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교당 교도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통합교당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오누이교당 교도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통합교당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불교신문=권원준 기자] ‘공부!짝짝짝 교화!짝짝짝! 봉공!짝짝짝 통합 통합 야!’ 대한민국의 경제중심지 강남에서 힘찬 울림의 소리가 ‘오누이교당’의 미래를 용솟음치게 한다. 대치교당(김기홍, 성도경 교무)과 압구정교당(박법일 교무)이 통합으로 교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 현장을 찾았다.


대치와 압구정의 필연적 만남
대치와 압구정 통합교당은 ‘오누이교당’으로 불린다. 통합교당의 정식명칭이 정해질 때까지 쓰는 태명이다. 오누이처럼 서로 마음을 연하며 진한 법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대치교당과 압구정교당은 서울교구 내에서도 각각 40년과 48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교당이다. 역사와 더불어 강남교화를 대표하는 교당이다. 그런데도 두 교당은 통합을 결정하고 통합교당 완성을 위한 길을 가고 있다. 통합의 가장 큰 배경은 교당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 위함이다.

여청식 통합교당 교도회장은 “교당의 노령화와 젊은 교도 정체 등의 요인으로 새로운 교화전기의 마련이 필요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이 인근 교당과 통합해 교화의 시너지를 내는 것이었다”고 통합 배경을 설명했다.

통합의 시작은 원기102년 8월 25일이었다. 교도들은 이전부터 통합의 필요성 느끼고 있었지만 실행하진 못했다. 그러다 통합이 급물살을 탔다. 김정국 당시 대치교당 교도회장과 여청식 압구정교당 교도회장이 발의한 두 교당 통합에 대해 김기홍 교무와 박법일 교무가 적극적으로 합력했기 때문이다.

김종신 부회장은 “교무님들의 의지가 통합교당의 한 축이 됐다”며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교무진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또한 교당 통합에 서운한 교도들도 있었을 터, 교도들은 교당 미래를 위한 대의를 생각하며 마음을 합했다. 

그렇다면 왜 많은 교당 중 대치교당과 압구정교당 이었을까. 우선 두 교당이 통합이라는 큰 틀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교도 수, 자산 등의 규모가 비슷했고 거리가 가까운 것도 통합의 요인이었다. 또 두 교당이 가진 과제도 통합으로 자연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압구정교당은 교도들의 교당 접근성을, 대치교당은 교당의 확장성을 과제로 가지고 있었다. 
 

‘공부!짝짝짝 교화!짝짝짝! 봉공!짝짝짝 통합 통합 야!’ 오누이교당 교도들이 교당의 비전이 담긴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있다.
‘공부!짝짝짝 교화!짝짝짝! 봉공!짝짝짝 통합 통합 야!’ 오누이교당 교도들이 교당의 비전이 담긴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있다.


모든 경계는 지금을 있게 한 힘
지금은 웃으면서 말한다지만 통합과정에서 교도들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통합 초기 단계인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무려 27차례의 의견조율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과정마다 쉽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중 가장 큰 일이 두 교당의 화합과 교당건물 매입이었다. 안으로 교도, 교단과의 화합을 생각해야 했고 밖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부동산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먼저 두 교당의 원만한 동행을 위해 두 교무가 앞장섰다. 대치교당 교무는 압구정교당으로 압구정교당 교무는 대치교당으로 김 교무와 박 교무가 교무교환법회를 진행하며 교당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후 두 교당이 함께 법호인 훈련, 재가교역자 훈련, 교도정기 훈련을 시행하며 교도 사이를 가까이하는 데 힘썼다. 

진경조 부회장은 “두 교당의 교도 30여 명이 참여하는 모임을 꾸려 통합의 밑거름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하며 전 교도가 원만한 통합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음을 밝혔다.

통합교당 건물 매입 건은 첩첩산중이었다. 처음 매입하려던 건물을 두고 소수지만 교도들 사이에서 반대가 있었다. 찬성하는 교도들이 많았지만 투표를 하지 않았다. 교화를 위해 시작한 통합이 한 사람의 교도라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본의에 어긋난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건물을 사려 했을 때는 전체 교도가 찬성했지만, 이번엔 교단 내적인 문제로 매입하지 못했다. 또 현재의 부동산 상황과 맞물려 성사까지 갔던 일도 판매자가 가격을 올려 결국 다시 제자리가 되기도 했다. 

