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스스로 이겨내게 해주는 한의학적 생활건강법

김종진(종열) 교무 / 전 한국 한의학 연구원장
김종진(종열) 교무 / 전 한국 한의학 연구원장

우리는 오랫동안 익숙한 한약과 최근 백 년 사이 급격히 발달한 양약을 함께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언제 양약을 쓰고 어떨 때 한약을 써야 하는지, 필요하면 두 가지를 함께 써도 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무조건 한약은 안 된다는 의사의 주장이 있으나 그 말이 얼마나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양약은 대개 먹자마자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해열제를 먹으면 즉시 열이 내리고, 진통제를 먹으면 바로 통증이 줄어든다. 항생제는 확실히 세균을 죽여 병증을 줄여주고, 혈압약은 분명히 혈압을 내려준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약이 많은데도 세상엔 치료 가능한 질병보다 해결이 안 되는 병이 훨씬 많다. 왜 그럴까? 

양약은 대개 하나의 성분이다. 하나의 성분이 우리 몸의 어떤 작용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 거기엔 물론 우리 몸의 복잡한 작용 기전들에 대한 정확한 생리학적 지식이 뒷받침돼 있다. 예를 들어 혈압약의 일종인 이뇨제는 이뇨작용을 강화시켜 소변량을 늘리고, 수분 배출이 늘어나니 혈액량을 감소시켜 혈압을 낮춰준다. 그러나 우리 몸은 현대 생리학이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다. 혈액량이 감소되면 말초혈관까지 가는 피가 줄어든다. 물론 그것이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 정도라고 보기에 약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장기화 됐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해 현대의학은 다 알지 못한다. 혈압약으로 인해 많은 만성 질병들이 오히려 악화된다는 보고가 최근에는 늘어나고 있다.

한약은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 특정 장기의 약한 기능을 강화하거나 한열을 조절해주어 병을 치료한다. 최근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임상연구논문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한약은 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면 부작용이 별로 없다. 한약을 먹고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이는 대개 진단을 잘못한 결과일 것이다. 

하나의 한약에는 많은 성분이 들어있다. 그 여러 성분이 함께 작용해 나타내는 효과에 대한 이해는 아직 매우 초보 단계이다. 어떤 자연물이 어떤 병에 효과가 있다고 하면, 서양에선 그 자연물에서 하나의 성분을 뽑아 사용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약물이 천연물 신약이지만, 아직 천연물신약의 시장 비중은 미미하다. 그래서 한약에 대한 이해는 과학의 미래에 맡겨져 있다.

21세기 들어 현대생물학은 부분적으로 파악해온 인체 생리를 네트워크로 이해하기 위해 시스템생물학이라는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성공한 이후다. 인간의 유전자를 모두 해독한 2003년 인류는 이제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2009년 참석한 최첨단 국제학회에서 연구자들은 당뇨병 발병에 유전자의 기여도는 10% 미만밖에 찾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유전자는 음악에 있어서 피아노의 건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피아노의 구조를 알았다고 해서 피아노소나타를 듣고 내가 슬퍼지는 까닭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음높이와 박자와 강약과 수많은 요소가 어우러지는 건반의 운용이 빚어내는 작용이다. 내는 음과 박자와 강약과 그 외에도 말로 표현되기 어려운 수많은 요소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작용이다. 이제 현대 과학은 유전자와 단백질, 대사산물, 세포, 전체 기관의 기능까지 모든 작용의 조합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파악하려 한다.

한약이 가진 여러 성분의 작용을 시스템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인류 건강을 위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한약은 사람을 포함해 많은 동물이 먹어오던 자연 그대로의 물질이다. 몇 가지 독약을 제외하면 안전성과 유효성이 이미 수만 년 이상 확인돼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대개 새롭게 합성한 신약이어서 거의 모든 생물이 섭취한 경험이 전혀 없기에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 양약과는 완전히 다르다.

병의 원인이 단순하면 양약으로 쉽게 치료된다. 세균성 질병들이 항생제로 인해 비교적 쉽게 해결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만성질병들은 원인이 단순하지 않다. 고혈압은 그 자체가 병의 원인이 아니다. 혈압이 높아진 데는 몸의 여러 부분에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고혈압은 병인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정상적인 반응의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양약으로 우리는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용으로 관리해주고 있는 것이다. 양약은 원인이 단순한 급성병에 유용하다. 만성병에서도 고혈압으로 인한 중풍이나 심장병처럼 2차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만성병의 근본적 치료는 생활 관리와 함께 한약이 좀 더 효과적이다. 인체의 균형이 깨져서 오는 알러지나 면역성 질환에는 더욱 유용하다. 그래서 한약과 양약의 선택을 환자가 하는 것보다는 의사가 체계적으로 지도해줄 수 있는 의료사회를 꿈꿔본다.

[2021. 5. 28. 마음공부25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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