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진 교학대 서원관 교무

[원불교신문=송우진 교무] 손편지 받아보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요즘은 손편지가 아주 귀하지요. 인터넷이 발달되고, 이메일이 생기고, 스마트폰이 전 국민에게 보급되고, 메시지와 카톡이 일상이 되며 그 빠른 전달에 편리하긴 하지만 마음을 꼭꼭 눌러담은 손편지는 더 귀해져서 누군가로부터 손편지를 받으면 그 정성에 마음이 따듯해지곤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도 소식을 전하실 때 서한을 이용하셨는데요. 대종사님께서 구타원님에게 보냈던 서한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어서 소개드리려 합니다.
 

송우진 교무
송우진 교무

구타원님께 보낸 대종사님의 서한
때는 을축년 2월 20일입니다. 을축년 1925년(원기10년)은 대종사님께서 변산시대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익산 전법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때입니다. 불법연구회 창립총회(원기9년)를 열고 총부기지를 확정, 훈련법이 발표되며 첫 정기훈련을 시작하고, 교서들을 준비하던 시기입니다. 또한 서울 교화를 준비하시고자 서울로 행가 하시어 경성교화의 인연을 맺으신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기 구타원 종사님께 서한을 보내셨어요. 서한의 내용은 먼저 안부를 묻고 구타원님의 장자 박남기의 법명을 박창기로 하자는 내용, 불법연구회 규칙안과 일기법식을 등서하는 것에 대한 당부를 하시는 내용입니다. 그중 초반부에 이러한 당부가 나옵니다. 

“처사는 별고 없으나 사무에 분망중 쉬는 때가 없습니다. 어서 성불하시어 처사를 즐겁게 하여주시오. 처사가 이제 이와같이 인난 하오나 공주의 성불할 기약만을 바라고 바라나이다. 어서 성불하시어 불우한 여성을 맡아가시오. 고독하다고 마시고 어서 성불하시오, 고독하기로 성불할 기약이 있나이다.”

구타원 이공주 종사님은 그 사회의 엘리트 여성이었습니다. 신학문을 배웠고, 시독으로서 궁중법도에도 능했습니다. 하지만, 부군과 사별하고 인생에 큰 슬픔에 빠져있을 때 대종사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발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시작해 초창기 여성 구인 제자로서 대종사님의 법문을 가장 많이 수필하시어 법낭이라 불리셨고 소의경전 편찬에 참여하시었으며, 경성교화의 산파가 되시고, 초기교단의 경제적으로 토대가 되어주어 대봉도의 문열이를 하셨습니다. 또한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 역대 주법들을 보필하신 교단의 큰 선진님입니다.

“어서 성불하시오. 고독하다 마시고 어서 성불하시오.” 성불이라는 말을 이 짧은 문장에 다섯 번이나 사용하며 어떤 고난과 역경도 다 성불의 거름 삼아 나아가라고 다독이십니다. 대종사님께서 보내신 이 서한이 원망과 좌절과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구타원님께 얼마나 따듯하고 가슴깊이 울리는 격려였을까요. 세상사의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말고, 성불제중이라는 서원을 어서 이루자는 다짐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서한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봅니다. 만약 대종사님께서 나에게 서한을 내려주신다면 어떤 내용의 서한을 주셨을까요. 경계에 흔들리고, 세상사에 지치기도 하고, 혹 기쁨에 넘치고, 혹 슬픔에 무너지는 저에게 그렇지만 이 고해를 벗어나 보겠다고 지금 대종사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저에게 손편지를 써주신다면 어떤 글을 주실까요. 

 

대종사님께서 나에게 손편지를 
보내주신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요?

변산에서 법의 그물을 만든 이유
대종사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시기는 온 세계가 혼돈에 빠져있던 시기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의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온 인류가 원망과 고통에서 헤매던 시기였습니다. 그 암울한 세상을 통찰하시며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개교표어를 천명하시고 일원대도 건설을 시작하십니다. 영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구인제자를 모으시고 법인기도와 방언공사로 회상의 창립정신의 기초를 다진 후 세상을 건질 교법의 그물을 짜셨던 변산시대 그리고, 결속한 인연과 교법으로 온 인류를 구원할 회상을 펼친 익산 전법시대를 열어가며 일원대도를 펼쳤습니다.

