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스스로 이겨내게 해주는 한의학적 생활건강법

김종진(종열) 교무 / 전 한국 한의학 연구원장
김종진(종열) 교무 / 전 한국 한의학 연구원장

 

혈압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그 중요성을 안다. 그런데 전자혈압계에 혈압과 함께 표시되는 맥박수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더구나 맥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살펴보는 한의학의 맥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맥은 그저 신비한 것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인 생리 신호이다. 스스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맥진에 대해 알아보자.


혈압의 정상 범위가 80/120(mmHg)이라면, 맥박수의 정상 범위는 대략 분당 60회에서 75회 정도 사이다. 물론 감기에 걸리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면 열이 나면서 맥박수가 빨라진다.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면역 작용을 가속화 하느라 심장이 빨리 뛰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력이 떨어져 신체기능이 저하되면 맥박은 느려진다. 하지만 이렇게 일시적인 경우와 달리 맥이 만성적으로 느리거나 빠르거나, 혹은 느려지거나 빨라진다면 몸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내 몸에 좋은 정상 맥박수는 체질에 따라 다르다. 소음인과 태음인은 되도록 72회(10초에 12번)를 넘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소음인이 맥박수가 빠른 것은 오히려 기력이 약해졌다는 증거이다. 위장이 나빠지거나 설사가 심해지면서 식욕도 잃어가는 소음인에게서 빠른 맥이 종종 발견된다. 이때는 맥박수와 함께 호흡도 빨라지고 얕아진다. 


태음인도 폐기능과 함께 심장기능이 약해지면서 오히려 맥이 빨라진다. 음인의 맥이 빠른 것은 심장에서 펌프질을 힘차게 깊이 못하고 얕게 자주 하는 상태이다. 분당 60회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약간 느린 것이 음인에게 좋은 맥박수다. 반대로 소양인과 태양인은 맥이 조금 빨라도 좋다. 70회에서 80회까지도 정상으로 볼 수 있다. 소양인은 맥이 느리면 오히려 기력이 약해진 것이다.


맥박수와 함께 중요한 것은 맥박의 규칙성이다. 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을 부정맥이라 하는데, 한의학에선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본다. 맥이 규칙적으로 뛰다가 한 번씩 쉬는 대맥, 점점 느려지다가 쉬는 결맥, 점점 빨라지다가 쉬는 촉맥, 심하면 아무런 규칙이 없는 난맥도 있다. 


부정맥을 심장의 문제로만 보는 현대의학과 달리 한의학은 전신의 문제로 본다. 
기관지 증상이 심했던 태음인 환자를 진맥해보니 난맥이었다. 맥상의 변화를 치료의 신호로 보고 강한 보폐약을 쓰자 맥의 규칙성이 돌아오면서 병증이 치료됐다. 여기서 심장약을 쓰지 않고 폐를 보하는 약을 썼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맥은 단순히 심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부정맥은 건강검진 때 병원에서 진단해 준다. 그러나 심장에 분명한 문제가 있는 경우 외는 원인 규명과 치료가 어렵다. 몸 전체의 균형을 살펴보는 한의학적 맥진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맥박의 횟수와 규칙성까지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이 똑같이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 외에도 맥의 강약, 장단, 파동의 모양, 손끝에 닿는 느낌 등 훨씬 많은 요소를 진단에 활용한다. 


맥의 강약은 혈압과는 좀 다르다. 태음인은 맥이 강해야 한다. 소양인도 활력있는 맥이 건강한 맥이다. 그러나 소음인은 맥이 강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더 건강한 맥이다. 소음인이 맥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면 혈관 건강이 안 좋거나 중병이 있는 것이다.


맥을 짚는 부위는 가정용 전자혈압계로 측정하는 부위와 같다. 엄지쪽 손바닥 바로 위 맥박이 느껴지는 곳이다. 
여기서 한의사가 세 손가락을 모두 눌러 진맥하는 까닭은 맥의 길이 특성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세 손가락에서 고루 맥이 느껴지면 건강한 맥이다. 태음인은 손바닥쪽 맥이 약하기 쉬우며 그러면 폐 기능이 약한 것이다. 소양인은 팔뚝 쪽 맥이 약하기 쉬우며 그러면 신장방광 기능이 약한 것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맥의 강약, 리듬, 폭과 길이, 파동 모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의 특성을 분석해 정량적으로 출력해주는 맥진기와 맥상 분석기술을 개발해서 기술이전까지 마쳤다. 이 맥진기가 널리 보급돼 임상자료가 쌓이면 한의학의 신비한 맥진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것이다. 


맥진기는 한의원뿐 아니라 양방병원에서도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양한방이 벽을 허물고 함께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연구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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