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량 원로교무
한길량 원로교무

혁신은 방향타이다
원불교 개교 2세기가 밝았다. 원기 원년(1916) 교조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大覺) 아래 정신개벽의 기치를 내걸고 교화·교육·자선의 교단 3대 사업목표를 전개해 온 역사가 세계화 속에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것이다. 교단 발전의 장단기 계획인 36년 단위의 창립 한도에 의하면, 원기108년(2023)에는 제3대를 마감하고 다음해부터 제4대를 맞이하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교단 전반에 대한 새로운 점검이 필요한 연유이며, 그 가운데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교육이다.

오늘을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부른다. 인공지능·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돼 나타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시대라는 말이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인류사회에 몰아친 작금의 코로나19(COVID-19)라는 감염병은 짧은 시간에 생활환경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간의 인고(忍苦)를 역경을 헤쳐나갈 저력으로 되살려 나갈 때인데, 대면(對面) 자체가 제약을 받게 되니 모든 국면에서 비대면 환경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담보할 교육 역시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가 화두 가운데 화두이다.  

대종사는 우리에게 먼저 외학과 외지를 털어버리는 참된 지혜 충만한 수행인으로 거듭나, 시대를 따라 모든 학문을 준비하라고 가르쳐 줬다.(최초 법어) 그리고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모든 후진을 두루 교육함으로써 세상의 문명을 촉진시키고 일체동포가 다 같이 낙원의 생활을 하자”(사요)고 교육을 기본교리로 밝혔다. 그 가르침에 바탕해 정산종사가 해방 후 원광대학교의 전신인 유일학림(1946)을 열었고 이어서 각급 교립학교가 세워졌다. 비로소 원불교 교육의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실력있는 교역자, 문명사회 주역
그간 교단은 재가·출가 교도가 하나 돼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왔고, 교화·자선(사회복지)과 함께 교육의 기관·시설을 널리 갖추면서 민족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었다. 유치원에서부터 중·고교, 대학과 대학원을 두루 설립해 교단에 봉공할 교역자를 석사학위자로 길러내고, 원불교 교육정신으로 문명사회의 주역이 될 수많은 인물들을 길러 사회에 내보냈다. 한국 교육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대안교육(代案敎育)을 제도권 교육으로 제도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것 역시 우리 교단이다. 다양화되고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교육환경에 능동적인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례이다. 원기70년(1985) 예비교무 교육개혁위원회를 발족한 것도 그러한 바탕 위에서 이뤄졌다. 당시 내놓은 기치가 ‘교육이 교운이다’였다. 다만, 이 위원회에서 도출된 교육개혁안이 현실에 바탕해 지속 가능하며 실현 가능한 대안이 돼 미래 교육의 방향타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향 찾기에 집중해 온 이념 중심의 개혁 방향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를 갖게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전』은 “교육은 세계를 진화시키는 근원이요 인류를 문명케 하는 기초니, 개인·가정·사회·국가의 성쇠와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 교육을 잘하고 잘못함에 있다”(교육)고 했다. 일반 사회현상을 보면, 교육의 양적 기회 확대(교육의 접근 기회 확장)로 인해 교육 수혜율은 높아지는 데 반해 질적 수준이 이에 못 미치는 비대칭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원기100년(2015)부터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한 출구 방책이었다. 그 기본 방향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모두 장려되고, 인간의 전인적 발달을 고려해 장기적 차원에서 계획돼야 하며, 다양한 사회적 기반을 활용해 전국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교단의 원창학원(원광 남녀 중·고등학교)에서 그 이전부터 시행해온 ‘귀공자 귀공주 인성교육프로그램’이 지역사회와 교육 당국의 찬사를 받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인구절벽 마을소멸’이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환경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연간 60여만 명을 지탱해 오던 신생아 출산이 2020년 27만 2410명으로 급격하게 저하됐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84로 OECD의 평균 1.63보다 낮다. 인구는 한 국가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마을 자원의 유지발전에서부터 교육·역사·문화·안전 등에 이르는 모든 사항이 이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4~5개 학교를 수용하던 면 단위 소재의 1개 학교 학생수가 20여 명 미만인 곳이 허다하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23.1명이지만 이런 인구 격감 추세라면 미래의 학교모습을 예측하는 일이 결코 어렵지만은 않다. 인구가 수도권으로만 몰려들기 때문에 과소·과밀(寡少過密)에 따른 시설·행정력의 소모가 얼마나 심한가? 학령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단계에 와 있음이 분명하다. 그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국가지도자들이 지탄받아도 할 말이 없는 이유이다.

 

오히려 초기 교단사에서 보여 줬던 인간화 교육, 
즉 도덕교육에 대한 열의를 오늘에 되살릴 때 
본질 달성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지혜로운 대처가 갈급(渴急)하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학교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우선 대학을 겨냥한 말이지만 나머지 다른 교육기관도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2021년 지방 소재의 주요 국립대학마저 입학정원을 충원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서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학령인구 감소의 여파는 유치원, 초등학교로부터 출발해 고등교육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이런 상황은 우환의 시작인 셈이다. 일전에 입시정책에 실패한 대학총장이 사임한 일은 남의 일이 아닌 이유이다. 

이런 시선으로 교단도 둘러봐야 할 때이다. 아니 많이 늦었고, 이런 현실과 미래를 내다 보면서 교단의 지도층에서는 이런 시대변화에 따라 교화, 교육, 자선의 제반 측면에서 대비를 방치해 오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교육 등이 사업으로 자리하고 있을 때는 기관을 늘려나가는 것이 발전의 첩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얼마나 양적으로 팽창했냐 보다는 질적으로 제고되고 있는가가 보다 관심의 대상으로 변했다. 따라서 교육에 있어서도 오히려 초기 교단사에서 보여줬던 인간화 교육, 즉 도덕교육에 대한 열의를 오늘에 되살릴 때 본질 달성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종사의 경륜이 정산종사를 통해 실현된 원광대학교와 대산종사의 경륜으로 실현된 영산선학대학교를 대립 구도로 놓고 예비교무 교육을 논의하는 양태는 반성해야 할 일이다. 입시정책에 실패한 지도자가 상하 불통으로 독선(獨善)을 외친다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헤드쉽이 아니라 리더쉽이라야 바르게 설 수 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Amy Chua, 1962- )는 자신의 저서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에서 말한다. 제국이 그 역할을 다하려면 첫째 관용(寬容)이요, 둘째 경찰력이며, 셋째 이를 뒷받침할 경제라고 갈파했다. 교단이 사회에 사랑받으면서 넓은 세계의 수 많은 생령을 두루 구제하는 길을 대종사는 교화·교육·자선으로 일러주셨으니, 실로 적실한 가르침이다. 교당을 중심으로 자력없는 사람들을 정신개벽의 지도자로 거듭나게 하는 교화력을 발휘하고, 이를 뒷바침할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며, 사회복지기관을 중심으로 사회에 교단의 여력을 선순환시키는 사회복지활동을 전개한다면 민중이 절로 따르지 않겠는가? 교화와 교육과 자선이 하나요 교운, 곧 교단의 미래가 이 목표실천에 있는 것이다.

[2021년 3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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