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욱 교무
강현욱 교무

[원불교신문=강현욱 교무]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합리성’과 내 삶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인식을 통해 전 근대의 ‘주술’이 깨어지고 근대라는 시대가 열렸지만 한계는 있었다. 계급은 사라졌지만 자연과학을 통해 알게 된 약육강식이라는 자연 일부의 모습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며 힘 있는 자의 무한한 ‘자기 결정권’이 합리화된 것이다.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어른이 아이를 통제, 지배했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사용했다. 보호되어야 할 아동들조차 노동 전선에서 착취됐다. 강대국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치, 경제, 군사적 요소를 이용해 약소국의 토지, 노동력, 원자재, 농산물, 시장을 수탈하는 ‘제국주의’가 등장했다. 

그러나 결국 강대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은 세계대전으로, 식민지를 통한 과잉 생산은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이어지며 세계는 ‘공멸’이라는 경각심을 갖게 됐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세계인권선언문’의 발표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인류는 2차 세계 대전, 냉전 시대를 지나오며 힘 있는 자가 무한한 ‘자기 결정권’을 가진다고 이해한 약육강식은 강자와 약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생’이라는 커다란 이치 속의 작은 일부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 속에서 올바른 ‘자기 결정권’과 ‘공생’의 조화를 고민하고 실천하며 근대의 한계를 깨고 오늘날까지 왔다. 물론 신자유주의와 같이 무한 경쟁 통해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며 각자도생의 길로 빠지기도 했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나 코로나 사태와 같은 위기를 겪으며 연대와 공생을 길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새 종교의 의미는 바로 여기서 빛이 난다. ‘인과 신앙’과 ‘자기 수행’을 통해 올바른 ‘자기 결정권’을 갖게 하고,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깨달아 그에 대한 ‘보은’을 실천하며 ‘공생’의 삶을 제시한 것은 소태산 대종사의 역사 인식과 그에 대응한 실천론이 얼마큼 정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는 ‘주술’의 시대였던 전 근대와 ‘약육강식’의 시대였던 근대를 넘어 ‘자기 결정권’과 ‘공생’의 조화를 추구한 새 종교로써 자리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가족, 또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의 자기 결정권을 훼손시키는 가부장적 문화와 군대 문화,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임에도 사용자로부터 노동자들의 자기 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에 대한 여전한 터부, 직장 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사회 내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무한 경쟁이라는 교육 시스템에서 길러진 극단적 이기주의, 교조화된 가치나 이념, 확증편향, 위계와 관행, 권위 의식 등이 ‘자기 결정권’을 위축시키고 ‘공생’을 가로막으며, 현대인들 ‘경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이러한 경계에 대해 ‘돌린다’라는 말로써 ‘정신승리’를 시키거나 정치의 영역에 종교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며 이러한 근본 원인을 외면시켜오지 않았는지 되돌봐야 한다. 또한 원불교라는 조직에는 이러한 모습이 없는가 되돌아봐야 한다. 새 종교의 정신인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을 올바르게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척도는 결국 ‘생활의 범위’를 어디까지 상정하고 있고, 생활 속에서 ‘공생’의 가치를 지키며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가이다.

/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교당

[2021년 8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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