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이 다가온다. 독립을 향한 절실한 외침이 울려 퍼진 102년 전 그날. 덕분에 우린 국가의 주권을 되찾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 독립과 자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원불교 교도로서 ‘독립’을 생각해 보면 개교의 동기에 밝힌 ‘물질의 노예 생활’이란 구절이 함께 떠오른다. 대종사는 물질의 세력이 날로 융성해짐에 따라 사람의 정신이 쇠약해지는 것을 경고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제시했다.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함이 원불교 개교의 동기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는다는 것은 물질을 등한시하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은연중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높게 여기고, 물질을 추구하는 것은 저속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대종사는 육신에 관한 의·식·주 삼건과 정신에 관한 일심·알음알이·실행의 삼건을 합해 육대강령이라 칭하며,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로 이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생활에 결함이 있게 되고 모든 일을 원만히 이루기 힘들다고 했다. 다만 정신의 세 강령을 잘 공부하면 육신의 의식주가 자연히 따라오는 이치가 있다며 그 본(本)과 말(末)을 밝혔다.

한때 아침저녁으로 주식 방송을 들으며 주식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이 마음의 자유까지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부를 축적해 경제적 제약으로 뭔가를 못 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나를 돌아봤다. 나 역시 예전보다 수월해지긴 했지만 완전한 마음의 자유를 얻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에겐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경제적 제약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마음 닦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나는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 친구들을 잠시나마 한심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에 큰 참회가 됐다.

정산종사는 “과거에는 도인들이 누더기 옷으로 초야에 묻히어 가난과 천함을 스스로 달게 받았으나, 미래에는 도가 있을수록 부와 귀가 스스로 따르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도인들은 청빈을 사치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므로 돌아오는 물질도 공사에 쓴다”고 부언했다(도운편6장). 능히 활용할 수 있는 물질이 있음에도 공을 위해 쓰고 스스로 청빈을 택한 것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청빈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르다.

무슨 일에나 자유자재하려면 자력이 필요하다. 정신의 자주력(自主力), 육신의 자활력(自活力), 경제의 자립력(自立力). 이 중 무엇 하나가 빠져서는 진정한 독립과 자유는 어렵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침이 없는 공부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자.

[2021년 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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