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차 원불교사상연구원
월례연구발표회

이주연 교무
이주연 교무

[원불교신문=이주연 교무] 이 연구의 목적은 원불교의 핵심 교의에 해당하는 ‘사은(四恩)’에 대한 연구가 그간 어떤 경향 아래 이루어져 왔는지 그 발자취를 짚어보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면 좋을지 모색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은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존재론적 측면, 개념적 연관성의 측면, 생태적 측면에서 사은에 접근해왔음을 알 수가 있다. (지면상 연구자들의 존함만 밝히고, 논문이나 저서 제목까진 명기하지 않는다.)


이원론적 프레임을 유의해야
첫째로 존재론적 측면에서의 연구 경향과 과제이다. ‘법신불 사은’은 현재 ‘법신불 일원상’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두 가지의 혼용은, 한기두의 지적대로라면 ‘법신불 일원상’ 앞에서 ‘법신불 사은’을 향해 심고와 기도를 올리도록 한 것과도 같다. 그는 ‘법신불 일원상’이 신앙의 대상, 즉 넓고 큰 진리 그 자체이며, ‘법신불 사은’은 신앙의 당처, 즉 현실적으로 지금 여기에 나타나는 신앙의 장(場)이라고 보았다. 이와 달리 김인철은 사은을 ‘심고와 불공의 대상’이라 정의하는데, 그가 이렇게 본 것은 일원상과 사은이 둘이 아니라는 점에 중점을 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정석도 저서 『사은은 얽혀있다』에서 ‘사은은 신앙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견해상의 차이는 일원상과 사은 관계의 어떤 측면을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인다. 노권용과 허종희 등은 이러한 입장 차이를 현상 외의 실상이 별도로 있지 않다고 보는 상즉성 측면의 관점, 본체와 현상이 같다 하더라도 본체를 바탕으로 한다고 보는 본원성 측면의 관점으로 정리한 바 있다. 

한편 염승준과 허종희 등은 일원과 사은의 관계를 ‘본체와 현상’이라는 이원론적 프레임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을 지적했다. 노권용이 제시한 적 있는, ‘이원론적 일원론’, ‘일이이(一而二)’ 또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점은 이원론적 프레임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물질, 영과 육, 동과 정, 대와 소, 유와 무, 시와 비, 이와 해 등, 이원적으로 분리된 용어들이 원불교 교의 상에서 꽤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주체와 객체의 이원화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고, 박상권이 언급했듯 ‘이름을 달리한 완전 동일’로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편적 표현이다. 

소태산은 ‘큰 도는 원융(圓融)하여 유와 무가 둘이 아니요,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니며, 생과 사가 둘이 아니요, 동과 정이 둘이 아니니, 둘 아닌 이 문에는 포함하지 아니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세상을 이원화하는 것은-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의 견해를 빌려 말하자면-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언어’가 세상을 양극으로 분할하는 것과도 같다. 명사와 동사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 구분의 경계선도 불분명하다. 사고의 편의를 위해 구분하는 것들이 그 속성에 있어서도 구분되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존재론적 측면에서의 지금까지 연구 경향은 이 점을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다만 이 결실들을 바탕으로 하는 제2차, 제3차의 후속 연구들이 등장할수록 이원론적 프레임을 유의하는 게 좋겠다.
 

