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도 예산안 제출 시정연설문에서 “한반도 평화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우리 앞에 놓인 장벽들을 하나하나 뛰어넘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평화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는 이런 평화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똑 닮았다. 이 단체는 NGO는 아니지만 활동 모습이 NGO탐방의 기획 의도에 부합해 관련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모순영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모순영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2004년 남북간 합의서 체결로 시작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하 편찬사업)은 2004년 남북간 합의서를 체결한 뒤 2005년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편찬사업은 남북의 언어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 사회의 언어를 통합하는 어렵고 방대한 사업이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소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또 민족어 동질성 회복과 언어 통일 준비라는 국가적·민족적 차원의 사업으로 예산과 인력의 투입 규모가 큰 비수익성 공공사업이다. 그래서 2006년 편찬사업을 전담하기 위해 출범한 기구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하 사업회)로 2007년에는 특별법이 제정돼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사업회는 사무처를 두고 그 하부 조직으로 경영기획실과 편찬실로 나눠 운영 중이다. 사무처는 남측편찬위원회 운영을 비롯해 남북공동편찬회의 운영, 『겨레말큰사전』 발간 및 개정·증보, 남북 및 해외에서 사용하는 우리말의 조사·채집·연구·보존·전산화, 편찬사업 성과를 활용한 홍보와 간행물 제작 및 배포 등을 담당한다. 모순영 사무처장(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은 “우리 사업회는 남북이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분야 중 적어도 언어 분야에서의 소통 부재와 갈등은 줄여보자는 데에 주목했다. 남북이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함께 지침을 작성하고, 단어를 선정하고, 집필하고, 교정하는 작업을 공동으로 하자는 데에 합의를 한 것이다”고 말했다.

편찬사업에서 남북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은 없다. 더디지만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만 한다. 지난 15년 동안 남북이 함께 공동회의를 개최한 중요한 이유이자 사업회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사전 편찬작업은 남과 북이 공동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각각 편찬위원회를 근간으로 해 진행한다. 남북공동편찬위원회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과정에서 제기되는 주요한 안건을 결정하는 기구이며, 그동안 남과 북은 남북공동편찬회의를 통해 사전에 등재할 올림말(표제어), 원고 집필을 위한 집필지침, 사전에 적용할 어문규범 등을 합의했다.


편찬작업 80% 이상 진행, 가제본 발간
남북이 선정한 올림말(표제어) 수는 모두 30만7천 개다.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실린 올림말 가운데 1900년 이후 쓰인 올림말 23만 개와 두 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어휘 중 남북이 각종 문헌이나 남북 지역어 및 중국, 중앙아시아 등의 해외 지역어를 직접 조사해 채집한 새 어휘 7만7천 개다. 남북의 사전 편찬 실무진은 남북공동편찬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바탕으로 2009년부터 사전에 올라갈 말을 분담해 집필했다. 원고는 여러 차례의 교차 검토 과정을 거친 후 남북 실무진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 지금까지 총 12만5천 개의 원고를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겨레말큰사전』에 적용할 어문규범 중 두음법칙, 사이시옷, 의존명사의 띄어쓰기 등 일부를 제외한 자모 배열순서 및 이름,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문장부호 등 상당 부분을 합의했다. 이와 같은 성과는 지난 3월 발간한 『겨레말큰사전』 가제본에 담겼다. 모 사무처장은 “2016년 이후 현재까지 남북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사업회는 당초 계획한 2022년 4월까지 『겨레말큰사전』 완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총 10권, 약 1만8천 쪽 분량으로 만들어진 『겨레말큰사전』 가제본은 남북공동회의가 장기간 재개되지 않은 시점에서 양질의 사전 편찬과 편찬 기간 단축을 위해 남측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우리가 
언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통일이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언어 분야에서만큼은 미리 준비해야 된다

사업회는 『조선말대사전』 풀이와 『표준국어사전』의 풀이, 이것을 단순히 합하기만 하면 작업이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용례나 북한에서 인용되는 작품 예시 그리고 새로 추가되는 부분 등을 싣는 과정에서 교차 검토하고 집필 교정·교열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은 81.1% 정도 진행됐다. 사업회는 향후 가제본을 토대로 대북협의를 추진하고 북측과 미결과제인 미합의 원고와 미합의 어문규범 등에 대해 일괄 합의를 거쳐 『겨레말큰사전』을 완간할 계획이다. 또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편리한 전자사전 발간도 계획돼 있다.

남과 북을 아우르는 사전을 만드는 일은 언어에 또 한 번의 숨결을 불어넣는 일이기에 정성은 필수다. 『겨레말큰사전』 가제본이 나오기까지 걸린 약 16년의 시간이 이를 방증한다. 모 사무처장은 “사실 남측에서만 단독으로 진행하거나 북측에서만 단독으로 진행했다면 벌써 완성이 됐을 거다. 그런데 이 과정 자체가 남북 교류사나 사회문화 교류측면에서나 통일문화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합의 과정이 항상 전제되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도 합의되지 않으면 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 공감 위해 온·오프라인 홍보
사업회의 활동은 사전 편찬작업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국민들에게 편찬사업을 널리 알리는 일도 사업회에겐 중요하다. 우선 남북의 생활용어 자료를 바탕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남북 생활용어』, 『남북한 어린이 말모이』 등의 도서를 발간해 보급했다. 발간 도서를 활용해 스마트폰 어플 ‘남녘말북녘말’과 홈페이지 웹서비스(dic.gyeoremal.or.kr)를 제작해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동안의 결과물을 서비스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매년 소식지를 발간하고 겨레말TV(유튜브, 네이버TV) 운영, 겨레말 누리판(웹진) 발행, 카드뉴스 발행 등을 통해 시민과 소통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잠정 폐쇄됐지만 2019년 서울시청 내에 『겨레말큰사전』 홍보관을 개관했으며 특수 자료와 북한 도서 등을 전시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또 초·중·고 교과서 24종에 편찬사업 내용이 수록돼 청소년 평화통일 교육에도 기여 중이며 유네스코와 함께 국제학술포럼을 개최하는 등 편찬사업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모 사무처장은 “어느 정도 중간 성과물이 나온 2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우리가 언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통일이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언어 분야에서만큼은 미리 준비해야 된다’라고 편찬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납득을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계속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통일 운동이 그렇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발간될 『겨레말큰사전』의 오류를 최소화하고 시민 공감대 형성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시민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모 사무처장은 “우리 말과 글을 같이 아껴줬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말과 글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남북이 공동으로 『겨레말큰사전』을 만들더라도 크게 감동으로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2021년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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