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인류 각자의 업을 공업(共業)의 차원에서 구제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원불교의 존재 이유다. 인류가 점차 개인의 변화만으로는 전체를 구제하기 힘든 임계점에 다가서는 상황에서 개교의 동기, 즉 법인정신이 얼마나 선진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대재앙 앞에서 이 법인정신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이 무엇인지 원불교 신앙의 차원에서 논하고자 한다.


법인정신과 대승의 서원
법인정신은 원불교 창립정신의 핵이다.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 이하 소태산)의 깨달음을 사회화한 동시에 인류 모두의 구제를 위한 절대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종교치고 이처럼 사회 구제를 정면에 내걸며 창립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원불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이처럼 명확히 밝힘으로써 구제종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에 표명한 것이다. 소태산은 “옛 성현들도 창생을 위하여 지성으로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天意)를 감동시킨 일이 없지 않나니, 그대들도 이때를 당하여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 하여 볼지어다”라고 한다. 이는 집단희생에 의거한 집단부활을 의미한다. 인류의 대리고(代理苦)를 짊어진 순교를 앞 둔 행위와 다름이 없다.

이는 필자가 주장하듯 대승불교의 정신을 재현한 것이다. 초기불교가 성문승(聲聞僧)들에 의해 독점된 것으로부터 탈피해 대중화의 길을 걸은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깨달음은 법신불의 화현인 소태산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자비를 통한 대중의 구제 사명으로 전환됐다.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에 말하는 서원(誓願), 발원(發願), 대원(大願)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불교 신앙의 혁명성
신앙이라는 말은 동양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다.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일반화된 언어다. 신앙은 신의 존재를 믿고 이에 귀의하는 것이다. 나아가 신앙고백을 통해 거듭나는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간다. 철저히 주관적인 믿음을 통해 선악으로 점철된 현실을 극복하는 하나의 신념체계인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 이러한 서양 기독교의 신앙론은 그 절대성이 무너짐으로 인해 상대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서구사회의 독점적 지배가 무너지는 것과도 연동된다. 이에 대해 원효 연구자인 박태원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인간·세계·역사를 보던 서구 기독교 중심의 관점이 지닌 무지가 폭로되자 다양성과 다원성을 수용하기 위한 가치중립의 태도가 요구되었고, 이러한 문화 상대주의적 개안은 급기야 ‘다양한 것들은 나름대로 다 맞다. 가치평가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극단적 상대주의’를 확산시켰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치중립의 학문관에 대한 비판으로 ‘문제해결력을 중시하는 가치평가적 학문관’과는 단절된 학문관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원불교 신앙의 핵심은 이러한 동서양 신앙의 접점에 와있다는 점이다. 박상권은 원불교 신앙을 일원상 신앙과 사은신앙, 처처불 신앙으로 나눈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법신불 일원상의 절대성을 내포한 법성(法性)이 우리 안에 있으며, 개개인의 영혼을 우주의 중심으로 하는 관계의 절대성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법신불 신앙을 중심으로 사은신앙, 사은신앙이 사요신앙으로 구체화해 가는 과정이 원불교 신앙론의 요체다. 이찬수가 말하는 범재신론적 신앙의 골격이 원불교에서는 완성되어 있다. 이를 삶에서 구현해 가는 신앙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종교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개교표어는 
현대 문명을 계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원불교 신앙의 사회화
원불교의 신앙의 과제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불법에 기반한 신앙의 원초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둘째는 현대 문명의 오도된 길에 대한 저항을 통한 정의와 평화의 구축이다. 전자는 소태산이 추고하고자 했던 원래의 정신으로 회귀해 오늘날 어떻게 이를 재현해 내는가의 문제이다. 후자는 함께 살아가는 이 세계, 공멸을 자초하고 있는 인류의 앞길에 대해 원불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첫째 신앙의 원초성은 소태산의 정신을 이 시대에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원래의 서원, 발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20세기 실천신학을 몸으로 보여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는 예수가 바로 신학이라고 한다. 실제 불교학은 석가모니불과 그 법을 이은 제불조사들의 깨달음의 언어가 불교학이다. 해석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이해를 위해 언어를 더욱 분절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소태산이 원불학이다. 학문은 다음 세대를 위해, 원불교학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 신명이 이미 감응하였고 음부 공사(陰府公事)가 이제 판결이 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 비롯하였도다.”

원불교의 역사는 이로써 완결된 것이다. 이후의 역사는 이 법인정신의 재현일 뿐이다. 소태산이 언명한 교단의 방향인 교화, 교육 자선은 이를 구현하는 길이지만, 이미 진리계로부터 공인받은 것으로 그것을 구현할 뿐이다. 사무여한은 이러한 믿음을 말한다.

둘째 불안한 현대 문명을 재구축하기 위한 정의와 평화 구축은 시급한 과제로서 원불교 존재 이유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좁은 의미에 갇혀 있지 않다. 약육강식에 저항하는 의미의 정의와 평화라는 의미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문명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기후정의(氣候正義), 생태정의(生態正義), 경제정의(經濟正義) 등이다. 평화 또한 마찬가지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소극적 평화는 직접적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적극적 평화는 구조적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종교적 평화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통의 원인이 제거된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불교학자 이병욱이 “불교의 공(空)사상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것인데, 문화적 폭력과 연결해서 본다면 불교의 ‘공’사상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과 상통한다.
 
현대의 가장 시급한 처방은 자본주에 대한 것이다. 원불교의 사명은 법인기도를 통해 확립한 종교적 사명감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표어를 현대 문명을 계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서구에서 발전한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무한대로 증폭시키고 있다. 나아가 지구 자원을 착취하고, 인류를 분열시키고 있다.

종교적 정의와 평화는 이러한 인류의 근본적 불평등, 불의, 부조리의 구조를 종교적 차원에서 정견(正見)해야 하며, 이를 현실 사회에서 적용, 혁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교적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종교적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현재의 무기력한 종교적 권위는 근대 유럽에서 시작된 정교분리(政敎分離) 제도가 아시아에도 정착하여 전통종교가 해체된 것에도 기인한다. 사실 동양의 종교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내적 전통이 있어 서양의 관습과는 다르다. 국가와의 관계도 이원론적인 차원이 아니다. 종교든 국가든 삶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촉발된 정교분리의 제도화는 전통 종교의 권위마저도 약화시킨 계기가 됐다. 이 공간으로 자본권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기성종교의 해체를 통해 종교적 절대성은 개인, 국가, 자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Religion은 종교(宗敎)가 아니다. 서양의 종교는 계시종교적 차원에 있으며, 동양의 종교는 삶이 종교이며 종교가 삶인 것이다. 특히 자본이 주도하는 물신화(物神化)는 동양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삶의 패턴이며, 이는 과거에도 비판받던 행태다.

소태산이 구인제자를 선정하고,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할 바이며, 인도는 인의가 주체요 권모술수는 그 끝이니,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라고 설한 것은 이러한 물신화에 대한 강한 비판인 셈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물신화를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소태산이 이를 바로 잡고 “대회상 창립의 주인이 되라”고 한 것은 원불교가 곧 자본으로 대표되는 욕망을 단절하고 참된 인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 본 논문은 영산선학대학교 선학연구원과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주관한 제3회 법인절기념학술대회 발표 내용입니다. 

[2021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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