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교무
원익선 교무

[원불교신문=원영상 교수] 종교가 지구적 차원의 갈등구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여러 종교의 다양한 가치는 지구를 실제로 통합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일까. 종교를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종교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필자를 비롯한 종교인, 학자들은 2015년부터 ‘종교-폭력-평화-국가’의 관계를 중심 테마로 토론하는 레페스(REligion and PEace Studies, 종교평화연구)포럼을 개최해왔다. 그 목표는 ‘종교평화론 구축’이다. 지구평화를 위한 종교평화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레페스포럼은 이처럼 거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다. 지구적 평화의 희망을 결국 다시 종교로부터 찾고자 하는 열망인 것이다. 이러한 담론이 가능한 것은 한국사회가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이다. 독점적 종교가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류 미래에 희망을 선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노마드(nomad) 사회에서 지구 내에 영향력을 가진 종교들과 한반도 자생 종교들이 때로는 연합하여 사회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자체가 고무적이다. 최근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환경연대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한반도가 고통 받는 곳에서는 종교의 일상적인 연대가 일어난다. 종교가 가진 인간적 연대는 그렇다면 지구적 평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정의의 전쟁론에 대한 대응 
첫째, 정의의 전쟁론에 대한 대응을 위한 종교평화론이다. 종교에서의 정당한 전쟁론은 동서양 세계에서 진행됐다. 불교에서 정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은 불가피할 경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은 불의와 악에 대항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석존이 직접 부여한 불살생계에 의해 살상이 동반되는 전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석존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가톨릭에서는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불가피한 정당한 전쟁론이 주장됐다. 이러한 논리 또한 ‘나를 박해하는 자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언설에 비춰 본다면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성전론이 가장 횡행하는 지역은 이슬람권이다. 지하드는 신앙의 원리를 위한 투쟁이었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지하드 또한 이슬람 신자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경우에 전쟁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성전 혹은 정당한 전쟁론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역사를 통해 전쟁은 보복을 위한 악순환이 되고 있으며, 실제 큰 피해자는 전쟁 당사자보다도 대부분 약자들이다. 역사적으로 정당한 전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는 종교 근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념에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집착, 종교교단주의의 내적 구조화, 경전의 몰역사적이고 폐쇄적인 해석 등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종교평화론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적극적 평화구현을 위한 감폭력
둘째, 적극적 평화구현을 위한 감폭력의 종교평화론이다. 이는 종교평화론자 이찬수의 문제 제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종교 연구는 평화 연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평화학에서의 평화는 종교적 이상과 상통한다고 한다. 이찬수는 평화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 이뤄지며, 과정으로서의 평화 역시 평화라는 목적에서 온다는 평화학의 기본 구상은 종교적 혹은 신학적 구조와 상응한다고 본다. 또한 종교적 혹은 신학적 언어를 세속화 시대에 어울리도록 변형시키면 평화학이 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평화학은 ‘세속화한 시대의 신학’, 혹은 종교적 세계관의 ‘세속적 변용’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평화는 종교의 본질이고 이상’이라는 근원적 사실을 주장한다. 그는 평화학과 종교적 이상 모두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평화 개념을 중심으로 평화학과 종교가 결국은 평화를 지향하고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평화는 폭력 줄이기, 즉 감폭력(減暴力)의 과정’이라는 지론을 통해 종교평화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보편윤리 제정
셋째, 보편윤리 제정에 종교평화론의 역할이다. 세계종교자평화회의(WCRP)는 1970년 함께 사는 세계를 위해 행동해야 할 내용을 7개 항으로 정리했다. 공동의 인간성, 공동의 안전, 상호의존성, 공동의 미래, 공동의 삶, 포괄적 교육, 희망과 헌신이다. 이 내용은 세계보편윤리를 확립하는 기초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유네스코 철학·윤리국에서는 보편윤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997년 파리에서 ‘보편윤리를 위한 개념적, 철학적 기초’를, 1999년 한국에서 ‘보편윤리와 아시아 가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러한 논의는 지구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급한 과제이다. 또 지구 전체의 헌법 제정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보편윤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다양한 문화, 국가, 민족, 종교들의 특수한 가치를 넘어서 이들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이 보편윤리는 전체의 공동 이익과 함께 개인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경우에 그 당위성이 성립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포용하는 초월적인 가치에 서 있는 종교성에 기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 지구 차원의 평화를 위한 논의가 요구된다. 


평화인문학, 녹색평화학과의 관계 정립
넷째, 평화인문학, 녹색평화학과 종교평화론과의 관계 정립이다. 최근 서울대학교 평화인문학단에서는 평화인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지금까지 사회학의 영역이었던 평화학을 인문학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끌어들인 것이다. 평화인문학에서는 지구의 실질적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근원적이며 다차원적인 대응과 치유, 평화형성을 지향하는 실천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 차원과 구별되는 삶의 종합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차원은 이미 일상의 종교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조, 제도 이전에 삶에 깊이 침윤된 종교를 근간으로 평화학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아가 종교평화론의 구체적인 모습인 녹색평화론적 관점이다. 녹색평화는 환경과 평화, 생태적인 것과 평화의 관계를 설정하고, 탐구해 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환경과 사회의 공존과 화해를 지향하는 것이 동원된다. 이렇게 될 때, 평화론의 실질적인 개방인 동시에 지구 내 모든 존재의 공존이 가능하게 된다. 녹색평화는 생태적 질서에 기초한다.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관계성’의 영역이 바로 녹색평화의 지향점이자 목표이다. 타자를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타자가 곧 나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녹색평화론의 궁극인 종교평화론의 세계인 셈이다. 종교의 이상이 곧 전 지구적 차원의 모든 존재의 이상이자 현실이 되는 것이다. 


지구의 마지막 평화론
지금까지 시도됐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던 종교평화론은 지구가 한계상황에 이른 지금에야 비로소 조명받기 시작하고 있다. 종교 스스로 진화해 자신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 지구적 차원의 평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오고 있다. 이 점을 박충구는 『기독교윤리사』 시리즈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퀘이커의 평화주의 등을 통해 그들이 고난 속에 걸어온 평화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의 영성주의, 불교의 수행담론 등은 이에 못지않은 일상의 평화를 지향하며, 사회와 지구적 차원의 평화 구축을 위한 이론과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종교평화론은 지구의 마지막 남은 평화론이 될 것이다. 양육강식을 강요하는 인간의 무지와 무명의 한계를 근본으로부터 파헤치고, 현실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통한 연대가 가능하다면 종교평화론은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종교다원주의가 확립돼야 한다. 종교 자신의 입장에서 개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다원주의가 하나의 기능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종교신다원주의’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또한 국제정치에 있어 종교의 역할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 현재 미얀마 군대의 쿠데타로 비폭력 저항에 가담한 민중들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UN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강대국 중심의 논리는 지구의 평화는 물론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한 민중 살상을 막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택적 개입에만 신경 쓰고 있다. 종교 개개의 힘은 약하지만, 인권이나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연대는 언제든 가능하다. 실질적인 정치의 힘을 종교적 연대를 통해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필자는 ‘생명평화 종교연대’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지구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종교권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연합(UR, United Religions)창설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다. 특히 종교는 이미 국경을 초월해 활동하는 실질적인 평화적 조직이자 집단이다. 인류가 이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될 것이다.

/원광대학교

[2021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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