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올 김용옥 

2021년의 4월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그 가운데 도올 선생의 『동경대전』1, 2 출간 소식이 싱그런 봄비처럼 전해왔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동숭동에 있는 통나무 출판사 작업실을 향했다. 그의 학술적 인생 50년은 『동경대전』을 정리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으며,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또한 동학의 품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해준 표영삼 선생과의 만남이 천운이었다고 말한다. 작업실 한켠에는 수운과 해월 그리고 표영삼 선생이 함께 액자에 모셔져 있다.

『동경대전』 1권은 도올의 동학과의 만남에서부터 초판본과 조우해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까지의 여정을 담았으며, 수운과 해월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야말로 동경대전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문서라 하겠다. 이어 『동경대전』 2권은 동경대전 초판본 완역과 오리지널한 판본들을 영인해 그대로 담았다. 최근 18만 명의 구독자를 둔 유튜브 ‘도올tv’를 통해 노자 강의 109회를 성황리에 마친 그가, 같은 기간에 『동경대전』이라는 기념비적인 대작을 정리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5월 11일 동학혁명 국가기념일지정 3주기를 맞아 정읍에서 외친 ‘동학선언문’에 이어 동경대전 강의가 시작됐다.
 

도올 김용옥
도올 김용옥

 

『동경대전』이 지금 나온 이유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오리지널한 1860년대 동학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오리지널하다는게 상당히 중요한게 그 시대상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수운선생은 자신의 사상을 그대로 남기고자 했고, 후대에 종교화되고 왜곡될 것을 우려해 본인이 직접 경전을 써서, 해월이라는 자기 말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 당부했다. 

해월 선생은 “최보따리”라 불리도록 수운 선생의 원고 보따리를 지성 일념으로 품고 다니다가, 결국 1880년에 인제에서 간행했다. 이 경진초판은 100부를 찍었다고 했는데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최초의 판본 하나가 2008년경 우연히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내가 그걸 찾아내면서 이제 집필의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번 『동경대전』의 의미는 
『동경대전』이 없었더라면 동학은 사라졌을 것이다. 동학은 혁명을 넘어선 개벽이며, 현세의 개벽을 넘어 지고의 인류미래비전을 말한다. 동학은 눈물이요 빛이다. 수운의 동학사상이 이 시대에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기를 바란다.

원래 『동경대전』은 2004년에 발간한 『도올심득 동경대전』이라는 책의 후속 완간본으로 기획됐다. 그러나 초판본이 발견되면서 원초적 자료와 수운의 인생을 다룬 최초의 기록인 『대선생주문집』이 새롭게 아필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체제의 『동경대전』이 집필될 수 있었다. 나는 동경대학에서 워낙 철저하게 문헌비평의 훈련을 받았다. 성서의 고등문헌비평 등 모든 방법론을 동원해서 동경대전이라는 경전의 오리지널한 모습을 밝혔다.

동경대전 텍스트 자체를 새로 발견한 것과 그것에 대한 완벽한 주석과 교감을 거친 해석을 했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해석이 아니다. 이것을 통해 비로소 모든 후학들이 동학을 연구할 수 있는 진정한 출발점이 마련된 것이다. 앞으로 동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자료를 독점하지 않고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경대전』은 민족의 성전이며 나의 학설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동학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
내가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이 최수운의 삶과 만나게 된 희연(稀緣) 중의 희연이다. 본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을 나왔으나,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당시 철학이라면 무조건 서양철학이었다. 그러나 내가 입학한 1960년대 고려대학교 철학과는 사정이 달랐다. ‘민족대학’이라는 자부감에 걸맞게 동양철학과 한국사상의 본산(本山)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970년에는 고대 철학과에서 최초로 “한국사상”이 개설됐고 나는 그 강좌의 첫 수강자였다. 그때부터 50년간 동학과의 인연이 이어지게 됐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최수운의 초판본과의 조우는 숙명이며, 천명이라 생각된다. 가장 큰 인연은 동학의 마지막 진면(眞面)이라 할 수 있는 표영삼 선생과의 만남이다. 시인 김지하와의 토론을 통해 동학을 바라보는 사상적 틀, 민중사적 실천적 시각을 배웠다면, 표영삼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동학하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 그리고 역사적 동학의 실상, 그리고 동학의 발생과 확산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역사적 사실들을 배웠다. 그를 통해 교조화되기 이전의 발랄한 동학의 모습을 배운 것이다.


초판본이 중요한 이유는
2020년 10월 23일에 애타게 찾던 인제경진초판본 사본을 받아보고, 나는 첫눈에 인제간 초판본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북받치는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인제판본을 보고 싶어 하셨던 고 표영삼 선생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인다. 『동경대전』 최초의 판본은 인제 갑둔리에서 간행한 목활자본이다. 그것은 수운의 기획과 해월의 핏물로 인출(印出)된 것이다. 초판본의 문헌학적 권위는 절대적이다. 판본학과 한문학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이자(異字)에 관해서도 초판본이 더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안다. 후대 종교교리상의 맥락에서 변화된 것은 오히려 권위를 갖지 못한다.
 

