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마음인문학연구소 교수
이기흥 마음인문학연구소 교수

[원불교신문=이기흥 교수] 근심걱정 없는 행복한 삶, 즉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삶, 모든 이들의 꿈일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불교 전통에서는 연기, 공, 무아, 중도, 무착, 불이 등의 사상에 기반한 용심법이 제시돼 실천돼 왔다. 아직도 ‘깨달음·깨침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메시지의 첨예화 작업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해당 메시지를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 좀 더 수월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할 듯싶다.

이를 고려할 때 깨달음을 생각으로부터의 탈출로 이해해 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 전통에서는 서구식 깨달음 개념인 계몽(enlightenment)을 플라톤 이래 생각의 동굴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해 왔고 그리고 최근 서구사회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시드니 뱅크스(Sydney Banks)의 3대원리(三大原理·Three Principles)에서도 이런 시각이 부각되고 있다. 이참에 시드니 뱅크스의 사상도 소개할 겸, 깨달음의 문제를 생각의 동굴로부터의 탈출과 연결시켜 설명해 보겠다. 


시드니 뱅크스 삶의 질, 깨달음 통해 반전
시드니 뱅크스. 아마도 낯선 이름일 것이다. 1931년 스코트랜드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살다가 2009년에 타계한 뱅크스는,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와 비슷하게, 직접 체득한 깨달음을 대중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알려진 인물이다. 9년의 초중등학력이 공적 교육경험의 전부였던 그는 캐나다의 한 펄프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노동자였고 그리고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의 삶의 질은 깨달음을 통해서 완전히 반전된다. 그 일은 그의 나이 42세 되던 1973년에 아내와 함께 참석했던 부부관계 증진 워크숍을 계기로 일어났다.

그렇다고 그 일이 워크숍에서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워크숍에서는 감정 및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치유법으로 제시되었는데, 그 치유법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휴식 시간에 워크숍 참석자들과 심리적 불안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기를 즐겼는데, 그러던 중에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던 한 심리치료사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시드씨, 당신은 불안하지 않아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이 말을 듣고 느꼈던 통찰의 체험을 그는 나중에 한 대중강연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심리적 불안이 그저 나의 생각에 불과했다니! 그 분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마치 폭탄처럼 폭발해 터졌지요. … 그렇게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정말 믿을 수가 없었지요. … 그러고 나서 내 삶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들어섰지요.”

첫 번째 통찰 이후 오래지 않아 두 번째 통찰까지 일어난다. 당시 그는 아내 그리고 장모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순간 갑자기 모든 분별감을 상실하고 희미한 백색(白色)의 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니지만 이 경험과 함께 그는 삶 전체가 원래는 무형의 순수에너지인데 그것이 경험의 형태로 현현하는 것이라는 통찰을 얻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삶에서 이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강렬한 사랑과 이해의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즐겨 공유하곤 했다.

“모든 것이 생각이라는 첫 번째 통찰보다도 더 위대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 위대한 비밀이란 여러분이 오감 너머로 초월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오감 너머로 나아가는 것을 배울 때, 여러분은 행복한 삶,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화에 심취해 있는 이들이

종종 영화를 실제로 여기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영화관에서

진행되는 장면들을, 
3대원리에 의해 주조된 것이 아닌, 
실재계의 재현 이미지로 생각한다

두 가지 통찰 ‘3대원리’로 체계화
심리적 불안정 같은 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고(첫 번째 통찰) 그리고 생각 너머로 초월해 감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두 번째 통찰)는 이 두 가지 통찰을 뱅크스는 나중에 ‘3대원리’라는 이름으로 체계화한다. 3대원리란 ‘마음의 대원리(Mind)’, ‘의식의 대원리(Consciousness)’, ‘생각의 대원리(Thought)’를 말하는데, 이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마음(mind)’, ‘의식(consciousness)’, ‘생각(thought)’ 개념과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의 관계를 영화관람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면 이렇다.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 단계로 이뤄진다. (얘기의 단순화를 위해 영화제작과정은 고려하지 않기로 한다.) 하나는 영상프로젝터에 전원이 공급돼 빛이 필름을 투과하면서 스크린 위에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관람객이 해당 영상을 보는 가운데 사람 각자에게서 개별화된 지정의행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이 두 과정에 비추어 사람에게서, 즉 ‘마음영화관’에서 일어나는 마음작용의 과정이 설명될 수 있다. 영사기의 전기공급 장치, 영사기 그리고 필름이 만들어내는 영상의 생산과정이 사람에게서 마음의 대원리(Mind)에, 의식의 대원리(Consciousness), 생각의 대원리(Thought)가 일으키는 마음작용에 해당한다면, 영화관에서 관람객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과정은 각 개인들이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경험하는 (mind, consciousness, thought의) 과정에 해당한다. 그리고 영화관람자에게 스크린 상의 영상만 보일 뿐, 그 영상이 생산되는 과정은 보이지 않듯이, 사람들 각자의 심리과정에서는 심리적 영상들만 경험될 뿐, 그것들이 생산되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실재계 재현 이미지로 생각해
사람의 마음영화관에서 일어나는 제반 과정들은 원래 저러한 기제로 진행된다는 것이 뱅크스가 깨달은 3대원리론의 요점이다. 하지만 깨닫거나 깨치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과정을 다른 식으로 이해한다. 영화에 심취해 있는 이들이 종종 영화를 실제로 여기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영화관에서 진행되는 장면들을, 3대원리에 의해 주조된 것이 아닌, 실재계의 재현 이미지로 생각할 뿐 아니라, 주·객으로 나눠지는 그것들을 주체가 생산해내는 외부세계의 재현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관념으로서의 ‘세계’ 및 ‘나(에고)’를 실체화하면서 그것들에 집착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겪는 제반 고통번뇌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태동된다. 실제로는 꿈이 아닌 우리 인간의 삶은 이런 식으로 해서 꿈 속의 삶이 되는 것이다.

뱅크스 발 마음병의 예방 내지 치유의 메시지는 이렇다.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꿈을 자각해야 하듯이, 우리가 겪는 고통번뇌로부터 벗어나려면 우리가 하는 생각들이 실제의 반영이 아닌 3대원리의 산물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선을 ‘밖’이 아닌 ‘안’으로 돌려, 심리현상들을 주조해내는 기제이자 심리적 경험들이 생겨나오는 원천이자 고향인 3대원리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말은 생각 너머 실재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실 생각 이전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과 관념으로 덧씌워진 객체로서의 객관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만병을 예방 내지 치유하기 위해서는 생각과 개념으로 덧칠해진 대상세계가 아닌, 생각이 나오기 이전인 3대원리가 지배하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이러한 정보 자체는 일종의 이정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실천을 위해서는 ‘3대원리’라는 개념조차, 타고 올라간 사다리처럼, 버려야만 한다. 즉 명상상태에 들어가야만 한다.

이쯤 되면 뱅크스가 혹시 불교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고통번뇌가 생겨나오는 과정 및 고통번뇌의 치유 논리에 대한 그의 설명에는 아뢰야식, 식전변, 삼세육추, 일체유심조, 무아, 아공, 법공, 직지인심 등 불교에서 사용되는 개념들과 친화적인 측면들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뱅크스의 메시지를 불교의 시각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길도 유의미할 것 같다. 노동자 출신이었던 그의 어휘에는 대중 친화적인 언어와 논리가 스며있어 입문이 수월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 이기흥 마음인문학연구소 교수
ㆍ독일 마부르크 대학교 철학박사
ㆍ서양 현대철학 전공
ㆍ관심 분야: 마음치유 및 마음공부론

[2021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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