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홍제교당 교도

[원불교신문=조익현 기자] 교전을 처음 읽으면서 “어, 맞아, 이거야,내가 잘못 살았구나, 두부를 칼로 자르듯 올바르게 살았는데, 그래야 잘사는 것으로 알았는데 잘못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교전으로 몸과 마음을 고치고, 또 고치며 사는 것이 즐거운 성타원 김은주 교도(73·星陀圓 金恩珠·홍제교당)를 만났다. 인터뷰 요청할 때부터 지난 시절을 빼곡히 적은 수첩 글을 봤을 때 작은 일에도 준비를 잘 하고 진심을 다하는 신앙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김은주 교도는 마령교당이 있는 고향에서 자랐다. 결혼 후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게 되어 마령교당에서 천도재를 올리면서 서울 상계교당에 고향 친구가 교무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시절 같이 총부도 다닌 동창이면서 사촌지간이었다고 한다. 원기61년 상계교당에 찾아간 것이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자네는 원래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니 뜻을 알려고 하면 어려우니 무조건 읽기만 해, 이 교전을 4번만 읽으면 효자가 안 될 사람 없어.” 

김 교도는 교전을 받아 들고 지하철 안에서 첫 장을 넘기면서 교전을 읽는 순간 “빈틈없이 앞만 보고 살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있어, 이렇게 좋은 것이 있었나, 내가 왜 헤매고 다녔지”라는 생각에 그날부터 잠도 안 오고 며칠 밤을 새며 교전을 정독했다. 두 번째 읽으면서 이해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필사를 시작했다. 교전을 읽고 쓰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라면 한 박스 분량의 필사를 하면서도 교당을 다닐 생각은 못했다. 잠도 안 자면서 읽고 쓰고 너무 재미있었다. “그전부터 마음에 병이 있어 몸이 좋지 않았어요. 마음을 잡을 곳도 없었는데 교전을 읽고 쓰는 동안 무거운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이 생기거나 화가 나면 교전만 붙잡았고, 그렇게 교전은 누더기가 되었다. 

“제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아들만 셋인데 군대식으로 훈육만 했었어요.” 교전을 보는 순간부터 “내가 어떻게 살았던 거야, 그동안 내 자식을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인 거야”라는 참회가 됐다. 일이 생기면 스스로 일정한 기간을 두고, 일주일 정성스럽게 고치고, 안되면 열흘, 하나씩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으로 병원 다니는 횟수가 줄어들고 건강이 회복됐다. 

“어느날 혼자서 참회문을 읽으면서 너무 눈물이 났어요.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해결하고 교전에서 말한 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교당을 다니기로 결심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친구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교당을 다니니 많은 교도들과 법 공부하면서 성격도 바뀌게 되었다는 김 교도다.  

 

교전봉독, 라면 한 박스 분량 필사
훈련과 공부를 놓지 않고 정진하면 끝내 이뤄져

“김은주 너 잘왔다” 
김 교도에게 어느 날 암이 찾아왔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진통이 오면 교전을 놓지 않고 끝내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사은님 저는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제가 꼭 필요하시다면 이번에 데려가도 좋지만, 저도 봉사라는 것을 해보게 저 좀 살려 주세요.”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서해안 기름 유출 때 잘 걷지도 못하면서 봉사를 시작했다. 서울역 노숙자 밥차 봉사도 그때 시작했다. 그러나 김교도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여서 남들과 달리 몸이 풍선처럼 부풀고 숨이차고 건강이 더디게 회복됐다. 

여름 어느 날 원음방송을 듣는 중에 만덕산 여름 훈련소식이 들렸다. 갈 수 없는 몸인데,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세 며느리에게 말하니 모두 응원해 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항상 며느리들에게 감사하다. 

김 교도는 훈련 중 숨이 차고 아픈 몸으로 높은 산 위 초선지 기도터에 앉아 좌선을 하는데, 회오리바람이 온몸을 감싸면서 “김은주 너 잘 왔다”라는 울림에 한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힘들었던 몸이 갑자기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훈련을 마치고 풍선같이 부풀었던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회복이 됐다. 훈련과 공부를 놓지 않고 정진하면 끝내 이루어진다는 진실을 알게 됐다.
 

신성품 11장, 공부 표준
김 교도는 원불교 교도로 후회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저도 사람인지라 몸이 아플 때 전 교무님께 섭섭한 것이 있었어요.”『대종경』 신성품 11장 “봄 바람은 사(私)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 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고, 성현들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주지마는 신 있는 사람이라야 그 법을 오롯이 받아 갈 수 있나니라”라는 새로 부임한 교무님 첫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전 교무님께 미안해서 많이 울었다. 

“신심이 없어 내가 아픈 것만 생각하고, 오롯이 그 법을 받을 수 없었던 그때가 가장 후회스러웠어요.” 그래서 김 교도는 요즘 신성품 11장을 표준으로 신심공부에 정진하고 있다. “공부가 따로 있나요,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다른 것이 들어와, 꾸준히 챙기는 것하고 대충 하는 것이 천지 차이지요. 항상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을 공부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전을 읽고 필사하면서 요즘 눈물을 흘린다는 김 교도는 원불교를 만나 가장 행복한 일은 일원가족을 이룬 것이라 했다. 

그는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온전한 몸과 온전한 마음으로 교당에 끊임없이 다니는 것밖에 없다”라고 소망을 작은 소리로 힘 있게 말했다. 입춘이 지나 쌀쌀한 날에 봄바람은 이미 김 교도로부터 따뜻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2021년 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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