일전에 변산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봉래정사에 가기 위해 잠시 머물던 종곡유숙터에서 대종사님을 곧 뵐 생각에 설레했을 제자들의 마음을 느껴보았습니다, 봉래정사 앞에 앉아 100여 년 전 밤마다 월명암에서 험한 길을 내려오셨던 정산종사님, 법설을 열심히 수필하며 보필하신 주산종사님, 열심히 일하시던 송적벽, 김남천 선진님과 시봉을 정성스럽게 하던 김혜월, 이청풍 모녀,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오신 똥이라도 먹을 신심의 장적조, 구남수, 이만갑, 최도화, 서중안 선진님들을 떠올렸습니다.
 
험한 궁곡에서 온 인류를 구원할 새 회상을 열기 위해 인연을 준비하시고, 법을 준비하셨던 그 시절을 만나며 우리가 공부하는 이 일원대도의 교법이 일시적 광명으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위대한 경륜으로 하나씩 정교하게 직조된 중생을 건질 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종사님께서는 교법을 하나씩 실행, 점검하며 새롭게 또 고치며 회상 창립을 향해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성교화를 위해 한 걸음을 내딛은 그 시기 구타원 종사님께 어서 성불하라는 부촉의 서한을 보내신 것입니다. 만약, 대종사님께서 지금 4대를 열어가는 우리들에게 서한을 보내신다면 어떤 부촉을 해주셨을까요.


감정의 붓을 밤늦게까지 
예비교무 시절 공부를 하며 『정전』을 저술하시던 대종사님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부촉품 3장에 잘 드러나 있는데요. 

“대종사 열반을 일 년 앞두시고 그동안 진행되어 오던 『정전』 편찬을 자주 재촉하시며 감정의 붓을 들으시매 시간이 밤중에 미치는 때가 잦으시더니, 드디어 성편되매 바로 인쇄에 붙이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때가 급하여 이제 만전을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나의 일생 포부와 경륜이 그 대요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나니, 삼가 받아 가져서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이 법이 후세 만대에 길이 전하게 하라. 앞으로 세계 사람들이 이 법을 알아보고 크게 감격하고 봉대 할 사람이 수가 없으리라.’”

저는 앞부분이 특히 와 닿았어요. 열반을 앞두시고 늦은 밤 호롱불에 의지해 한 문구 한 문구를 적고 다시 쓰는 날이 자주 계시던 대종사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가고 난 뒤에 중생들이 성불을 향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염려하시고, 이 표현이 적확할지 저 표현이 적확한지 고민하던 대종사님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절로 뭉클해집니다.

결국 대종사님께서 바라고 바라시던 것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우리들의 성불입니다.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 진급이 되고 은혜를 입으며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게 되는 것. 쉽게 말해 온 인류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나도 가족도 이웃도 사회도 세계도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것. 집집마다 부처가 사는 세상이 오는 것.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드러나는 참 좋은 세상, 우리가 그 세상의 주인이 되기를 다만 어서 성불하기만을 그것 하나 바라지 않으셨을까요.


너희들이 성불하기만을
전 생각해봅니다. 구타원님께 보내주신 간절한 서한은 구타원님께만 내려준 것이 아니라 바로 저에게 내려준 서한이고, 바로 우리에게 내려준 서한입니다. 그래서 아마 저에게 글을 주신다면 너희들이 어서 성불하기만을 바라고 바라니라 이렇게 써주셨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인생의 한복판 괴로움의 바다에 헤맬지라도 우리 교법을 믿고 실천해 어서 성불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란다고, 나는 길을 몰라 고생했지만, 너희들은 내가 펴놓은 일원대도로 편히 갈 수 있으니 어서어서 공부하고 실천해서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너만 벗어나지 말고, 고통받는 온 인류도 벗어나도록 도와주라고 모두 다 함께 어서어서…. 
“오직 너희들 성불하기를 바라고 바라니라.” 대종사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셨을 서한을 기억하고, 일원상을 마음에 품고, 삼학 팔조 사은사요의 교법을 실천하며 어서! 어서! 성불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미륵불 용화회상의 주인이 됩시다. 전 인류를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큰 공도자가 됩시다. 감사합니다. 

[2021년 2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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