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정 대구경북교의회의장
김도정 대구경북교의회의장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올해 새로 대구경북교의회의장을 맡게 된 도산 김도정(道山 金道政·70·한실교당) 교도. 그는 의장직 수락 이유를 서산대사 휴정의 시 한 구절 인용으로 대신했다. 

‘풍정화유락(風定花猶落 바람은 고요한데 꽃이 떨어진다).’ 모든 일은 그냥 오는 법이 없고 다 인과임을 아니 받아들일 일만 남았다는 말이다. 
“모든 일은 내가 원한 것도, 피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이렇게 오더라구요. 이것이 인연법이다 싶으니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구요. 인과는 받지 않으려고 하니 괴로운 것이지 받아들이고 나면 편안합니다.”

전임 의장을 통해 신임 의장직 의뢰가 들어왔을 때 처음엔 더 법 높은 사람을 찾아보라고 고사했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흔쾌히 수락했다. 인과가 호리도 틀림이 없음을 아니 새로운 의장단을 조직하면서 일일이 전화해 설득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대구에 유명한 미용실 간판 ‘머리할 때 됐다’가 바로 인과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싶었다. 30대 후반에 직장도, 재산도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잃을 때가 됐으니 다시 맨 땅에서 일어서야 했고, 21년 전 대구교당 연원으로 상인교당이 설립될 때 준비도 안 된 그가 얼떨결에 교도회장을 맡게 된 것도 지금 돌아보니 맡을 때가 됐으니 맡은 것이었다. 그렇게 교의회의장도 할 때가 됐으니 그에게 의뢰가 온 것이었다. 

“입교 초반에 인과를 배우면서 그동안 내가 지어놓은 이 많은 과를 어찌 다 받나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은 인과를 어떻게 피하겠나, 목숨이라면 목숨 값만큼 갚아야하는 것임을 받아들이니 모든 것이 저절로 다 풀렸습니다.”


어찌 다행 이 법 만나
30대 후반에 아내를 따라 삼덕교당에 첫발을 디뎠다. 그동안 불교건 기독교건 모든 종교는 자신의 안일만을 구하는 기복 행위라는 거부감이 있어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그의 선입관을 송명호 교무의 설교가 확 바꿔놓았다. 

“이 종교는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을 설명하는 종교다, 이 간단한 진리가 이렇게 많이 번져서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눈앞이 확 밝아졌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진리에 대한 설명은 없고 기복만 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다르구나, 두 가지 원리만 선명하니 이 공부는 해볼 만하다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자라면서 세상 공부는 대부분 학교 선생님한테 배워 옳고 그름의 기준도 교과서대로 배웠다. 그러다보니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분별과 주착 속에서 내가 다 맞는 줄 알고 자행자지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아찔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무명의 어리석음에 젖어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 법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삶의 전환점, 기복 넘어 진리의 종교 입문
설법 넘어 몸으로 보여준 스승의 큰 가르침

“좀 더 일찍 이 종교를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 겁니다. 종교의 중요성을 놓치고 늦게 출발하다보니 인생이 많이 흘러간 그때부터 공부가 시작됐으니까요. 사람을 대하고 삶을 사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절이나 교회에서 빌고 앉아있겠지요.”

공부는 경전이나 설법 말씀에만 있는 것이 아님도 배웠다. 아내 따라 처음으로 교당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 새로 부임했던 이현덕 부교무가 임기가 만료돼 총부의 원로교무 수도원으로 발령이 났다. 젊고 유능한 교무였는데 특히 요리 솜씨가 탁월해 뽑혀간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는 이 교무가 너무 아까웠다. 청운의 꿈을 품고 교무를 지원했는데 부엌에서 세월을 다 보낸다 싶어 총부에 갈 때마다 이 교무를 찾았다. 

“10여 년을 수도원에 계셨는데 일절 불만이 없으셨어요.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어서 보냈다 싶어 그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좋은 일, 나쁜 일, 높고 낮음이 없으셨어요. 인과를 할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흔쾌히 받으셨습니다. 이런 삶도 있구나하고 그분의 행동에서 배웠습니다.”

후래 대중이 법을 반가이 받들어 실행하는 일이 법을 받아서 후래 대중에게 전하는 일뿐만 아니라 스승이 법을 새로 내는 일과 삼위일체라고 하신 『대종경』 부촉품 말씀은 그가 가장 자주 인용하는 법문이다. 

“처음에 이 법문을 좋아했던 이유는 욕심 때문이었어요. 실행하는 나의 공덕이 대종사님과 같다고 하시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말씀은 법을 실행하는 나를 대종사님과 같은 평등의 자리로 올려주신 대자비로운 성인의 심법이시구나 느껴집니다.”

세상에는 글쟁이, 말쟁이 등 법을 안다는 사람은 매우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나는 잘 아는 사람이고 상대는 가르쳐야할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지혜가 아닌 지식을 붙잡아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기도 하다. 공부를 두고 기복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에게도 조석심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간절한 서원이 있다.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진리대로 살겠다는 기도입니다. 진리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진리대로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불지가 저 멀리 있는데 이제 겨우 들어섰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닦아야 하겠습니까.”


대구 경북 교화, 변화가 필요해
올해 초 의장을 맡으면서 소회가 복잡하다. 전국 대부분의 교구가 처한 어려움이 비슷하지만 특히 대구경북교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의 입장에서는 우리 교구의 심각성이 더 커 보인다. 막연하지만 대전제는 ‘이대로는 안 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교화를 선언적으로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학업 등으로 시간이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교당에 오면 재미가 없다는 젊은이들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구요. 종교만이 아닌 다양한 주제를 놓고 마음껏 깊은 속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문답감정의 방향도 손봐야 하구요.”

SNS를 통한 문자법문의 홍수 시대에 식상한 요즘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성 법문파일도 개발 중이라는 고민처럼 그에게 주어진 무게가 가볍지 않다. 

[2021년 4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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