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106년 1월 25일 중앙총부 직원총회 법문

우리가 교단에 들어와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바로 ‘주인主人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예전에는 보통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한 말씀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출가위를 말씀하시면서 “출가위가 다른 것이 아니다. 교단이 내 일이다”고 하셨습니다. ‘교단이 내 일이다’를 다른 말로 하자면 ‘교단의 주인이 됐다’는 뜻이며, 조금 더 심오한 말로 바꾸면 ‘대의大義를 잡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신심 공심 있는 분이 바로 주인 
그러나 “교단 대의를 잡고 사는 사람이 주인이다”고 평소에 많이 쓰기는 했지만, 사실 그 개념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깊이 생각해보니 ‘교단 대의’라는 것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신심, 공심이 있으면 그분은 곧 ‘교단의 대의가 선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신심이 있으면 법의 대의가 서게 되고, 진리와 스승과 맥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심이 있으면 그분의 생각이 진리에 닿고, 스승에 닿고, 법에 닿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의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과거 종교에서는 깨달음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물론 우리 스승님께서도 깨침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력自力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자신 있게 신앙과 수행의 길을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단에서는 깨달음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이미 교법에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법은 결코 어렵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의 뜻을 몰라서 공부 못할 분은 여기에 한 분도 없습니다. 내가 실천이 안 돼서 못하는 것입니다. 이 일상수행의 요법 9조에 ‘견성·양성·솔성의 공부길’이 다 들어있습니다.
젊어서는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응당 그런가 했었는데, 대종사님의 교법은 생각해볼수록, 실천해볼수록, 살아볼수록 어쩌면 이렇게 법을 내실 수 있을까. 진정 성중성聖中聖이시요, 주세불主世佛이심을 자각하게 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내 법은 신심, 공심만 있으면 다 받아간다”하셨지만 어떻게 신심, 공심만을 가지고 법을 받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지극히 곡절하신 말씀입니다. 신심이 있으면 바로 법과 통하고, 공심이 있으면 세상과 회상에 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세가 갖춰진 그분은 대의가 있는 분이며 법의 주인, 세상의 주인, 회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볼 때 저분이 하는 일체의 생각과 일이 교단과 분리되지 않고 바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적공이란 오래오래, 하고 또 하고
이제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오래오래’입니다. 오래오래, 특별하게 하려고 할 것이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 하라는 대로 우리의 삶과 일과 속에서 마음을 챙겨 오늘도 해보고, 내일도 해보고, 이달도 해보고, 내달도 해보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니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되었으니까 이 회상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안 되는 것을 너무 들볶지 말고 대종사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안 되지만 또 해보고, 또 해보고, 또 해보고. 오랜 세월 그렇게 공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되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씀이 꼭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종사님께서 견성을 말씀하실 때 “날이 새는 줄 모르게 밝아진다”고 하셨는데 알아지는 것도 어쩐지 모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교리에 대한 것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년 후나 똑같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근래에도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있고, 알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공부는 어떤 지식이나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산종사께서는 “공부의 요결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 열, 백, 천, 만, 억, 무량번, 이것이 바로 공부길이다”고 하시며 ‘천수千修, 만수萬修, 억만수億萬修, 천연千硏, 만연萬硏, 억만연億萬硏, 천행千行, 만행萬行, 억만행億萬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법문을 받들 때 처음 듣는 법문 같아 마음이 살아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전』 삼학수행의 결과를 보면 이미 대종사님께서 ‘오래오래 계속하면’을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다 보면 결국 삼대력을 얻을 것이다”고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부는 근기가 따로 없습니다. 