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학의 방법에 대한 성찰과 발전적 모색을 위하여-

하상의 교무 /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하상의 교무 /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원불교신문=하상의 교무] 원불교가 개교해 원기106년에 이르렀다. 20~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원불교는 비교적 꾸준히 성장해 왔고 주인정신이 있는 재가 교도들도 여기저기 포진하고 있어 교단의 분위기가 상당히 알찼다. 이후 교단조직은 더욱 권위적으로 가고 모든 의사결정이 상의하달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보니 오늘날 같은 전서 참사가 발생하게 됐다.

과거에 『불교정전』 수정작업은 정산종사 대에 시작해 대산종법사 대에 수정이 완료돼 오늘의 『원불교교전』이 있게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때는 『불교정전』 수정을 위한 의원들이 지정됐는데 최대한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을 많이 듣고 이해하는 수준이 객관적으로 인정됐다. 또 그 과정이 비교적 공개적이고 모든 교무들이 열람도 하고 의견제시도 하면서 이뤄져 과정상에서는 무리가 없이 합리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종교사상이라면 대단히 치밀하게 정교한 학문적 방법들이 동원되어 교법정신을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에 현대의 발전된 학문적 방법들을 동원하여 본다면 수정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고 소태산 대종사의 성지(聖旨)가 분명한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점이 있다. 예를 들어, 교리도의 수정 문제와 일원상 진리, 신앙, 수행을 정산종사가 직접 작성했고 소태산 대종사가 이를 수용해 그대로 넣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이 수정된 현재 『정전』에서 변화된 내용과 원래의 『불교정전』 내용과의 차이점에 대하여 한국에서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공개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오직 미국에서 ‘원불교윤리학: 원불교 도덕체계의 개념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서양철학 인도철학 중국철학 불교학 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불교정전』에서 교법의 심장이 되는 몇 가지 점은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한국에서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교리도의 수정에 따른 문제
『불교정전』의 ‘교리도’는 현 『정전』과 많이 다르다. 보은의 대요가 제거되고 그 자리에 사요가 들어가고, ‘보은즉불공’에 해당하는 ‘보은의 대요’가 삭제된 채 사요가 들어가면서 마치 사요가 ‘보은의 대요’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동정간 불리선’에서 “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라는 내용이 생략됐다. 이 부분을 수정하자는 논의가 나오자, 여자계에서 ‘사요’가 어떻게 신앙문이 되느냐는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구타원 이공주 감수위원은 사요는 변할 수도 있다고 했으나 사은사요는 인생의 요도이니 들어가도 무방하다고 했다.

초기 교서에서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 그리고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함께 묶어 사용해 왔지만, 소태산 대종사의 친제인 『불교정전』을 편집할 때에 일원상 진리를 종지로 신앙문과 수행문으로 나누어 ‘교리도’를 형성할 때는 새롭게 교리체계를 재정립한 의미가 있어 초기경전인 『보경육대요령』과 『보경삼대요령』에서 밝인 교리도와는 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불교정전』의 ‘교리도’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소태산 대종사의 언급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원기28년(1943) 계미(癸未) 일월에 대종사 새로 정한 교리도(敎理圖)를 발표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 교법의 진수가 모두 여기에 들어 있건마는 나의 참 뜻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꼬. 지금 대중 가운데 이 뜻을 온전히 받아갈 사람이 그리 많지 못한 듯하니 그 원인은, 첫째는 그 정신이 재와 색으로 흐르고, 둘째는 명예와 허식으로 흘러서 일심 집중이 못 되는 연고라, 그대들이 그럴진대 차라리 이것을 놓고 저것을 구하든지, 저것을 놓고 이것을 구하든지 하여, 좌우간 큰 결정을 세워서 외길로 나아가야 성공이 있으리라.” (『대종경』, 부촉품 7)
 

상기 인용글에서 소태산 대종사가 ‘교리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새로운 종교윤리로서의 사은사상
깊이 생각해보면, 지은보은의 사은과 사요는 큰 차이가 있다. 지은보은은 원불교의 종교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고 사요는 조선사회의 폐단을 혁신하고자 하는 사회윤리에 해당한다. 사은사상에 바탕한 원불교의 은의 윤리는 5만 년 대운을 이끌어 갈 종교윤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에 사요는 매우 중요하나 사회가 개선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게 되면, 그에 따라 사회문제가 해소되면 그때는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았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교법 가운데 일원을 종지로 한 교리의 대강령인 삼학 팔조와 사은 등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다시 변경할 수 없으나, 그 밖의 세목이나 제도는 그 시대와 그 국가에 적당하도록 혹 변경할 수도 있나니라.”(『대종경』 부촉품 16)
 

