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교무
홍대선 교무

[원불교신문=홍대선 교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하루에 수십 차례 오랜 시간을 어떤 화면을 보고 살아간다. 그 화면은 원래 있는 자연 또는 주변 환경을 어떤 도구를 활용해 내가 보는 경우를 말한다. 그 도구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들이 핸드폰과 컴퓨터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누가 말할 것 없이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다. 학교가 끝나면 컴퓨터를 활용한 자신의 시간을 보낸다. 이는 일반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보는 화면에 구현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콘텐츠는 화면 스스로 발현할 수는 없다. 화면과 연결된 시스템(기계)에서 내가 보고 있는 화면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시스템 역시 화면이란 도구가 없으면 제공하고자 하는 요소를 이용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 마음도 행동을 보면 내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마음이 시스템이라면 행동은 화면이 되는 것이다. 화면을 통해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해야 시스템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을 반조하지 못하면 마음 역시 치료하기 쉽지 않다. 특히 화면은 내가 먼저 보기보다 상대가 먼저 보는 경우가 많다. 내 삶에 보이는 많은 화면 중에 측은(惻隱)의 화면보다 시비(是非)의 화면만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보려 한다면 내가 발현하는 화면 역시 누군가는 측은보다 시비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수백 명의 학생들을 바라보면 정말 많은 화면을 본다. 그때마다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면 나 역시 측은한 마음으로 학생을 바라보기보다는 시비의 감정만이 남아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늘 유념한다. 화면 속에 나온 다양한 콘텐츠를 보며 때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가슴이 찡하기도 하며 분노하기도 한다. 오늘도 나에게 펼쳐진 은혜의 화면을 바라볼 때 그것이 정말 은혜일까 궁금하다면, 측은한 마음이 먼저 일어난다면, 난 화면(和面)을 보고 있고 시비의 마음이 먼저 일어난다면, 화면(火面)을 보고 있음을 확인하며 오늘은 모두가 화면(火面)보다는 화면(和面)이 더 발견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훈산학원교당

[2021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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