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교단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다양한 진단과 해법이 나올 수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본원으로 돌아가 교단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되새겨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소태산은 대각 후 새로운 교문을 열면서 그 목적을 ‘개교의 동기’에 명확히 밝혔다.

동기(動機)란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다.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가 없으리요’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고통 받는 모습이 소태산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는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는 목적과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자비 방편의 실천을 낳았다. 

교단의 미래 역시 교단의 존재 이유를 밝힌 개교의 동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일체생령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국가, 사회, 가정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은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아픔에 등 돌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각 교구나 각 지역의 교당들은 지역사회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 중생들의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때 교단의 존재 이유도 명확해진다. 소태산이 그랬듯이 우리도 그래야 한다.

둘째, 광대무량한 낙원의 전망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도대체 어떤 세상, 어떤 삶, 어떤 마음가짐이 낙원에 가까운 것인지 소상하게 밝히고 보여줘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게 해야 한다. 소태산의 개교의 동기가 그들의 삶의 동기가 되어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실천이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 

셋째, 어떻게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인지 그 방법을 합리적이고 알기 쉽게 제시해야 한다. 즉,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임을 공감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재가출가 교도들이 먼저 속 깊은 마음공부로 체득해 지도인의 자격을 갖추고 세상 사람들에게 적합한 천만 방편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교당과 기관들에서 재가 출가 개벽의 일꾼들이 열심히 보은하며 교단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구성원들의 사명감과 교단의 구심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을 반조하고 서원을 반조할 때다. 그리고 반조의 기준은 마땅히 개교의 동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개교의 동기와 목적 그리고 방법론에 충실할 때 교단의 미래도 열릴 것이다. 교단의 존재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소태산은 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단을 열었고 우리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기에 모여 있지 않은가.

[2021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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