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정신法認精神의 계승을 중심으로

권정도 영산선학대학교 교수
권정도 영산선학대학교 교수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원불교에서 ‘교화침체’라는 말이 회자 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 현재까지 원불교 중앙총부와 교화현장에서는 다양한 교화 방법을 강구해 왔으나, 교화침체 문제가 타개되지는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존의 교당과 법회 중심 교화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고, 교화현장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교화붕괴의 위험성도 제기되는 현실이다. 이런 시점에 논자는 법인정신을 중심으로 교법 이해와 실천의 방향을 반조함으로써 원불교 교화의 방향을 점검하고, 이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현해 가야 할지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원불교 교화의 개념
원불교 교화의 개념을 논함에 있어 류병덕은 타인을 향해 일방적으로 자기 종교의 신자로 만들려는 시도를 ‘선교’,‘포교’라고 비판하면서, 인간이 자신의 내면적 성찰과 이를 통한 외적 변화를 통한 교화 곧 ‘감화’를 원불교 교화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경전은 ‘근원적 진리와 성자의 혼을 체험하고 인류와 사회에 이와 같은 이념이 실현되도록 하는 활동 과정을 광의의 교화’라 하고, ‘각자가 신앙하는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사실을 역사적, 원리적, 방법적으로 구명하는 활동을 협의의 교화’라고 해 류병덕의 교화개념을 수용하면서도 ‘선교’,‘포교’도 또한 교화의 개념에 포함시킨다. 이후 ‘교화 침체’ 또는 ‘교화 성장’ 등의 표현을 통해 볼 때, 원불교 교화 개념은 서경전이 말한 협의의 교화, 그중에서도 류병덕이 비판했던 ‘선교’,‘포교’가 일반화된 교화개념으로 정착돼왔다고 말할 수 있다.


교단 제3대 원불교 교화 설계와 문제점
교화침체라는 말은 ‘포교’를 통한 교화의 양적 성장이 전제된 표현이다. 1987년 구성된 ‘교단 제3대 설계특별위원회’ 교화계획분과에서는 원불교 교화 활성화의 전제로 ‘교화전문화’를 설정하고 교단 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를 단행했다. ‘교당교화의 전문화’가 요구됐고, 출가교역자가 ‘교화권’을 독점하기 위해 ‘교역자 호칭 정비’ 등이 이뤄졌다.

1) 교화전문화와 ‘교화권’ 문제: ‘교당교화 전문화’의 핵심은 교당 업무 분장을 통해 ‘교화 전문화’를 이루어 ‘교화 활성화’를 달성하자는데 있다. 곧 교당 업무를 교화 고유 영역과 교화 보조 영역으로 구분하여 역할을 나눔으로써 효율성 높은 교화를 실행하자는 것이었다. 업무의 효율성을 통해 교화 전문화를 이룬다는 발상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원불교 조직과 교화에 적지 않은 문제를 파생시켰다. 첫째 교화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교단 분위기 속에서 출가교역자 내 계급구조(도무, 덕무)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며, 둘째 교화보조 역할로 전락된 젊은 교역자들이 적극적으로 교화역량을 향상시킬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다. 셋째 ‘교화 전문화’를 통한 교화 활성화를 지향했지만 정작 ‘교화 전문가’는 양성되지 못했고 교화 활성화에도 실패하면서 교단 전반에 교화에 대한 패배의식이 심화 됐다는 점이며, 넷째 지나치게 교당을 중심으로 교화를 설계한 결과 교화 방향이 지나치게 교당 구조에 갇히면서 법회중심, 설교 중심 교화로 고착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교화 전문화’를 위해 실시한 또 하나의 정책이 ‘교역자 호칭 정비’였다. ‘교역자 호칭 정비’의 목적은 출가교역자 사이의 계층화 해소를 위해 모든 호칭을 ‘교무’로 통일하자는 것이며, 출가교역자 교화권의 고유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가교무, 재가법사 등의 직책과 호칭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도와 다르게 이러한 ‘교화권’ 확보의 노력은 원불교 교화의 측면에 큰 변화를 초래하는데, 그것은 바로 재가교도가 교화의 주체가 아닌 ‘교화의 대상’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곧 원불교 교도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던 전무출신과 거진출진의 가운데 전무출신은 ‘교화권’의 고유권한을 가지면서 그 역할이 더 커진 반면, 거진출진은 전무출신에 의해 ‘교화’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2) ‘신앙성 제고’에 관한 문제: 제3대 특위의 ‘신앙성 제고’ 노력은 원불교 교화의 발전의 새로운 방안 모색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런데 당시 제시된 신앙성 강화 방향은 의식(儀式)의 경건성이나 교당 공간의 장엄성을 과하게 강조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형식주의에 치우치고 만다. 특히 ‘신앙 대상 호칭’ 논쟁은 이후 신앙 대상의 초월성과 인격성, 주재성을 지향하면서 원불교 신앙성 강화를 지나치게 타력에 의지하는 측면에서 강조한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안으로 나 자신을 부처로 섬기면서 
내 주변과 대사회적으로 창생을 위해 
끊임없이 불공해 가는 것이 바로 원불교 교화의 본질


