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교무
김경일 교무

[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새 시대 새 종교를 표방하는 원불교 교리에서 부모 보은이 강조되는데 대하여 다소 고루하고 진부한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수천 년 동안 유교 봉건사회 지배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던 충효(忠孝)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정전』의 부모은을 해석할 때에 과거 유가의 묵은 폐해를 걸러내 미래 사회의 새로운 덕목으로 풀어내는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정산종사는 청소년기 전형적인 전통 유가 교육을 받고 자란 경우지만 대종사의 혁신 본의를 깊이 이해하고 그 미래적 함의를 유감없이 끌어낸 경우라고 보여진다. 『정산종사법어』 경의편에서 과거 봉건사회의 왜곡된 효의 가치를 현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도록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효라 함은 무슨 일이나 보은의 도를 행하는 것을 이름이니 이는 모든 보은 가운데 부모 보은이 제일 초보가 되는 까닭이라,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이가 어찌 다른 은혜를 먼저 알 것이며 널리 천지와 동포와 법률의 근본적 은혜를 알 수 있으리오....(중략)....옛날 세상에 좁은 해석으로 부모가 자력이 있을 때도 평생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것만 효로 생각하고 사회의 모든 책임과 일체의 보은 행사에 등한해 온 일면적인 효가 아니니, 효의 의의는 실로 광대하고 원만하여 천하 고금에 길이 세상의 강령이 되고 인도(人道)의 비롯이 되느니라.”

원불교에서 부모 보은사상은 과거의 효와 비교하여 그  실현 방향과 방법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내 생부모에게만 보은의 도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세상의 무자력자를 보호하는 것을 보은의 도리로 강조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한 제자가 의아하게 생각하여 대종사에게 여쭈었다.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빠짐없이 밟는 것이 어찌하여 부모보은이 되겠습니까?”
“그 자식이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빠짐없이 밟으면 부처님의 지와 행을 얻어 이름이 천추에 전하고 만인의 존모를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니 어찌 일신의 봉양과 심지의 안락만 주장하리요. 이는 실로 무량한 부모 보은이 된다고 할 것이다.”

“자력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어찌 내 부모에게 보은행이 된다 하겠습니까?”

“다생의 이치를 보면 과거 생에 만났던 부모의 수가 한이 없고 미래세상에 새로 만날 부모 또한 끝이 없으므로 현생의 내 부모와 함께 타인의 무자력한 이를 보호하면 실로 무량한 부모보은이 된다고 할 것이다.”

자식이 잘 되면 부모는 마냥 기쁘다. 세속의 성공도 그렇거니와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밟아 이름을 천추에 남기면 큰 효가 된다. 이웃 부모에게도 내 부모처럼 굴고 자력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선행을 베풀면 세세생생 어느 때 어느 곳에 이르든지 뭇 대중의 보호와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효라 이름하여 부모의 불합리한 명을 맹목적으로 강요한다든지, 효를 빙자하여 사회적 책임을 기피한다든지, 또는 열반 후 번거한 장례절차와 시묘(侍墓)문화 등에 대하여 시대에 맞는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 내 부모 봉양위주의 봉건 가족주의의 국한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삼세 윤회사상와 국한없는 무아주의를 결합하여 무자력자 보호가 부모보은이 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신 것은 미래 시대 효의 창의적인 확장이라고 본다. 이런 효 문화의 확산이 새로운 문명사회 윤리의 기본이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2021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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