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종 성산교당 교도

[원불교신문=권원준 기자]  “원기67년 어느 날 영광의 군서교당을 스스로 찾았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알아봤죠. 나의 삶의 의지처라는 것을. 이후 한평생을 원불교만 알고 살았습니다. 만약 원불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삶은 어떠했을지….” 
원불교를 만나 모두가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보은행으로 살아가는 혜타원 양혜종(67·慧陀圓 梁惠宗) 성산교당 교도를 만났다.
 

양혜종 성산교당 교도
양혜종 성산교당 교도

절과 똑같단 말에 찾아간 교당
양 교도와 원불교의 인연은 필연이었을까? 젊을 때부터 절에 다니며 불연이 깊었던 그는 영광에서 원불교를 처음 만나게 됐다. “영광에 가게 됐는데 주위 인연들이 저에게 통일교로 가자고 며칠을 따라다녔습니다.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죠. 내일 또 온다는 소리에 길을 가다 본 동그라미가 생각났습니다. 절이랑 똑같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곳이 군서교당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교당, 가자마자 ‘이곳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무님의 마음 씀씀이와 법문 말씀,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후 양 교도는 원불교와의 인연을 깊이 감사하며 40여 년을 여여하게 신앙수행을 이어왔다.


교무님들과 가족의 은덕으로 
그는 제주도 성산에 정착하며 원기76년 성산교당으로 적을 옮겼다. 성산에서 교무들의 지도로 뿌리깊은 나무가 됐다. “성산교당을 거쳐 가신 교무님들께 참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가족까지 알뜰히 챙기셨죠. 그 은혜로 일원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아직도 저를 잊지 않고 늘 기도해주신다는 교무님들의 말씀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 은덕으로 제가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산교당을 다녀간 한 분 한 분의 교무를 기억하며 은혜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제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교당 일이라면 힘이 닿는 만큼 다 하고 싶습니다.” 이 마음을 담아 그는 교당에서 여성회장, 봉공회장, 교도부회장, 올해부터는 교도회장직을 수행하며 교당의 살림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교당의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도움이 컸다. 특히 남편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력자다. “제일 감사한 사람이 남편 제성규 교도입니다. 교당 일이라면 믿고 하게 해줬습니다.” 성산교당에서는 매년 대각개교절 은혜잔치를 열고 지역주민에게 국수나눔을 진행하고 있다. 그때마다 사업체인 유성반점을 행사장으로 흔쾌히 내준 것도 남편이었고 묵묵히 주방일을 도맡아 봉사를 이은 것도 남편이었다. 

“남편이 얼마 전 어렵게 시간을 내서 교도법위훈련에 참석했습니다. ‘참 좋았다’ 한마디를 하는데 그 말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또 자녀들도 교당을 좋아하며 집에 모셔진 법신불 전에 자연스럽게 사배를 올리는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가족까지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스승님과 더불어 가족의 은덕으로 행복하게 살아온 만큼 스승님과 가족에게 보은하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다음 생에는 
교무님이 되어
전세계를 다니며 
활동하고 싶습니다.

불연을 맺을 수 있도록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양 교도는 친정뿐만 아니라 시댁에서도 맏이로, 늘 가족을 돌봐야된다는 책임감으로 살았다. 시댁과 친정 부모에 대한 천도재는 물론 작년 4월에 열반한 남동생의 천도재까지 정성스럽게 지냈다. 불의의 사고로 7년여를 뇌사상태로 있었던 남동생을 아들처럼 여겼던 그였기에 삶의 허무함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마다 제가 갚아야 할 일이라 생각했죠. 누구의 탓도 아닌 내가 짊어져야 할 일이라 여기고 오직 한마음, 동생의 앞길에 혜광이 비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원불교를 만나 인과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원불교를 만나 이 모든 일을 무사히 극복해 내며 누구보다 불연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됐다. 그때부터 전 가족이 불연을 맺을 수 있도록 불공했다. 열반하신 양가 부모님, 동생도 천도재를 통해 불연을 맺게 했음은 물론 오빠, 동생도 입교를 시켰다. 

가족뿐만이 아니다. 10년 전 한 교도를 입교시켰던 이야기를 전했다. “딸이 중학교 다닐 때 중학교 어머니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때 한 학부모(한현진 교도)가 유난히 눈에 띄어 함께 학교 임원으로 일할 것을 권했고 그것이 인연이 돼 입교까지 시켜 지금은 성산교당의 교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는 가족, 가까운 인연에 꾸준히 불공해 24명이 불연을 맺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교도회장인 그는 “성산교당의 명성을 잇기 위해 교무님들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뒷받침하고 싶습니다”라며 “잠자는 교도는 물론 새로운 인연을 교당에 인도하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최자은 성산교당 교무와 함께.
최자은 성산교당 교무와 함께.

공부목표는 출가위
그는 이 법으로 공부하면 진급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 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청수를 떠 놓고 기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자란 덕에 지금도 법신불 전 청수를 떠 놓고 조석으로 심고를 올리며 기도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좌선, 독경 등으로 상시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고, 법회 한번 빠지지 않는 등 교도 4종의무를 철저히 지키며 교도로서의 모범이 되고 있다. 

최자은 성산교당 교무는 “몸은 하나인데 모든 일을 제 일처럼 여기며 이곳저곳 챙기지 않는 곳이 없다”며 신앙생활을 꾸준하게 이어나가 불퇴전하는 교도라고 망설임 없이 칭찬의 말을 전했다.

그는 교리공부를 통해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전했다. “전 소심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른 일을 봤을 때 그냥 넘길 때도 있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원불교인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기 싫어 그른 일을 하지 않으려 목표를 세웠죠. 

어느 날 사업장에 온 이웃 종교 성직자가 잘못된 행동을 하길래 모른 체할 수가 없었어요. 그분께 ‘전 원불교 교도인데 그른 일을 보고 넘어가는 건 작업취사 가르침에 어긋난 일이라 말씀 안 드릴 수가 없네요’ 하며 말씀드렸죠. 며칠 후 그분이 40명의 신도와 같이 와서 사장님이 작업취사 한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많이 반성했다며 사과하신 적이 있어요. 교법을 실천하려는 저를 보면서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제가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양 교도는 “제 공부목표는 출가위입니다. 또 다음 생에는 교무님이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며 활동하고 싶습니다”라고 이 공부에 정성을 다하는 이유를 밝혔다. “10년 전 법호를 받을 때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받았어요. 지금은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께서 공부를 통해 법사님 되고, 종사님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번 생에 안되면 다음 생에라도 끝까지 놓지 않고 공부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씩 서원이 커졌습니다. 서원을 세우면 꼭 이뤄진다는 것을 믿기에 정성을 놓지 않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주어진다 해도 그것을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우연히 찾은 교당. 하지만 그 우연을 놓치지 않고 최고의 기회로 삼은 양혜종 교도. ‘맹구우목’ 불연을 맺고 불법을 공부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살아온 그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금 불연의 소중함이 일깨워진다.

[2021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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