통합교당 건축위원장을 맡은 감필국 부회장은 “지금까지 많은 진통이 있었다. 특히 부동산 업자의 농간, 부동산 시세의 급등으로 부동산을 100곳 이상 다녔다”며 “밤잠을 못 잔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뇌 속에 지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박법일 교무는 “교당을 통합하는 일은 교단 전체가 한마음으로 지원해야 가능한 일이다”며 “해당 교당만의 문제가 아닌 교단의 정책으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렇게 재가출가 전 교도의 화합과 노력, 무엇보다 교당을 위하는 마음과 마음이 모여 새로운 건물을 매입했고 내년 입주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법회 전 박법일 교무가 교도들과 법정을 나누고 있다.
법회 전 박법일 교무가 교도들과 법정을 나누고 있다.
김기홍 교무가 법회시간 설법을 하고 있다.
김기홍 교무가 법회시간 설법을 하고 있다.

원불교 대표 교당으로 우뚝
“종법사님께서 사람들에게 그 교당에 한번 가보라 하셨을 때, 바로 우리 교당이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 원불교 교당의 모델을 만들겠다.” 교도들의 꿈이다. 통합과정에서 고난의 크기만큼이나 꿈의 크기는 훌쩍 커 있었다. 오누이교당은 온라인 교당 콘텐츠 개발로 ‘개벽을 선도하는 스마트교당’, 이를 바탕 해 세계교화까지 연계하는 ‘글로벌 교화의 중심교당’, 교도·비교도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항상 살아있는 교당·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교당’을 만들겠다 선언했다. 구호나 다짐 정도가 아닌 구체화를 통해 교당구조도 이 꿈을 다 담을 수 있도록 맞춤 설계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통합의 열매가 영글어 가고 있었다. 

김기홍 교무는 “통합을 시작할 때가 벌써 4년 전이었다. 교도들의 신심과 공심, 에너지, 지식, 지혜를 모아 단 하루라도 빨리 통합을 완료해야 한다”며 “교도들이 하나가 된 이때, 지금이 강남의 중심교당을 만들 마지막 기회다”고 말했다. 이어 “오누이교당의 통합이 본보기가 돼 제2, 제3의 통합교당이 탄생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재 오누이교당은
압구정교당을 매각한 이후 원기104년 8월 압구정교당은 대치교당으로 옮겨 하나의 교당을 만들었다. 하나 된 교당은 교화·교육·자선을 3대 목표로 세웠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교도들의 신앙수행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법회에서는 전문인 교도들이 강사가 돼 특별법회를 진행하고 감상담을 발표하며 색다른 법회를 선보이기도 한다. 법회 외에도 화요교리공부, 수요가족기도, 수요선법회, 일요염불선방 등의 다양한 법 잔치가 가득하다. 코로나 이후 30·40세대 교화를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교육사업은 장학회를 운영해 예비교무 2명, 전무출신 자녀 3명, 교도가 추천한 2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며 타자녀 교육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자선은 봉공회가 주축이 돼 지역사회 은혜 나눔, 아프리카 돕기, 네팔돕기를 지속하며 국내와 더불어 세계교화사업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유행으로 미뤄졌던 네팔 한글학교 개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도 이을 예정이다. 김 교무는 “이 모든 활동이 교도님들의 인프라에서 비롯됐다. 이것이 우리 교당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인프라에 공간이 더해지면 교화·교육·자선 3대 사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교단 2세기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여정을 나선 ‘오누이교당’. 그 여정은 후일 통합을 꿈꾸는 교당의 소중한 발자취로 남을 것이다.
 

원기104년 대치교당과 압구정교당 교도들이 교당통합울 위한 걸음으로 정기훈련을 함께 참여했다.
원기104년 대치교당과 압구정교당 교도들이 교당통합을 위한 걸음으로 정기훈련을 함께 참여했다.
원기84년 준공해 20여 년간 교도들의 신앙수행의 장이 됐던 대치교당의 모습이다. 내년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동을 앞두고 있다.
원기84년 준공해 20여 년간 교도들의 신앙수행의 장이 됐던 대치교당의 모습이다. 내년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동을 앞두고 있다.

[2021년 7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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