상산 박장식 감수위원도 보은의 대요는 그대로 두고 ‘사요’를 넣고 싶다면 『불교정전』 교리도 아래에 있는 사대강령 대신에 넣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소태산 대종사가 ‘교리도’가 거북이 모양 같아 오래 수명을 할 것이라고 하신 꼬리모양에 사대강령이 있는데, 사대강령은 교리도의 네 다리에 있기 때문에 중복됐기 때문이다.

‘지은보은’에서 사은과 보은의 대요를 살펴보면, 종교 신앙의 면에서 그리고 종교윤리의 면에서 보면 가히 소태산 대종사의 가장 창의적이고 탁월한 가르침이다. 인과보응의 신앙문에서 지은, 보은, 배은의 길을 밝히고 ‘보은의 대요’ 즉 천지은에 대해 응용무념의 도를 실천하고, 부모은에 대해 무자력자 보호의 도, 동포은에 대해서는 자리이타의 도, 법률은에 대하여는 정의는 실현하고 불의는 버리는 도를 실천하는 것이 원불교의 신앙 행위라는 것인데, 이것은 과거 종교의 신앙형태와 비교하면 과히 혁명적이다. 보은즉불공은 바로 보은의 대요를 실천하라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원불교의 은의 윤리는 ‘보은의 대요’를 실천하는 것이며, 원불교의 감사생활은 보은의 대요를 실천하는 것으로 타종교의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의미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특히 원불교의 은사상과 보은의 대요를 의미하는 은의 윤리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원적인 처방전이다. 특히 사회문화적 의미에서 은의 윤리는 정치 경제 및 생태문제를 비롯해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묘약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원불교 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보은의 대요’가 교리도에서 빠지면서 교리도로서의 의미가 손상된 점이 없지 않다. 더 나아가 원불교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감사생활은 보은의 대요가 빠진 채 흔히 하듯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정도로 이해하거나 혹은 어떤 교단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하면 감사생활 못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원불교학 연구의 두 가지 접근법
새로운 종교사상이 천명될 때는 과거의 사상에 대한 평가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처방이 제시된다. 따라서 새로운 종교사상의 연구에는 반드시 역사적 철학적 언어학적 접근과 함께 동시의 중요 과제들과의 관계에서 새 종교사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주요 과제가 된다.

원불교라는 교명에서 보여 주듯이 불교와의 관계는 부정할 수 없이 명확하다. 소태산 대종사도 우리가 배울 바도 가르칠 바도 불법(佛法)이라는 것을 이미 천명했고,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비롯해 참고 경전들이 있다. 원불교는 불교의 맥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회문화와 정치 경제의 독특한 상황을 인지하면서 인류에게 닥칠 위기와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종교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원불교학의 방법도 한편으로는 역사적 철학적 언어학적 문헌학적 연구를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철학사상이 원불교 사상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 분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원불교의 교명에서 불교사상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나타나지만 원불교의 근본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불교정전』 혹은 『정전』에는 불교사상만이 아니라 중용과 대학을 비롯한 유교의 가르침과 노장사상 또한 내재 돼 있다. 다른 한편으로 원불교가 새로운 시대의 과제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문제의식과 처방이 있는 만큼 동시대의 과제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반에 걸쳐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방향에서 원불교 사상의 조명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원불교학을 함에 있어 한편으로는 역사적·철학적·언어학적 연구와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적 과제들 속에서 교법이 갖는 의미를 밝히고 사회적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고 교화 활동을 펴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소태산 대종사의 친제인 『불교정전』을 다시 깊이 들여다보는 일도 미래 원불교를 생각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교학의 과제일 것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 이 글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이 2021년 7월 15일에 진행한 ‘원불교학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의 일부이다. 발표내용 중 ‘일원상 수행’의 반야심경과 금강경의 관련성의 문제 그리고 원불교사상의 동시대적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연구 부분은 지면상 생략됐다. 

[2021년 8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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