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찬
박동찬

[원불교신문=박동찬]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이 연이어 발표되자 얼어붙은 한반도에도 끝끝내 봄이 오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3년이 흐르고 완전히 경색된 남북관계는 평화로 향하는 노정의 지난함을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출범,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 등 외부 변수를 통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한반도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와 독일 통일의 경험을 참조했을 때 주변국의 지지가 전제되지 않는 한 평화 성취가 난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은 가능하다. 외부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해 망각되고 외면받아온 또 다른 내부 변수가 존재하지는 않을까?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이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일제의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은 해외로의 망명을 불러왔고, 이와 별개로 강제로 이주당하고 징용당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동족상잔의 전쟁은 수많은 난민을 양산했고, 극심한 가난 때문에 아이들이 해외 입양아로 보내졌다. 경제 개발기에는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노동력이 해외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들이 오늘날 한반도 전체인구의 10%에 달하는 재외동포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평화를 희구하고 분단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삶은 디아스포라가 전쟁과 냉전의 산물이기에 가능하다. 식민지시기 일본으로 건너가 정주한 재일조선인은 조선말, 조선사람 등 ‘조선’을 강조한다. ‘조선’이란 표현이 한국에서는 북녘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연상한다고 해 좋지 않은 뉘앙스로 읽힌 지 오래지만, 재일조선인들이 으레 자랑스럽게 말하는 ‘조선’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기 전의 조선반도, 또는 앞으로 다시 하나 될 조국을 가리킨다. 

그동안 한국 미디어는 억양 모방을 통해 조선족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재현의 문제성은 차치하고, 조선족을 획일적 집단으로 상정하는 데서 우리의 사유의 한계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주로 간 유민 중에는 조선팔도 출신이 골고루 망라되었는데 이들은 출신별로 집성촌을 형성해 살아갔다. 조선족은 한반도 전역의 말씨와 전통을 대대로 대물림해왔다.

한마디로 조선족은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분단되지 않은 공동체’였다. 그들의 역사는 남과 북 사이 어느 한쪽과 독점적으로 혹은 배타적으로 교류해온 역사가 아니다. 남북의 길항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통섭적 사고를 끊임없이 강구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 산재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휴전선의 속박을 받지 않고 남북을 자유롭게 출입·왕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과정 중에 배태된 것은 남과 북을 아우르기도 하고, 뛰어넘기도 하는 제3의 시선이다.

해외로 나간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더불어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우리 곁의 디아스포라도 있다. 이들은 이주민, 결혼이주여성, 외국인노동자, 난민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분단과 상이한 사회시스템 때문에 남과 북의 민족적 동질성은 옛말이 됐다. 그런 가운데 우리 곁의 디아스포라는 탈분단 이후의 세계를 미리 투영하는 거울이나 다름없다.

이들에 대한 포용과 환대의 여부는 곧 우리의 분단 극복 의지를 가늠하는 척도이자 통일을 위한 예행연습이다. 아픈 시간과 낯선 공간을 통과해온 디아스포라가 한반도 평화의 대안적 변수로 역할하기를 기대해본다.

/평화의친구들

[2021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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