동경대전
동경대전

 

1권의 『대선생주문집』은 내용은 
수운의 삶이 얼마나 위대했으면, 사후 2~3년 만에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완벽한 전기를 그 제자들이 완성했을까? 참형 당한 대역죄인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당대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자들은 수운의 억압 받은 삶과 억울한 죽음의 역사를, 죽음을 무릅쓰고 남겼다. 그것이 바로 『대선생주문집』이다. 최수운 한 인간의 삶의 정직한 궤적이다. 오늘날로 치면 ‘바이오그라피’라 하겠다.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고 가르침을 펴자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를 두려워 한 조선 조정은 ‘사문난적斯文亂賊(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국가의 질서와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몰아 체포한다. 1864년 3월 10일 수운 선생은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된다. 그동안 사장된 것을 내가 발굴해 번역했기 때문에 그 느낌이 오히려 생생하다.

살아있는 한 보통의 인간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역사를 쓴 사람들이 얼마나 소박한 지식인들인가를 느끼게 됐다. 보통 부끄러운 장면은 빼고 싶은 생각이 날 법도 한데 인간세의 시시비비를 있는 그대로 다 실었다. 젤 마지막에는 선생이 살아날 것을 기대했다가 시체가 썩어가니까 냄새가 나서 서쪽 언덕에 안장했다 라고만 했다. 간결하다. 거짓을 모르는 한국인의 심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유튜브 ‘고발TV’에서 처음 알리셨는데  
『동경대전』의 출간을 알리는데 제일 좋은 매체였다. 나에게 2주에 가까운 시간을 가장 자유롭게 지속적으로 할애했다. 그리고 이상호 기자가 동학군 같고, 지사의 성품을 가지고 있어 함께 작업하는데 편했다.
 

자료를 독점하지 않고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경대전』은 
민족의 성전이며
나의 학설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동경대전』의 역할은
극우기독교의 다양한 형태가 우리 역사를 잘못 이끌어가고 있다. 문명이라는 것은 어떤 소수지식인들의 지적인 향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 문명이 모험을 허용하지 않으면 결국 망한다. 고착은 고질이다. 나는 문명의 중요한 요소를 모험과 평화라고 생각한다.

『동경대전』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모험을 통해 궁극적으로 평화에 도달하게 하는 모든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동경대전』의 메시지는 원불교가 추구하는 모든 교리의 핵심과 상통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와 진보가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는 거다. 우리 민족의 뿌리사상을 잃어버리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인간의 근본과 우주의 진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리 민족이 지닌 도덕적 가치의 축적이랄까, 그런 것이 세계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독한 고뇌와 역경이 마침내 예술로 승화되어 나타나는 시기다. 고뇌를 거치지 않는 민족은 문화를 창조할 수 없다. 세계대전 버금가는 전쟁도 치렀고, 가장 무서운 군사독재도 겪었고, 가장 잔인한 제국주의의 억압을 견뎌냈다. 그 같은 경험치가 21세기에 들어서서 세계인들이 경탄할 만한 역량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싶다. 그렇게 되면 우리민족의 자기 확신이 확산이 될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동경대전』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개벽시대에 원불교에 바라는 점은
원불교도 정체성을 선명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지도자의 메시지가 대 사회적으로 울림을 줬으면 한다. 시대를 움직이는 개벽의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원불교에는 그만한 브레인들이 있다. 종법사님께서도 그들과 더불어 고민하고 토론해서 개벽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격조 높게 전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다.민중의 아픔에 공감하고 시대적 과제에 종교적 차원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격조 높은 사회참여다. 특히 남북문제, 한미관계, 인권과 환경문제에서 종교적 입장에서 일원상의 진리에 의거해 얼마든지 발의할 수 있다. 왜 그러지 못하는지 아쉽다. 원불교는 위대하기 때문이다.


종교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모든 종교에 있어서 제일 위험한 게 경직화다. 희랍의 조각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이 경직되면서 그 문명은 멸망했다. 종교마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시대변화와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경직되고 만다. 아무리 좋고 진보적인 이념이라도 경직화되면 결국 꼴보수가 된다. 젤 무서운 게 경직이다. 종교는 끊임없이 자신을 개혁하는 운동을 아주 중요한 임무로 삼아야 한다. 교무들의 자체운동도 허용해야 한다. 교무들이 교단 안에서 개혁의 원동력이 될수 있도록 고무해야 한다. 원불교도 10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면서 지나치게 종교화 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지금 우리는 어떤 개벽을 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혹독한 고통을 겪은 민족이지만, 지금 굉장히 좋은 시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남북문제다. 분단된 상태로 인해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많은 불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 남북문제를 화해로 풀어가는 것이 지금의 개벽의 중심과제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주체적인 깡다구가 있어야 한다. 강대국의 간섭을 뒤엎고 나아갈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구현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보수 정권으로 다시 선회한다면 암담하다. 『동경대전』이 그 역할을 했으면 한다. 이 책을 10만 명이 읽는다면 그 후의 정신적 풍토는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사상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동학은 고조선으로부터의 우리 혼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 뜻은 이 시대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미 한 시골청년이 근원적으로 서학을 극복하는 이론을 완성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이다. 동학은 철학도 아니고 논리도 아니다. 동학은 철학이 아닌 느낌이고, 논리가 아닌 혈관 속의 움틈이다. 아무리 좋은 교리도 결국 사람에게 생생한 도움이 되지 않으면 사판(死板)이다.

[2021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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