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권 건축학 교수

전병권 건축학 교수.
전병권 건축학 교수.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지난 3월, 지어진 지 30여 년이 된 대구교당이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깔끔한 모습으로 단장됐다. 특히 교당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1층 현관이 환하고 세련되게 바뀌어 건물에 들어서면 기분이 상큼해진다. 

이처럼 대구교당을 확 바꿔놓은 건축가는 대구교당의 토박이 전병권(법명 도명·대구교당) 건축학 교수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고 있는 전 교수는 건축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공학 박사이기도 하지만 건축설계사무소에서 3년간의 실무 경험도 쌓은 현장 건축사이기도 하다. 


밝고 환하게 변화된 대구교당
“수많은 교무님들이 교당을 거쳐 가셨지만 어느 분도 교당을 바꿔보자는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크게 마음을 내시는 바람에 이런 변화가 오게 된 것이지요. 저는 그분들이 벌여놓은 판에 작은 재주를 보탰을 뿐입니다.”
1층 현관은 양 쪽으로 흰색의 벽을 건물 내부까지 연장시키고 그 벽에 수평선을 넣어 시선을 안으로 쭉 끌어들이게 했다. 밝고 환한 현관을 들어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건물 맨 안쪽에 자리한 일원상을 마주하게끔 설계했다. “대부분 교당의 인상은 친절하지가 않아요. 대체로 컴컴하고 칙칙한 데다 낡은 골목에 자리하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교당을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 하구요. 젊은 사람들이 예쁜 카페에서 인증샷을 찍듯이 교당 앞에서도 발길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원불교적인 건축이란
총부에 가기 위해 익산에 갈 때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자주 불편함을 느꼈다는 그에게 원불교식 건축에 대한 평소 생각을 들어봤다. 그는 교당마다 지붕 꼭대기에 높이 걸려있는 둥근 일원상이 오히려 일원상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원불교를 잘못 알리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 건축가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밖으로 드러내려고 애써온 종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60, 70년대 개발시대에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뿌리박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상징을 조금이라도 더 노출시키고자 아득바득 노력하던 것을 왜 우리가 따라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건축 설계를 ‘내재적 완결성’이라고 표현했다. 겉으로 반짝 드러나는 건물이 아닌 속이 꽉 찬 건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한 건물의 설계도면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산모가 출산하는 과정에 비유했다. 이것저것 데이터만 넣는다고 설계가 다 되는 것이 아니듯 건축가들은 끝까지 정성을 놓지 않는다는 그. 

“저는 원불교는 늘 내면을 바라다보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원불교 건축은 그렇게 바라다본 나의 본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어야 하구요. 지극히 건축적이기만 하면 가장 원불교적이지요.” 그는 설계를 맡게 되면 주로 새벽 3~4시까지 일하게 되는데 그렇게 도면에 집중하다 숙소에 들어가면 잠들기가 쉽지 않다. 잠자리에 누웠어도 도면 위의 선들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몰입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작품을 대할 때 내면을 들여다보듯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만든 작품이 바로 원불교적 작품인 것이고 그런 작품들이 모이면 원불교 건축문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대구교당 현관
대구교당 현관

현장 건축사가 아닌 교수가 된 이유
그는 건축에 대해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공부를 하다 보니 참 매력적인 일임을 알게 됐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고 건축설계만큼이나 공부도 재미있다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건축설계사무소에 취업해 3년간 근무도 했다. 대학 5년, 실무 경험 3년이라야 자격이 주어지는 건축사 면허 시험도 통과한 후 다시 대학으로 들어와 박사과정을 밟았다. “어느 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출강을 하게 됐어요. 처음 해 본 수업인데 참 재밌더라구요. 저한테 학생들을 공부로 끌어들이는 소질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초반에 반항기 있던 학생들이 학기말이 돼 달라지는 모습도 보면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늘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원칙이 있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집을 짓더라도 그 마음의 바탕에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건축가의 의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변호사나 의사가 힘들고 불편한 사람들을 정상의 상태로 돌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건축가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을 꿈꾸게 하는, 즉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집이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희망과 기대를 갖지 않습니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하는 직업이지요.”
 

건축가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고
희망을 주는 사람

좋은 건축을 위한 고민
건축학과에 가면 멋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들어섰던 길. 벌써 20여 년 이 일에 종사하다보니 무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그다. 그는 2년 전 연구년 때 마음먹고 미국에 다녀왔다. 그동안 책에서 읽은 지식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니 늘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싶어 40일 동안 미국을 횡단하며 책에 나오는 건축물을 다 찾아다녔다.
“좋은 건축물에 담겨있는 위대한 건축가들의 고뇌가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보게 돼 더 그런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선배들과 함께 하는 설계 작업 속에서 겪었던 고뇌들이 참 좋았거든요. 외관을 멋지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낼 것인가의 고뇌, 그 고뇌는 시간이 갈수록 쌓여 힘이 되고 좋은 건축물이 탄생됐을 때 자부심과 만족감으로 드러나구요.”

열다섯 살 때 축구공이 자꾸 교당 담을 넘어가 공 찾으러 다니다 친구들과 함께 입교했다는 그는 정원이 예쁜 작은 한옥의 교당을 기억했다. 대구교당 바로 옆에 살았던 그는 오래된 한옥을 허물고 지금의 교당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도 다 지켜봤다. 그가 청년회장이었던 대학 4학년 때, 교당 골조만 올라간 건물 바닥에 포대를 깔아놓고 일원상 깃발 아래 청년법회를 보곤 했다. 

‘끝까지 구하라 얻어지나니라·진심으로 원하라 이루어지나니라·정성껏 힘쓰라 되나니라’ 

그가 휴대폰 바탕화면에 띄워두고 늘 잊지 않으려 가슴으로 모시는 인생법문, 그때 그 청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2021년 8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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