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권원준 기자] 여론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다. 열린 조직일수록 여론의 무게감은 크다. 여론이 구성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은 여론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여론분석은 의사결정의 주요 요소가 됐다. 반대로 닫힌 조직일수록 여론의 무게감은 작다. 여론이 구성원의 의사결정에 제한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은 여론을 간과한다. 오히려 여론을 호도해 구성원을 의도된 결과로 유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론은 양면성이 있다. 전자라면 건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에 일조하겠지만 반대일 경우 끔찍한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열린 조직을 향한 여론의 무게감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일찍이 소태산 대종사는 열린 조직을 향한 여론의 무게감을 간파했다. 오히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바로 ‘공의(公議)’를 말씀했다. 『원불교 대사전』에는 공의를 ‘사회나 단체의 대중들이 의견을 내고 논의를 거쳐 대체로 옳다고 합의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여론이 원석이라면 공의는 보석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공의 정신으로 집단지성의 완벽함을 추구했다. 설령 결과가 좋더라도 공의를 거치지 않으면 원천 무효로 돌렸다. 그 결과 공의는 원불교 의사결정의 핵심역량이 됐다.

공의의 시작은 정보제공과 의견수렴이다. 조직은 정확한 정보전달에 바탕 한 의견수렴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구성원도 ‘카더라 통신’이 아닌 정확한 정보를 배경으로 의견을 제안하고 끊임없는 소통으로 집단지성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은 문제를 해결하는 명약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공의로 처리한다면 명약에 명의술이 만난 것이 된다. 완벽한 처방이다.

몇 년 전 법보신문에 실린 논설 중 일부분이다. 논설위원은 “원불교는 작은 교단이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교와 함께 4대 종교라는 이름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라고 평했다. 그 요인으로 “어떠한 질문을 받으면 구성원들이 해답을 찾고자 끊임없는 토론 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으면 실천으로 나서기 때문이다”라고 기재했다. 이웃 종교도 원불교 핵심역량 가운데 하나를 공의로 보았다. 

원불교 2세기의 시작이다. 앞으로 우리에겐 더 많은 일과 더 큰 일이 주어질 것이다. 공의 정신이 더욱 간절한 이유다. 이에 우리는 공의를 가슴에 새기며 소태산 대종사가 실상사에서 인장 바위를 가리키며 했던 말씀을 기억하자. “저 바위 속에 금이 든 줄을 알았거든 내가 먼저 채굴하여 그것을 광채 있게 쓰면 사람들이 나의 부유해진 연유를 알고자 할 것이다.” 여론이란 바위라는 개체라 본다. 바위 속에든 금은 바로 공의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 공의를 잘 채취하고 캐내어 교단발전을 위해 광채 있게 사용해야 할 때다.

[2021년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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