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명 편집국장
윤관명 편집국장

지난달 19일 ‘민중의 벗’이자 ‘행동하는 씨알’이었던 백기완 선생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노제와 영결식이 엄수됐다. 발인 후 운구행렬을 따르는 300여 명 시민들의 왼쪽 가슴에는 ‘남김없이’라고 쓰인 하얀 리본이 있었고, ‘노나메기 세상’이라 적힌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평생을 이 땅의 노동자와 민중들과 함께한 백기완 선생은 “나는 아무것도 못 되는 사람이다. 그저 사람이다. 민중이다. 민중은 민초(民草)라니 풀 같은 것이다. 나는 풀이다”라며 스스로 가장 낮은 곳에 처해 평생을 재야의 삶을 살았다. 그가 평소에 외쳤던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살되 함께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이다. 그가 남긴 말과 행동은 사회운동가들의 사표가 됐다.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이 있다. 지난 3일 육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전역된 변희수 전 하사가 숨졌다. 변 하사는 현역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첫 현역 군인이다.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강제전역을 통보받은 그는 “저는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계속 남고 싶습니다. 저의 성별 정체성을 떠나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변 하사는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잘 사는 세상’과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과거 어두웠던 시대가 지나고 세상의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인종·남녀·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식이 되고 있다. 교단 내 남녀차별이었던 여성교역자에 대한 차별제도가 개선되었으나, 교단정서와 경제적 이유로 완비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감수성 또한 미흡하다. 시대변화와 더불어 종교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의 퇴락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종교인들의 의식의 문제가 아닐까. 수천 년 동안 종교가 번성해 온 것도 시대를 뛰어넘는 선지자의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단 4대를 준비하는 설계특별위원회가 시작됐다. 4차산업·인공지능·기후변화 등 발전하는 사회변화를 연구하고 미래전망을 통해 4대를 설계하겠지만, 그보다 우선 소태산 대종사가 당시의 차별과 불합리를 먼저 개선하고 실천했던 초기교단을 되돌아봐야 하겠다. 교단 미래설계는 초기교단의 세상보다 앞선 시대정신을 되살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교법의 시대화·사회화·대중화는 시대 흐름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원불교가 추구하는 함께 잘 사는 은혜로운 세상 건설이라는 본래 가치를 실천하는 데 있을 것이다. 

[2021년 3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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