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광 교무
박도광 교무

[원불교신문=박도광 교무] 종교의 생명력은 구성원의 종교 체험이 얼마나 절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교조의 정신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원불교 신앙의 원형은 소태산 대종사가 9인 제자들과 함께 산상에서 올린 ‘법인(法認)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법인기도는 1919년 3월 26일(음, 양 4월 26일)에 시작하여 동년 10월 6일(음, 양 11월 28일)까지 매 열흘마다 개인별로 정해진 아홉 봉우리 산상에 올라 밤 10시부터 자정에 이르기까지 하늘에 올린 기도이다. 

기도를 올린 동기는 무엇인가? 이는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일제강점기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소태산 대종사는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 소리니 바쁘다.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드리자”라고 하였다. 도탄에 빠진 민족과 창생을 구원할 목적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원불교의 법인기도는 세계 종교사에서 찾아보기 드문 내용과 형식을 담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하여 9인 제자들은 10인 1단의 단조직을 구성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8방을 응하도록 했다. 이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천의(天意)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으며, 진리와 감응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기도를 시작한 지 100여 일이 지나 7월 26일(음, 양 8월 21일)에 올린 기도과정에서 나타난 신비한 종교현상은 현재 원불교의 ‘법인절’이라는 4대 경축일로 삼게 된 계기가 됐다. 소태산 대종사는 9인 제자들과 더불어 도실 한가운데 청수를 진설해 놓고 기도하는 중, 죽어도 여한이 없다(死無餘恨)는 서약을 하고 맨손으로 찍은 지장(指章)들이 혈인(血印)으로 변하는 신비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소태산 대종사는 9인 제자들에게 전날의 이름을 가진 이는 이미 죽었으며, 세계 공명(公名)인 새 이름을 주어 많은 창생을 제도할 책임을 있음을 천명하였다. 그는 세속의 사사로운 개인의 상징적 죽음을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려 성불제중의 공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종교사적으로 희생제의가 갖는 죽음과 생명의 새로운 재탄생을 의미한다. 

200일 넘게 행하여진 간절한 기도는 기도인 스스로 모든 생령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게 하고 궁극적 진리의 세계와 하나가 되는 종교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였다. 법인기도는 종교적 제의(祭儀) 형태로 이루어진 원불교의 숭고한 신앙의 정수이며, 선후천 교역의 새로운 개벽시대를 열기 위한 민중의 제천의례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의 새로운 정신적 생명의 탄생을 기원하고 창생 구제를 통해 광대무량한 낙원 세계를 이루기 위해 행한 것이다. 오늘의 우리가 기념하는 법인절은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태산 대종사와 9인 제자의 사무여한 정신으로 기도한 정성과 감동을 그대로 체득하고 전승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원광대학교

[2021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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