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공도편 50장에서는 “사람을 교화하는 이는 자신이 먼저 실지로 느끼고 체험하여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설교하며, 진실하게 참다운 인연을 널리 맺고 대중을 두루 살펴 감화시켜야 모든 사람과 참다운 법연이 맺어지고 기운이 서로 응하여 참된 교화가 이뤄지나니라”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설교(設敎)와 강연(講演) 또는 경강(經講)의 차이를 물으면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강연 방식으로 설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설교 방식으로 강연을 하기도 해서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산종사의 법문을 통해 볼 때 의외로 이 둘의 구분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정전에서는 “강연은 사리간에 어떠한 문제를 정하고 그 의지를 해석시킴이니, 이는 공부인으로 하여금 대중의 앞에서 격(格)을 갖추어 그 지견을 교환하며 혜두(慧頭)를 단련시키기 위함이요”라고 했다. 곧 강연은 정기훈련 11과목 중 사리연구 과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반야(般若)의 ‘지혜’를 단련시키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연을 통해 밖으로 누군가를 설득시키거나 또는 교리적인 논쟁을 할 수도 있는데, 그 분명한 목적은 바로 자신이나 대중의 내면적 지혜를 밝히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경전 과목도 사리연구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경강도 지혜를 단련하는 수행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산종사는 설교에 대해 ‘자신이 먼저 실지로 느끼고 체험하여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고 했으며, 설교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교화’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곧 우리가 새 정법회상의 도덕을 배우고 꾸준히 실행하는 가운데 체득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세상에 나아가 가르침을 펴는 것이 바로 설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지혜’를 얻게 하는 강연과 확연히 다르다. 교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는 ‘자신 교화’와 ‘자기불공’, 또 다른 사람의 삶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생 교화’와 ‘사실불공’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설교는 그 목적 자체가 ‘불공의 실천’이며 ‘교화’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동안 교당 교화가 법회와 설교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해 왔다. 원불교가 개신교처럼 ‘말씀’에만 치중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산종사의 말씀처럼 원불교의 ‘설교’는 결코 말에 있지 않고, 머리로 지혜 얻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일상의 실천을 통해 신념을 얻어 대중을 교화해 가는 ‘설교’가 바르게 자리를 잡아 재가출가를 떠나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교화의 결실이 넘치는 교단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영산선학대학교

[2021년 7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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