물론 정산종사님과 같은 어른도 계시고 현실적으로 상근기·중근기·하근기, 단기적으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지만 세월을 길게 놓고 보면 근기가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누구든지 알게 되어 있으며, 누구든지 행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능能을 얻는 데까지 어느 정도 공력이 들어가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놓고 보면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산종사께서는 “우리는 근기가 따로 없다. 하는 사람은 될 근기이고, 안 하는 사람은 안 될 근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뒤로 “너는 지금까지 공부해서 이만큼밖에 안됐냐?”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필요 없는 소리입니다. 안 했기 때문에 안된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아이고, 선이 안 되어서 걱정입니다”라고 해서 “얼마만큼 선을 했느냐”고 물으니 “1년 했어요”라고 합니다. “야 이놈아. 인과의 진리는 아주 정확해서 그 정도 될 만큼 해놓았으니 그만큼 된거다. 자신이 될 만큼 했으면 이미 되었지, 안될 만큼 했으니 안된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상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하는 것은 점검할 수 있어도 ‘나는 왜 이거밖에 안될까’는 소용없는 망념인 것이다”고 답했습니다. 대종사님 법은 이생도 내생도 오래오래 하는 것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대적공大積功’ 법문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대적공을 한마디로 말하면 ‘오래오래’입니다. 2대 말을 앞두고 수위단회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진실로 감명 깊게 법문을 받들었습니다.
대산종사께서 수위단원들에게 이런 저런 부촉을 하시면서 “우리가 대종사님께 보은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정진!” 하시길래 “아! 대정진, 대적공 하자”고 말씀하시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대적공이 아니라 또 “대정진!” 하셨습니다. 그래서 3번 하시려나 보다 했는데 또 “대정진!”하셨습니다. 그래서 염불 7편도 하니까 7번 하시려나 했는데 또 “대정진!” 하시니 그때부터는 얼마를 하실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대정진! 대정진! 대정진!” 10번을 하시고 그다음에 대적공을 10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듣고 있던 제 자신도 “우리가 진정 대정진, 대적공해서 스승님께 보은 해야겠다”는 각성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대산종사님의 일생도 생각해 보면 대적공의 삶이셨습니다. 그 어른은 노년에도 아침 선체조를 하면서 손과 발동작의 각도가 점점 줄어들어도 그 일과를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왕궁 영모묘원에 머무실 때도 건강이 좋으실 때면 산에 올라가셔서 한 바퀴 돌아오시고 그러셨는데 건강이 점점 안 좋으시니 주변 산책을 주로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그것도 힘드시니까 상사원 집 주위만 세 바퀴 정도 돌으셨고, 더 건강이 안 좋아지시니 세발자국을 걸으시고, 또 두발자국 걸으시고 쉬시고 그렇게 움직이시며 쉼 없이 공들이셨습니다. 성인들의 적공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기원문 결어, 대산종사의 최후일념
대산종사께서는 기원문 결어에도 온갖 공력을 다 들이셨습니다. 그렇게 편찮으실 때도, 하와이에 가셨을 때도 기원문 결어를 가지고 바닷가에서 기도하시고 하루에도 수없이 원력을 세우셨습니다.
나는 이 기원문 결어에 교단 대의가 바늘 끝만큼도 빠지지 않고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어結語’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기원문 결어는 원기76년 소태산 대종사 탄생100주년을 마치고 일평생 기도생활 하셨던 마지막 최후일념을 이 기원문 결어로 공들이시고자 그 다음해인 원기77년 6월에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원문 결어의 정신을 가지면 교단 대의를 잡은 것이요, 이 정신으로 살면 그분이 바로 출가위입니다. 출가위가 되었다는 것은 여래의 바탕을 잡은 것입니다. 출가위가 늙으면 여래라 하셨으니 그렇게 오래오래 공을 들여 역량이 깊어지고 터지면 그분이 바로 여래입니다. 출가위와 여래위는 판국이 같다는 뜻이요, 능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원문 결어를 대산종사 성탑에 성해와 함께 모셨습니다. ‘대산종사님이 곧 기원문 결어’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기원문 결어를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하루에 한 번이 됐든, 두 번이 됐든 내 마음을 기원문 결어에 대보고, 또 대보고, 또 대보고, 또 대보고. 이렇게 하다 보면 어쩐지 모르게 훈습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럴 때 좁아졌던 마음이 커지고, 마음이 커질 때 수양력, 연구력, 취사력 얻는 것도 훨씬 빨라지게 됩니다. 마음이 좁으면 삼대력 얻는 데에도 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일상원 중도원 시방원
기원문 결어 첫 대목인 ‘일상원一相圓, 중도원中道圓, 시방원十方圓’을 의두로 걸고 오래오래 궁글리고 연마해야 합니다. 
일상원이라는 것은 한 상으로 다 두렷하다는 말이고, 중도원이라는 것은 중도로 두렷하다는 말이고, 시방원이라는 것은 시방이 두렷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원은 진리 자리를 말한 것이요, 중도원은 그 진리 자리를 우리 육근동작에 나투어 쓸 때 중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원, 중도원이 되면, 시방원이 됩니다. 즉 내가 있는 주위 시방세계가 다 원이므로 낙원세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삼세 제불제성은 다른 분들이 아니라 이 일을 하신 분입니다. 일상원 자리를 봐서 중도원을 이루고, 시방원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어른들이 제불제성이십니다. 이것이 큰 대의입니다. 불불계세佛佛繼世 성성상전聖聖相傳입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이 서로 이어가며 시방원을 이뤄갑니다.
우리도 이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기원문 결어로 오래오래 정진하여 일원회상 영겁주인, 일원대도 영겁법자가 되어 대종사님의 심통제자, 법통제자 되기를 염원합니다.

 

[2021. 03. 26. 마음공부23호 발행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