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오 교무는  법당의 장의자를 직접 제작하는 등 교당 곳곳을 손봐 교도들이 편안하게 교당을 내왕할 수 있게 했다.
이정오 교무는 법당의 장의자를 직접 제작하는 등 교당 곳곳을 손봐 교도들이 편안하게 교당을 내왕할 수 있게 했다.

[원불교신문=권원준 기자] 오전 9시 30분 노란 승합차 한 대가 교당마당으로 들어선다. 운전석이 열리고, 이정오 교무는 후다닥 달려가 뒷문을 열고 할머니 교도들 손을 잡고 부축을 한다. 그러곤 다시 차에 올라타 “다녀올게요” 눈인사를 살며시 하고 다시금 차를 출발시킨다. 3월 11일 목요일 충남 금산에 있는 제원교당 법회의 시작을 알리는 풍경이다. 편안하고 정겹다. 교무도 교도도 교당도 그리고 교당을 둘러싼 나지막한 언덕에서 봄소식을 앞다퉈 알려줄 아름드리 벚나무들까지.


충청도 교화의 종갓집
이런 정겨움 속에 범상치 않은 교당의 대각전 모습이 눈에 띈다. 꼭 중앙총부의 대각전을 축소해 놓은 모습이다. 출입구 위에 새겨진 대각전 글씨부터 양옆의 출입구, 신발 벗는 곳, 창문구조, 불단 모습까지 하나하나가 교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제원교당의 역사를 가늠해 보기 위해 세월을 거슬러 오르니 66년이란 장구한 시간이 어려있었다. 원기42년 설립된 제원교당은 정유진 교도(종사)가 “결혼하거든 어느 곳에서 살던지 교당을 만들고 알뜰한 후원자가 되라”는 대종사의 유시를 받으면서 비롯됐다. 정 교도는 원기40년, 결혼 후에 제원으로 이사를 한다. 교당이 없던 곳이었기에 먼저 원불교를 알리고 교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교도집을 빌려 법회를 열었다. 그렇게 원기42년 교도집 사랑채를 교당으로 만들어 교당인가를 받았고 2년 후 지금의 자리에 대각전을 건축했다. 제원교당 초대로 정자선 교무가 부임해 교화가 더 융성해졌고, 이후 금산·추부·대전·유성·논산·영동·옥천교당 설립을 하며 충청 교화의 종갓집이 됐다. 
 

이정오 교무가 법회시간에 교도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정오 교무가 법회시간에 교도들과 소통하고 있다.

인도품 중 “효는 백행의 근본이니라”
강산도 여섯 번이나 변했을 60여 년의 세월. 그 세월을 지낸 제원교당도 많이 변했다. 충청 전역을 누비며 교화의 씨앗을 뿌린 교도들도 그 세월을 함께하며 75세 교도가 막내일 정도로 연로해 있었다. 10년 전 제원교당 출장 법회로 첫 인연을 맺은 이정오 교무는 3년 전 이곳 주임교무로 부임해 다시 교도들과 인연을 이었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그이기에 부임하자마자 교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교화목표로 정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일생을 살아온 교도들이기에 “이제는 아낌없이 받으세요”라고 말하며 자식이 되어 부모 봉양하듯 ‘효도교화’를 시작한 것이다. “친구를 학생법회에 데려오기 위해 공을 들였던 학생회원, 교당건축 당시 돌과 모래를 지고 날랐던 청년회원, 시어머니 따라 교당을 다니며 공양준비 하던 일반회원들이 지금은 세월이 흘러 노구의 몸이 되었어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합니다. 이제는 그때처럼 교당일도 못하고 교당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 다시며 저에게 미안해하시죠. 한없이 해주고도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부모님의 마음입니다”라며 “이런 분들이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습니다. 또 일찍이 열반하신 제 부모님께 다하지 못했던 효도를 대신한다는 생각도 들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는 효를 실천하기 위해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다. 먼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교도들을 위해 교당 환경개선부터 했다. 법당용 장의자를 교도들 체형에 맞게 3가지 규격으로 직접 제작했고, 법당 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출입구 손잡이도 부착했다. 또 법당으로 오는 경사지에 15미터 길이의 손잡이를 심고, 경사면이 끝나는 부분에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는 평상을 만드는 등 교도들이 편안하게 교당을 내왕할 수 있도록 했다.
 

