말씀이 천어이며, 성현께서 하신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코쟁이들이 우리의 교법을 받들어 실천하고 대종사를 뵈었던 우리 선진님들을 뵙고자 비행기로 모셔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조원오 원로교무

[2021년 1월 22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