법인정신과 원불교 교화 방향 모색
원불교 교화의 목적과 방향은 반드시 소태산이 새 회상을 창립한 목적과 방향에 부합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소태산과 구인제자가 행한 ‘법인정신’은 기존 원불교 교화를 평가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 중요한 표준이 된다. 양재호는 ‘법인정신’에 대해 “일원상 진리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무아(無我)’와 ‘공(空)’을 체현하는 의식(initiation)이며, 자신의 사념(私念)을 완전히 죽이고(死) 새로운 이름(法名)을 받아 거듭 태어나는 재생(再生)의 과정”이며, 거듭 태어난 생명들의 숙명은 “자신과 동일한 불성을 지닌 창생을 향한 구제 일념”에 있다고 주장했다. 논자는 이 ‘법인정신’에 원불교 교화의 개념과 방향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곧 안으로 자신의 ‘무아’와 ‘공’을 체현하는 과정을 자기 구원의 ‘내적 교화’라고 한다면, 밖으로는 창생의 내면에 잠재한 불성을 발현시키기 위해 온통 헌신해 가는 것이 사회구원의 ‘외적 교화’인 것이다.

원불교 신앙의 핵심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다. 이는 ‘사은’, 곧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대상을 모두 부처로 알고 섬기라는 것이며, 이는 일원상 진리의 본질인 ‘무아’의 불성(佛性)이 나와 모든 존재에게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법인정신은 이러한 정신성을 온전히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논자는 ‘교화 활성화’나 ‘교화 성장’이라는 포교 지향적이면서도 ‘교단주의’에 매몰된 교화가 아니라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사회적 구현을 통해 소태산과 구인제자가 지향했던 근본적인 교화 방향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30여 년을 통해 구축해 온 원불교 교화의 방향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원불교 신앙성에 대해 항상 그 본래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원불교의 신앙, 특히 법신불 일원상 신앙의 귀착점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원불교가 존재하는 이유다. 교당의 장엄이나 의식의 경건성으로 신앙성을 논한다면 과거 불교의 편협한 신앙을 비판한 소태산을 배신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가장 뛰어난 장엄은 주변 사람들을 부처로 모셔서 내 주변이 부처로 장엄되는 것이 아닐까.

둘째, 창생을 제도하자는 대종사의 경륜에 출가 재가의 차별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교화권’이 전무출신에 독점되면서 교화의 대상으로 전락한 거진출진들의 역할과 역량을 되살리는 운동이 교단 내에 확산될 필요가 있다. 출가 중심의 ‘교화전문화’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화 성장’이라는 경쟁구도에서 벗어나 출가와 재가가 공동으로 창생의 구제를 위해 나아가는 화합교단의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인식과 공감을 확장시켜 갔으면 한다.

셋째, “공부위주 교화종”의 관념의 확장이 필요하다. 대산종사는 ‘공부위주 교화종, 교화위주 사업종, 사업위주 인류종, 인류위주 사생종’이라고 했다. 모든 일은 근본에 힘을 써야 내실이 갖춰지고, 내실을 갖춰야 실력을 쌓아서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법문이 ‘공부위주’라는 근본을 중시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생’의 구제를 지향하고 있음을 망각한 채, 지나치게 개인의 수행이나 개인 행복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논자는 교화는 곧 ‘불공’이라고 본다. 안으로 나 자신을 부처로 섬기면서 내 주변과 대사회적으로 창생을 위해 끊임없이 불공해 가는 것이 바로 원불교 교화의 본질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공을 잘할 것인가? 법인정신의 계승과 실천에서 그 기본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 본 논문은 영산선학대학교 선학연구원과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주관한 제3회 법인절기념학술대회 발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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