법회 후 교도들과 기념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법회 후 교도들과 기념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다음은 교도들과 함께 공부하는 교당을 만들었다. 교당 사정상 초청 법사를 오랫동안 모시지 못했는데 원기104년의 사축이재에 김혜봉 종사를 초청한 것이 법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해 10월 종법사의 내왕이 정점을 찍게 했다. “우리 교도님들에게 종법사님 방문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창립 이래 몇십 년 만에 맞이하는 감동과 위로, 희열의 시간이었죠. 그 이후 공부를 하고 싶다는 교도님들의 요청으로 정전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수시로 교당을 오가며 이뤄졌고 법회를 통해 속깊은 공부가 되도록 했다. 이날 법회에서 훈련법을 공부한 교도들은 “우리 선상님 감사합니다. 다 하라고 하면 못 할 텐데 한 가지라도 열심히 하면 된다 하니 한번 해 볼게요”라며 공부하는 재미를 몸소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교무는 교도들이 우리 회상과의 인연을 두텁게 하기 위해 성지순례(교당탐방)와 가족입교 운동을 펼쳤다. 성지순례는 언제든지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관광을 겸해 진행했다. “처음 간 곳은 완도교당과 완도 일대였습니다. 교구장님이 도와주셔서 대형버스로 다녀왔죠. 그동안 교당에 잘 다니지 않으셨던 교도님들,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까지 함께하며 자연스레 원불교를 가깝게 할 수 있도록 해 더 의미 있었습니다.” 이후 북전주 교당에서 받은 노란 승합차를 이용해 시간과 건강이 가능한 교도들과 수시로 순례를 잇고 있다. 또 가족이 정법회상과 인연 맺을 수 있도록 기회가 될 때마다 불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입교 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원기104년에는 32명, 원기105년에는 14명의 교도의 가족과 지역민이 입교해 불연을 맺었다. 가족교화에 목말라 있던 교도들의 마음에 큰 위안을 줄 방법이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이을 예정이다.
 

교도들과 영성성지순례 중 대종사탄생가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교도들과 영산성지순례 중 대종사탄생가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제원교당의 또 다른 역할
그가 제원교당에 온 첫해는 시골교당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피는 사람이 많았다. 그럴 때면 그는 “우리 교도님들과 함께여서 저는 행복해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제원교당의 10년 후 모습을 말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교도들의 고령화와 교역자의 부족이 더해져 제원교당 법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교역자 배치는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금 말을 꺼낸다. “교화구조개선 할 시기에 제일 먼저 제원교당이 선정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변 교당과 법회 날을 달리하기 위해 삼순일로 조정했지요. 누구든지 출장 와서 법회를 꾸준히 이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이곳이 청정기도 도량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 이곳은 특히 하늘의 기운이 크게 열린 곳이니 종가교당의 위상과 교도님들의 정성이 더해져 충분히 그 역할을 할 곳입니다. 그 역할을 위해 법당 실내를 개축할 예정입니다. 교도님들의 노력과 교당을 후원해주신 분들의 정성으로 비용도 차곡차곡 마련돼 곧 성사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는 제원교당의 머지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또 다른 역할을 준비하고 있었다. 

“콩깍지가 씌어 언제나 ‘선상님, 선상님’하며 교무를 하늘이 보낸 천사요, 부처님 같다고 합장하시는 우리 교도님들입니다.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이제는 힘이 없는 노부모 같은 모습이지만 그 속에는 초창기 교단을 일군 지혜와 정을 가득 담고 있는 분들이죠.” 제원교당 교도들과의 하루하루가 행복이라는 그는 오랫동안 이 행복을 간직하며 어르신들께 효도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식사자리에서 옆에 앉은 교도가 “우리 선상님 다른 곳 가시면 안 되는데” 하며 “우리 선상님 여기저기서 데리고 가려고 하죠?”하고 묻는다. 진심 어린 물음에 서로가 얼마나 심심상련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각전(원기44년 건축, 왼쪽)과 생활관(오른쪽) 전경이다.
대각전(원기44년 건축, 왼쪽)과 생활관(오른쪽) 전경이다.

머지않아 교당을 둘러싼 아름드리 벚나무가 꽃망울 터트리며 봄날을 재촉할 것이다. 봄소식을 알리는 벚꽃처럼 제원교당은 초창기 충청도 교화의 봄소식을 알리는 봄의 전령이었다. 그렇게 60여 년의 역사를 일궈온 제원교당이 이제 기도 도량이라는 또 다른 역할로 새 봄맞이 단장을 하고 있다. 교도들과 이 교무의 바람처럼 이곳이 정성스러운 기도 도량이 되어 우리 교단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길 함께 염원한다.

[2021년 3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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