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권옹호·진보 법률전문가 지향
30여 년간 시민 목소리 대변

[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우리나라 역사에서 1980년 5월 18일은 뼈아픈 기억이 있는 날이다. 군사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인권은 처참히 무너졌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민중의 열망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견인했다. 시민사회의 곁에 서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함께 써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인권 변호 맥 이어
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뜻을 둔 변호사들의 모임이다. 우리나라의 인권 변호 또는 민권 변론의 맥을 잇고 있는 단체로 1980년대 만들어진 두 모임의 결합에서 비롯됐다. 망원동 수재사건과 구로동맹파업 사건을 계기로 1986년 5월 ‘정의실현 법조인회(이하 정법회)’가 결성된다. 이후 1988년에는 민주화운동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청년변호사회(이하 청변)’가 만들어졌다. 정법회와 청변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통합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고 그 결과 1988년 5월 민변이 탄생했다. 신구세대가 만나 ‘명망성’과 ‘활동성’을 결합할 수 있었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김도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민변은 당시 젊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변호사들과 이보다 앞선 1세대 인권변호사들로부터 시작됐다. 인권옹호와 진보적인 법률전문가를 지향하는 변호사 단체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변론
민변이 출범한 1988년은 권위주의 통치 속 국민들이 자유와 기본권을 억압당하고 있던 시기다.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민변의 절대적인 목표였다. 활동 초창기엔 계속되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변론했으며 진실 발견을 위한 노력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또 권위주의 시대 악법 청산과 양심수 석방 등에도 힘썼다. 

1995년을 지나면서 민변은 과거를 청산해야 할 중대한 기회라 인식했다. 검찰의 5.18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5·18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후 1997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헌정사상 첫 여야정권교체가 실현됐다. 민변의 시국사건 변론은 상대적으로 축소됐고 개혁적, 진보적인 법률가들에겐 역할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다가왔다. 민변은 공익 소송 활동 확대 방안을 모색했다. 인권단체로서의 위상을 유지·강화하면서 그 역량을 최대한 결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요 상임위원회로 공익소송위원회를 설치했으며 김포공항 소음피해 소송, 흡연 피해자 집단소송, 수해 피해 주민들 집단소송 등 다양한 공익소송을 진행했다.

2008년은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있었던 해였고, 이때도 민변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에 대해 10만 명을 국민청구인단으로 하는 헌법소원과 촛불집회 현장의 인권침해 감시활동, 연행자를 위한 변호인 접견, 수백 명 국민을 위한 무료변론을 했다.

 

공동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게
있다면 결국엔
평등으로 귀결된다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민변은 국가의 재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해 일어난 비극을 목격해야 했다. 승객과 직원 등 303명이 숨지고 141명이 다친 세월호 참사다. 민변은 특위를 구성해 유가족을 지원했다. 또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동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참사 7주기를 맞은 올해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민변의 대응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 회장은 “법률전문가로서 재판이나 검찰의 수사, 법원의 재판 판결에 대해서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다. 국가의 위법행위에 대해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업무를 소홀히 해 4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경 지휘부가 2월 15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해, 민변은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민변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재난 상황에서 핵심적인 의사결정 등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지휘부에 면죄부를 주고 현장에 출동한 말단 공무원들만을 처벌함으로써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성을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김 회장은 “책임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는 과정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 변호사들이 재판 소송에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고 전했다.


외면할 수 없는 미얀마 사태
2월,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가 벌어졌고 시민들은 항거했다. 불복종 운동에 나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3월 27일에는 최소 114명이 넘는 시민이 군경의 총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미얀마 사태에 대한 민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근 민변은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미얀마 군부의 시민 학살을 강력히 규탄한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국회결의안에 따라 조속히 조치를 취하라”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한 데 이어 유엔 안보리의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성숙한 국제사회에서 법을 통해 미얀마 민주화가 이뤄지길 바란다”는 김 회장은 “우리나라도 군사독재 정권 시절을 겪었고,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비극적인 역사와 아픔을 갖고 있다. 미얀마 사태와 관련해 적극적인 연대 활동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평등사회 지표
현재 민변이 주력하고 있는 활동 가운데 한가지가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민변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평등사회의 지표로 본다. 이 법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평등사회를 구현한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변에 따르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서 선언한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본법이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2007년 이래 10여 차례 이상 대한민국 정부에 인종,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인권이라는 건 자기 자신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결국엔 남을 존중한다는 거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공동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게 있다면 결국엔 평등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활동 폭이 다양화되는 등 그 양상은 바뀌고 있지만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기조엔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오늘도 계속되는 그들의 우직한 발걸음이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이끌고 있다.

[2021년 5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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