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인도에서 불교는 정통 브라만교에 대한 안티테제로 출발했고, 항상 그 정통과 대립·긴장·융화를 꾀하면서 계승됐다. 그러면서 인도 철학의 무대에서 붓다의 출현은 기존의 사상들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었다. 붓다는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도 일찍이 교조적 신념체계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간파하고, 인간 경험의 영역을 벗어난 일체의 논의에 대해 의도적으로 침묵했다.

붓다는 철학에 구애받지 않았고, 어떤 형이상학적 학설을 수립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붓다는 “‘나는 이와 같이 설한다’고 하는 일이 내게는 있을 수 없다. 여러 사물에 대한 집착을 집착이라고 확실하게 알고 여러 견해에 대해 과오를 범하거나 고집하는 일 없이 성찰하면서 내면의 평안을 나는 보았다”(『쌍윳따 니까야』,837)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런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붓다가 슈라바스티(사위성)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있을 때 지적 갈망에 불타는 청년 마루캬풋타가 찾아와 자기의 의문을 붓다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세계는 (시간적으로)유한한 것입니까? 무한한 것입니까? 영혼과 육신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혹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며, 혹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만약 세존께서 이것이 바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모두 거짓된 것이라고 알고 계신다면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그러나 만약 세존께서 이것이 바로 진실이고 다른 것은 모두 거짓된 것이라고 한결같이 알지 못하신다면 모른다고 바로 말해 주소서.”(『중아함경』 제16권 <전유경>)

질문이 모두 14가지라지만, 실은 4가지의 형이상학적 주제를 14개 질문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 가운데 먼저 던진 8개 질문이 다루는 2가지의 주제는, 독일의 칸트가 그의 『순수이성비판』의 ‘선험적 변증론’에서 다룬 우주의 시간적·공간적 유한성 및 무한성의 문제와 같다.

붓다는 이런 질문에 답을 안 했기 때문에 ‘무기(無記)’라는 표현을 써서 ‘14무기(無記)’라고 한다. 마치 총독 빌라도가 예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가 침묵하면서 그저 땅바닥에 막대기로 끄적거린 경우와 비슷하다.

이 질문과 연관하여 붓다는 ‘독전의 비유’로 설명한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에게는 그 화살을 누가 쐈으며 화살의 재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그 화살 맞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그런 질문은 알 수도 없고 설사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화살을 맞은 고통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삶이 황폐해지는 이유를 스스로의 한계를 망각하고 독단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연히 그는 인간 내면에 도사려 고통의 씨앗이 된 편견과 집착부터 정리할 것을 권했다. 곧 그는 형이상학적인 대립적 견해에 구애받음 없이, 진실하게 살아가는 길과 진실에 대한 실천적 인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붓다의 설법을 사자후(The Lion's Roar)라고 한다. 기존관념에 복종하지 않고 어떤 권위나 도그마 또는 경전에 고개 숙이지 않고 도전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새롭고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1년 8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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