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묘성 원무
허묘성 원무

[원불교신문=허묘성 원무] 시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혹여 큰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우리 가족은 몇 번을 모이길 반복했다. 시아버지가 소생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 일을 어떻게 치룰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어머니는 절에 다닌지 50년이 넘었고, 큰형님 내외는 교회장로고 권사다. 둘째 시숙은 원불교에 입교했으나 현재는 쉬고 있다. 어머니는 당연히 절에서 장례를 지내겠다고 했고, 큰 형님 내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장례 얘기가 나왔을 때는 어머니 결정에 따라 절에 모시기로 하되, 우리는 원불교식으로 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종재였다. ‘같은 날에 해야 하는데, 어찌해야 될까’를 고민했었다. 둘째 시숙은 어머니 의견을 무조건 따른다고 했다. 어머니가 “너네는 원불교식으로 하고 나는 절에 모시겠다”고 하는데 뭔가 불편한 음성이었다. 또다시 가족들이 모였고, ‘원불교식이라는 게 무엇이냐’고 하는 질문이 나왔다. 설명을 했다. “일단 장례식장에 음식을 안 차리고 꽃으로 공양을 하며, 오는 분들이 향을 피울 수도 있고, 꽃을 올릴 수도 있으며, 열반기도, 입관기도, 발인기도를 하고, 교당에서 일주일마다 49일 동안 천도재를 지내준다. 그리고 원불교에서는 ‘좋은 곳으로 갔다가 다시 몸 받아 좋은 곳으로 온다’는 불생불멸과 인과의 이치의 진리를 믿는다” 라고.

그후 시숙이 ‘우리 내외가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단 말을 형님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형님이 재비의 쓰임에 대해서 묻기에 “우리 원불교에서는 교화, 교육, 자선으로 여기저기 공익사업에 쓰여진다”고 했다. 형님은 많이 의아해하면서도 놀라고 감동하는 듯했다. 

가족 모임에서 우리는 30여 년 봐왔던 원불교의 천도재 의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얘길 했고, 급기야 남편이 어머니를 찾아뵙고 거의 두세 시간을 설명하고 권유하며 많은 얘길 나누었다는 걸 알게 됐다. 큰형님 내외 또한 적극적으로 원불교식을 추천해 줬고, 결국 어머니는 결정을 한 뒤 우리 내외를 불렀다. 

1주일 후 찾아뵈었더니 원불교식으로 하겠노라고 말하는 어머니 눈빛이 빨갛게 충혈이 돼 터질 것 같았다. 몇 날 며칠을 잠을 못 이뤘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나 보다. 어머니 손을 잡으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눈물까지 흘리며 쉬운 결정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다. 형님도 어머니 뜻을 받들어 줬다. 나는 뭔가 큰 걸 얻은 것 같은 뿌듯함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는 음식을 차려야 된다고 했고,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 전 새벽기도를 마치고 잠시 교당 교감님에게 장례절차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그러자고 흔쾌히 답해주셨다.

생각해 보면, 시아버지는 우리에게 끝까지 배려를 해준 것 같다 . 물론 당신은 큰 고통을 겪었겠지만, 가장 큰(종교)걸 결정할 수 있는 시간들을 줬고, 처음으로 시아버지에 대한 보고픔을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어머니가 홀로 있을 수 있게 훈련하게 했고, 그러면서 우리가 어머니를 조금은 더 챙겨야겠단 마음을 먹게 해줬다.

종재식 날엔 교당 안 모든 이들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어머니가 사후에 당신도 원불교식으로 해달라고 온 가족 앞에서 말했다. 또 앞으로 교당엘 나오겠단다. 정말 어떻게 감사하단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장례예식장에서부터 초재와 종재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런 마음으로 임해준 교당 교무님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친지와 법동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동대전교당

[2021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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