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106년 4·5차 전무출신 훈련 훈증 법문

 

공부표준을 어떻게 잡는가에 달려있어
문: 교당에서 일기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강항마위에 오른 분 중에는 탐심, 진심, 치심에 가리고 아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보이는데도 계문을 대조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가 순숙되지 않았음에도 법사라는 틀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 자신을 살펴봐도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지 못하면서 마음을 챙기지 않고 상시일기를 점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요?


답: 우리가 공부를 하다보면 자기 스스로 어떻게 표준을 잡는가에 따라 그 공부가 달라집니다. ‘온전(穩全)’도, 어떠한 상태를 온전으로 봐야 할까요? 경계를 대할 때 흔들리고 안 흔들리고 하는 정도는 기초단계의 온전입니다. 사실 온전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 한 생각나기 이전 그 자리를 말합니다. 그래야 ‘응무소주(應無所住)’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주한 바 있게 마음을 사용합니다.


즉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응용함에 있어 그 일 그 일에 주착됨이 없이 마음을 쓰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승산 양제승 종사님은 이를 ‘바 없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한 바 없는 마음’은 불가에서 ‘이 뭐꼬’의 화두와도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본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지금 행하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본성을 발견하고 합일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온전의 힘이 쌓이고 쌓이면 자타(自他)와 상(相)에 걸림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이 쓰여지도록 표준을 잡고 공들여야 하겠습니다. 

 

법위에 맞는 훈련과 교육 병행
문: 전무출신 정기훈련 중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어 크게 분발심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저희 교당에서는 교도님들과 비대면으로 염불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염불 후 10분 정도 상시일기를 점검하고 있는데요, 신입교도들부터 법랍이 30년 이상이 된 분들까지 함께하다 보니 공부 차이가 많이 나서 어떻게 기준을 잡고 일기를 점검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답: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분이나 연조가 오래된 분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일기 점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통급으로 들어온 분은 보통급 계문을 받아 지키게 되어있지 특신급과 법마상전급까지 기재하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또한 실천사항도 보통급 교도들은 4종의무(조석심고·법회출석·보은헌공·입교연원)를 충실히 이행하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합니다. 다른 것을 과하게 요구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까닭은 우리의 잘못된 교육에 있습니다. 교무들이 원불교학과에 들어가면 처음부터 30계문을 기재하게 합니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정신과는 맞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보통급 10계를 철저히 지키고 차츰차츰 공들여서 기질이 변화되고 훈련이 잘되어 “나는 보통급 계문이 다 떼어 졌다”하는 사람에게 특신급 10계를 줘야 합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4종의무를 지도할 때에도 전체를 실행하라 권하기보다는 그분의 형편에 맞게, 이분이 무엇부터 습관을 들여야 할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만일 조석심고의 습관을 들여야겠다 하면 하루에 한 번 심고를 모시는 것부터 시작해서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합니다. 심고도 어려운 분은 ‘천지하감지위 부모하감지위 동포응감지위 법률응감지위’를 외우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원상 신앙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훈련을 하려면 사실적으로, 실질적으로 기질 변화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획일적으로 전체를 놓고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각 법위별 승급의 기쁨 느끼게 해야
문: 교단에서는 3년마다 법위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급을 졸업하면 특신급과 법마상전급이 되는데요, 교당에서도 각 법위별 승급에 따른 증서를 줘도 괜찮을까요.

답: 참 좋은 질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법강항마위만을 발표하고 그분들에게만 소정의 증서를 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법위를 다 발표하고 승급자 모두에게 축하해야 합니다. 보통급에서 특신급에 오른 분, 특신급에서 법마상전급에 오른 분, 법마상전급에서 예비법강항마위에 오른 분 모두에게 진정으로 승급의 기쁨을 함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법위향상을 위해서는 자신의 법위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전체가 함께하는 훈련도 좋지만, 승급과 함께 법위별로 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종사님께서도 처음 법위를 공개하실 때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발표하셨으니 앞으로 교단도 자기 법위에 맞는 공부 표준을 잡고 적공할 수 있도록 정서가 환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
문: 코로나19 사태가 쉽게 진정국면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대면 법회와 공부모임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원불교는 어떤 방향으로 교화방향을 잡고 나가야 할까요.


답: 먼저 지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비대면 교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 교무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총부에서도 비대면으로 많은 회의와 단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 화상보다는 직접 대면으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생기가 넘치고 윤기가 전해집니다.


이제는 ‘법회출석’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법회라는 것이 대종사님의 정신으로 말하자면 ‘지도인을 만나서 문답 감정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바로 법회입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곳곳에서 정례와 수시법회 외에도 염불, 좌선, 일기, 회화 등 정기훈련 11과목과 상시훈련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부와 교화단 활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혼자하는 공부가 아니라, 시간을 정해 함께 공부하는 단회는 훈련이면서 법회입니다. 또한 교역자 훈련도 비대면으로 많은 부분 진행되고 있으니 앞으로는 비대면 법회의 다각화를 모색해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논의의 과정을 가졌으면 합니다.