각박하고 힘든 시대일수록

은혜와 감사의 담론 필요
선진 학자들이 일궈낸 사은 연구,

좋은 결실로 이어지길


소태산의 창조성과 사은(四恩)
두 번째로는 개념적 연관성의 측면이다. 정순일과 고시용 등이 남긴 사은의 형성사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이성적 연구로 사은에 접근 가능하던 것이 후일 교법 정비 과정에서 신앙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천은 그만큼 사은이 가진 핵심 교의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던 일련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류병덕은 ‘소태산은 우주의 이 대은(大恩)을 누구보다도 먼저 철저하게 깨달은 존재자’라고 말했다. 우주만유가 전부 부처이며 권능과 위력을 가진 은적 존재임을, 모든 존재가 은혜로 얽혀있다는 것을 소태산이 창조적으로 깨달았다는 의미다. 물론 사은이 소태산의 단독적인 창조물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 과거 교법과 우리 법의 관계에 대해 ‘주로 창조하시고, 혹 혁신, 혹 인용(因用)’하였다는 정산의 설명으로부터 알 수 있는 점이다. 그래서 사은의 개념적 연관성에 대한 연구들은 소태산이 독자적으로 사은을 창조해낸 것은 아님을 밝혀왔다. 정순일, 김도공과 임병학, 이상순 등에 의해 불교의 사은(四恩)이나 주역의 사덕(四德), 유교의 인(仁), 그리고 후천개벽사상과의 개념적 연관성이 논의됐다. 

주목할 점은 원불교의 사은이 이들 개념과 유사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되, 이를 ‘연원’했다고 할지언정 그대로 ‘계승’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교의적 위상 측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불교의 핵심적인 교의는 연기법(緣起法) 등이다. 다른 요소들은 차치하더라도, 원불교의 사은이 가지는 위상은 이러한 핵심교의의 위상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교리도>에서 ‘인과보응의 신앙문’이라는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그 위상은 연기법이 불교 교의에서 가지는 핵심적 위상에 준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부연하건대 ‘우주만유가 얽혀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연기법과 사은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사은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얽혀있음의 속성을 은혜로 보았다는 점에서 소태산의 창조성이 부각된다. 


사은이 담지한 서구담론의 보완점
세 번째로 생태적 측면이다. 생태적 위기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담론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 온난화 현상과 환경오염, 산림파괴, 인구의 과밀 등  생태적 위기상황에서 인류가 어떤 관점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 대표적 담론들이 신유물론, 포스트 휴머니즘, 에코페미니즘 등이다. 이 담론들은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성택, 소기석, 황화경 등의 연구자들 또한 사은의 시사점을 생태적 측면에서 발견했다.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 모두가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 은(恩)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은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적 관계가 언제나 절대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가? 소외와 혐오, 차별이 만연한 이 시대에, 모두 다 은혜라고 볼 수 있을까? 류병덕은 ‘현상에서 보면 엄연히 해의 면이 있지만 사은은 완전히 존재론적, 본체론적으로 드러난 은이기 때문에 해와 상대되는 은이 아니’라고 본다. ‘절대적 은혜’가 전 우주에 만연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절대은은 어떤 실천적 경로를 통해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박광수와 황화경 등은 불공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엔 부조리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나,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통한 공생의 추구, 대사회적 보은을 통해 절대은을 실제적으로 구현할 필요가 있다.

생태적 관심에 이어 지구가 당면한 위험현상에 주목하는 연구와 담론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구신학자 토마스 베리(Thomas Berry)가 2001년에 제시한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현재 태동하고 있는 지구인문학은 지구위험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인문학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담론들은 원불교의 사은과 접점을 가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절대적 은(恩)은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우리는 공생자 행성에 살고 있는 공생자들’이란 말과 함께 논의해볼만 하다. 세균으로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전부 각자 존재하지 않고 본래 공생을 전제한다는 게 마굴리스의 견해다. 마굴리스가 말하는 본래적 공생, 그리고 『사은은 얽혀있다』에서 한정석이 말하는 사은의 연결성은 표현은 다를지언정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지구를 중심에 두고 사유하려는 인문학의 경향은 원불교의 사은이 가지는 생태적 시사점과 다양한 만남의 가능성을 가진다. 서구에서 출발한 담론들이 요즘 지구를 중심에 두기 시작했다고 할 때, 한국에서 등장한 사은이 가지는 접점, 나아가 사은보은 불공 등은 이들 서구적 사조가 담지하지 못한 실천적 요소와 태도의 문제, 수양론적 접근 등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종교라는 울타리 내에서 시작된 교의인 만큼 사은이 가진 생태적 시사점을 보편적으로 담론화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지구인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대중화, 사회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2021년 7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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