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 박장식 대원정사

상산 박장식 대원정사
상산 박장식 대원정사

무상과 참 제자 표준 보여준 여래
원기96년(2011) 5월 4일에 열린 제185회 임시수위단회에서 노환으로 열반한 상산 박장식(常山 朴將植 1911~2011) 종사의 법위를 출가위에서 대각여래위로 추존 결의했다. 
당시 경산종법사는 “상산종사는 교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숨은 공덕을 쌓으신 분이다”며 “이 어른은 무상과 참 제자의 표준을 보여준 여래셨다”고 말했다. 


“네가 올 줄 알았다”
일타원 박사시화의 연원으로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상산 박장식 대원정사는 원기23년(1938), 익산 총부에서 모친의 회갑을 모셔드리는 기연으로 소태산 대종사를 처음 만났다. 대종사는 “네가 올 줄 알았다”하며 기다린 듯 환한 미소로 상산종사를 맞이했다. 이 두 분의 역사적인 만남은 숙세의 깊은 인연이었다.

대종사는 “어려운 걸음이지만 며칠이라도 선을 나보라. 돌아오는 세상은 과학만 가지고는 안 되고 도학과 과학을 아울러 해야 큰 인격을 이루고 낙원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말씀했다. 상산종사는 대종사의 말씀을 받들어 열흘 동안 선을 나면서 여기가 바로 내 인생의 지표를 발견할 도량이며, 대종사가 영생토록 받들 스승임을 깨달았다.

상산종사는 퇴임 후 원로원에서 밝힌 소회를 통해 “내가 대종사를 새 주세불로 받들고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 좌산종법사님 법주를 모시고 살아왔으니 큰 홍복이 아니겠는가”하고 “대종사의 크신 은혜에 어떻게 다 보은하며, 벅차오르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내 생애에 가장 큰 기쁨이요, 소중하고 감사, 감사할 따름이다”고 밝혔다.


교단발전의 초석을 다지다
상산종사는 원기26년(1941)에 전무출신을 서원했으며 불법연구회 회규 정비, 정전 편수업무를 주관했다. 그 후 유일학림 초대학장, 원광중·고등학교 교장, 교정원장, 원불교 청년회 총재, 원광학원 이사장, 원불교신보 회장, 종교협의회 부회장, 미주교구 교령, 소태산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성업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상산종사는 원기60년(1975) 4월, 미국 주재 교령 발령을 받고 뉴욕으로 떠났다. 당시 상산종사의 나이 65세 되던 해이다. 대산종법사는 “미주 종법사로서 해외교화의 선봉이라는 책임과 사명감으로 해외교화의 터전을 닦으라”고 당부했다. 그 후 원기 65년(1980) 4월 뉴욕교당 봉불, 원기66년(1981) 8월 시카코 교당 봉불, 원기67년(1982) 하와이 교당 설립, 원기71년(1986) 삼보사를 인수해 덕산훈련원을 개원했으며 원기72년(1987년) 10월, 12년간의 미국 교화를 마무리 하고 귀국했다.  

상산 종사는 전무출신을 서원한 후 법규정비, 교서편찬, 교단행정, 후진교육, 해외교화 등 초창기 교단발전에 거룩한 업적을 남김으로써 그 이름이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평화를 위한 간절한 염원
상산종사의 평화에 대한 염원은 크고 간절했다. 원기58년(1973) 11월 26~30일까지 ‘평화를 위한 한·일종교자회의’가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됐다. 교단 대표로 참석한 상산 종사는 ‘현대에 있어서 종교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상산종사는 “현대사회에서 종교 소외의 책임은 종교인에게 있다”며 “세계평화와 인류구원의 책임 또한 종교인에게 있으며, 봉사와 실천으로 신뢰받는 종교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종교인들의 합력을 당부했다. 

상산종사는 이어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자신의 구제와 평화를 목적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면서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산종사는 자서전 『평화의 염원』에서 “모든 종교가 신앙하는 모습은 서로 다를지라도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가슴 속에 양심을 불러일으키고 양심에서 우러나온 은혜와 봉사로써 자기 구원과 사회정화와 세계평화를 이룩하는데 있다”고 전제하고 “우리 종교인은 먼저 각자의 양심에 불을 밝히고, 정치인의 양심에 불을 밝히고, 기업인들의 양심에 불을 밝히고, 모든 지도자의 양심에 불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젊은 스승에게 큰 절을 올리다
원기79년(1994) 9월 28일 10시 30분, 제40회 임시수위단회에서는 좌산 이광정(李廣淨) 남자 상임중앙단원을 새 종법사로 선출하고 이를 시방세계에 알리는 원음각의 범종이 33번 울렸다. 이때 상산종사와 중앙 남자원로원 원로 일행은 법은관 앞에서 좌산종법사에게 경건하고 극진히 큰절을 올렸다. 교단 최고 원로인 상산종사는 땅바닥에 엎드려 젊은 종법사에 큰절을 올려 교단과 종교계에 감동을 안겨줬다. 이는 다른 종교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상산종사와 죽산竹山 박씨들
상산종사는 1911년 1월 9일, 전북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내호곡길19)에 있는 몽심재(夢心齋)에서 태어났다. 몽심재는 조선 후기 전북지방 상류가정의 전형적인 가옥형태를 잘 보전하고 있는 건물로 원기69년(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상산 종사는 “우리의 꿈(夢)은 마음(心)공부를 잘하는 것(齋)”이요, 몽심재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바위 주일암(主壹岩)은 “일원대도가 주인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상산 종사의 뒤를 이어 죽산 박씨 가문에서는 박제인, 박성기, 박명제, 박영륜 등 56명의 전무출신이 배출됐다.


둘이면 안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둘이면 안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잘 될 것입니다.” 상산 종사의 최후 법문이다. 둘이면 안 된다. 서로 협력해야 한다. 총부와 기관, 교당이 하나가 되고, 재가와 출가가 하나 되고, 세상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상산 종사는 원기96년(2011) 5월 4일 세수 101세, 한 세기를 향기롭게 살고 열반에 드니 법랍 70년 4개월, 사업성적 정 특등, 공부성적 대각여래위이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상산 종사의 최후 법문 가운데에는 후진들에 대한 굳은 믿음과 교단의 화합과 발전을 위한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상산종사 열반 10주기를 맞아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염원했던 대종사의 포부와 경륜이 이 땅에 실현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우리 모두 정신개벽과 평화를 간절히 염원했던 상산 큰 스승님께 부끄럽지 않은 후진으로 거듭나기를 염원한다. 
 


“평생을 깊은 공부로 
여거여래如去如來 하시나니…”


장하던 명문대가의 부와 귀 접어두고
달려와 뵈온 스승, 숙연이다 반기시며
내리신 수기 받들어 평생적공하시다.

역대 스승 다 모신 후 젊은 스승 모실 적에
오체 투지하여 앞장서서 맞으시고
구순의 원로 예도가 한결 여여하시다.

상산 큰 스승님! 무상무착 대봉공인
평생의 속공부로 여거여래하시나니
두고두고 후래 대중의 만대 사표이소서.
두고두고 후래 대중의 만대 사표이소서.    


『평화의 염원』 중에서 
범산 이공전 헌시     

[2021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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