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평양 거리의 모습.
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평양 거리의 모습.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불볕더위 속에 연인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팥빙수를 정겹게 먹고 있다. 엄마는 과일빙수를 먹는 아이에게 손선풍기를 대주며 더위를 잠시 잊는다. 평양 시민들의 여름나기 풍속도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폭염이 이어지자 북한의 방송도 “최근 대부분 지역들에서 35도 이상의 고온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음료나 과일물과 같은 음료를 많이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연일 무더위 건강관리법을 특집으로 소개하고 있다. 

외출할 때 색안경(선글라스)과 부채, 양산은 기본이고, 손선풍기를 든 젊은 층이 늘었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북한도 폭염 피해를 막기 위해 건설현장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외부 공사를 중지하고 내부공사만 하도록 했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에서는 일반 가정집에 에어컨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도 저녁이면 퇴근한 직장동료끼리 맥줏집으로 삼삼오오 모여 맥주 한 모금에 더위와 스트레스를 날리고, 하굣길 청소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든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여름철 풍경이다. 

몇 년 전부터는 ‘삼복철 더 흥성이는 빙수 매대’를 소개하는 언론보도가 부쩍 늘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다양한 빙수가 “풍부한 영양 성분으로 하여 건강에 아주 이롭다”면서 “탁(식탁)과 의자, 봉사조건이 잘 갖추어진 빙수 매대들은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발길을 절로 그리로 돌리게 한다”라고 소개했다. 
 

빙수매대를 찾은 아이와 대학생들이 시원한 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빙수매대를 찾은 아이와 대학생들이 시원한 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코로나로 문 닫은 물놀이장과 해수욕장
더위로 지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보양식을 섭취하는 음식 문화도 비슷하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단고지’(개고기) 요리를 으뜸가는 삼복철 보양식으로 꼽지만 삼계탕 등 다른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북한에는 ‘피서’라는 말이 별도로 없다. 여름이면 집에서 가까운 물놀이장이나 강과 계곡 등을 찾아 더위를 식히는 정도다. 여름이면 평양의 경우 대동강구역에 건설된 문수문놀이장이나 능라도의 물놀이장은 그야말로 “물 반 사람 반”이 되고, 함흥의 마전해수욕장이나 원산해수욕장 등 인기 휴양지는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도 가득 찬다. 

북한은 7~8월에 휴양객들을 위해 평양-함흥, 평양-원산을 운행하는 특별열차를 운행해왔다.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원산 송도원국제야영소를 비롯한 각지의 야영소에 입소해 각종 체험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역간 이동이 금지되고, 물놀이장이나 해수욕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예년 같았으면 “ ‘아!’하고 소리쳤는데, 어느 순간에 내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한 번 더 타고픈 심정입니다”라고 하는 문수놀이장의 워터슬라이드를 즐기는 모습이나 “날씨가 더운 조건에서 해수욕과 같은 운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각 지역의 해수욕장 풍경을 방송했어야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그런 보도가 사라졌다. 대신 시원한 강서약수나 빙수를 소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무더위 막바지인 8월 28일은 북한에서 ‘청년절’이다. 1991년 제정된 청년절에는 무도회와 각종 전시회, 체육, 예술공연 등 다채로운 경축 행사가 열린다. 2000년대에 방북했을 때 마침 청년절에 평양 모란봉에 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야유회나 데이트 나온 청년들로 공원이 꽉 차 있었다. 
 
특히 동평양의 청년중앙회관에서 열리는 ‘청년절 무도회’는 많은 청년들이 기대하는 행사다. 지난해 코로나사태로 대규모 집회가 금지된 상황에서도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대규모 청년절 야외공연이 열렸고, 객석에 앉은 청년들은 오랜만에 거리두기를 하지 않은 채 풍선과 카메라 손전등을 흔들며 공연을 즐겼다. 공연 후에는 흥겨운 무도회가 이어졌다.
 

함흥 마전해수욕장, 능라인민공원의 물놀이장, 개선청년공원 놀이장, 시원한 자연사박물관 등은 여름철 평양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지만 코로나19사태로 지난해부터 문을 닫았다.
함흥 마전해수욕장, 능라인민공원의 물놀이장, 개선청년공원 놀이장, 시원한 자연사박물관 등은 여름철 평양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지만 코로나19사태로 지난해부터 문을 닫았다.

피서보다 자연재해 걱정 늘어
올해 청년절에도 이런 행사가 열릴지는 불투명하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복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가뭄과 폭우, 태풍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북한은 올해 일찍부터 가뭄과 홍수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십 도가 훌쩍 넘는 기록적인 폭염에 대처하기 위해서 평양에서는 물 뿌림 차(살수차)가 등장하고 농촌지역에서는 농작물에 대한 물주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지난해 태풍피해가 심했던 함경도지역에 하루 2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다시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함경북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400mm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도로가 잠기는 등 물바다가 됐다. 지난해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북한은 군인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돌격대’를 구성해 현장에 투입했다. 올해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산림이 황폐화되어있기 때문에 토지의 저수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질 경우 심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조건이지만 세계적인 기상이변과 기후위기를 고려한다면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남과 북은 임진강과 북한강 등 공유하천이 많다. 북의 홍수피해에 대한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치수와 용수를 위한 남북한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8월 28일 청년절을 맞아 동평양 청년중앙회관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남녀 대학생들이 춤을 추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사태가 터지기 전의 모습이다. 
8월 28일 청년절을 맞아 동평양 청년중앙회관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남녀 대학생들이 춤을 추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사태가 터지기 전의 모습이다.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1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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