 

심법을 갖추고 성리공부에 정진하자
문: 교단 3대를 마감하고 교단 4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재가출가 교도들에게 공부의 방향로를 제시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답: 지금 원불교학과 학생들을 대하면 우리가 수학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명석하고 근기가 솟아있습니다. 물론 사회의 인지도 그만큼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공부길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의 공부가 다른 말로 하자면 ‘심법(心法)을 갖추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법이 있어야 하며, 법 있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심법을 갖추는 데 정진의 공력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법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 가운데 ‘스승의 심법을 모시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스승의 심법을 모시라고 하면 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일 쉬운 길입니다. “저렇게 마음 쓰시는 것은 참으로 내가 본 받을만 하겠다” 생각되면 그 어른을 마음에 모시고, 그 어른의 심신작용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리공부(性理工夫)’입니다. 성리를 입으로는 말하지만 과연 “성리공부에 공들이느냐? 자신이 성품의 원리에 바탕해서 정진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교단 100년 이후에는 여래가 탄생하는 교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대 말에는 출가위가 탄생했고, 이제 3대 말에는 여래위가 탄생 되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염원하시면서 ‘대적공실(大積功室)’ 법문을 내려주셨습니다. 


저는 2대 말인 원기72년, 대적공실 법문이 너무 좋아서 방에다 딱 모셔놓고 늘 마음에 새기고 의심을 걸며 살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런 뜻이려나”하고 짐작이 됐습니다. 물론 처음에 바로 의두로 자리한 것은 아닙니다. 조금 막막하다가도 “이것이 무슨 뜻인가?” 계속 묻고 또 묻다 보니 의심이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적공실 법문의 뜻을 조금 알았다 하는 것, 그런 정도를 대적공이라고 말씀하셨을까?”하고 의심이 제대로 걸렸습니다. 스승님의 본의는 단순히 법문의 뜻을 새기고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을 이렇게 되도록 해라”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처님은 이 마음을 쓰셨기 때문에 부처가 되셨다. 그러니 너도 적공을 해서 이 마음을 쓰도록 해라.” 그러한 정진의 과정이 쌓이고 쌓여 대적공이 되는 것입니다. ‘일원대도에 합친다’는 ‘계합 일원대도(契合 一圓大道)’도 자성의 원리인 공원정(空圓正)을 표준 잡고 내 마음이 공원정에 합일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형산 김홍철 종사께서는 대각전에서 법회 보시다가 “나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생각하면 내가 어쩌다가 주세불이신 소태산 대종사님 회상에 들어와서 이렇게 공부하고 보은하며 살 수 있을까? 밖에 나와서 달밤에 너울너울 춤까지 추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도 나이가 들고 이렇게 살다 보니까 대체 어느 때 생각하면 춤추라고 하면 춤을 추겠습니다. 정말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이런 대도정법회상에서 들어와서 살고 있는지 행복하기가 한이 없습니다.


대종사께서 “100년 안에 회상에 입문한 사람들은 나와 다생겁래의 인연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전에는 그저 용기를 주려고 하신 말씀인가 생각했는데, 참으로 틀림없는 말씀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수많은 인류 가운데 원불교 교도가 되었고, 또 일생을 헌신하는 전무출신이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처를 만드는 불사에 합력하자 
이제 한 가지 더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재가출가 전 교도님들이 다 아는 바와 같이 회상의 교운이 아무리 좋아도 소태산 대종사님과 역대 스승님들께서 말씀하신 경륜을 우리가 실현하지 못하면 그 교운은 우리하고 관계없는 교운이 될 것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소태산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의 뜻을 받들어 법위향상에 많은 공을 들이셨습니다. 그 어른의 일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법위향상의 생애이시요, 이를 ‘조불불사(造佛佛事)’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부처를 만드는 불사’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교단 3대를 정성을 다해 마감하고, 교단 4대를 희망차게 맞이하면서 교단 운영의 내실화와 함께 세계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훈련을 통해 각자의 마음을 고치고 기질변화가 되어 세상을 유익 주는 사람이 되는 것! 오직 그일 뿐임을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핵(核)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법위사정을 기점으로 향후 훈련을 통해서 법위가 더욱 승급되도록 자신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교단의 신앙수행 풍토가 성숙된다면 그것이 교단의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3년 후 다시 법위사정을 할 때는 최소한의 훈련 원칙을 세우고, 법강항마위부터 깊은 공부가 되어 그 밑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어가도록 합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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