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근 교도
강수근 교도

[원불교신문=강수근 교도] 가을이 소리 없이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조용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밤에는 이불깃을 당겨야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선선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감나무도 성장을 멈추고 조용히 아기 주먹만한 감을 살찌우고 있다. 감나무 아래는 익지 않은 감들이 몇 개 떨어져 있다. 남은 감들을 더 튼실하게 키우기 위해 자기를 던져 희생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직 파란 낙엽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극성하던 여름이 어김없이 음양 상승의 도를 따라 양이 음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고 있다. 음양으로 보면 여름은 양이며 가을은 음이다. 가을은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하고 금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양 기운을 받고 성장하던 초목들을 음의 찬 기운이 누르면 초목들은 순순히 응하여 순리로 받아들이고 갈무리를 시작한다. 사람도 가을 기운이 감돌면 왠지 쓸쓸해지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무더위에 시달리며 힘들게 보냈던 여름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아! 벌써 가을이구나!’ 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되뇌기도 하며, 이 가을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꼭 하나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니, 사색의 계절이니 하는데 필자는 여기에 선(禪)의 계절이라는 말을 하나 더하고 싶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거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도들은 교당도 못 나가고 너나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오랜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원불교전서』 개정증보판 발간 사태의 거센 회오리에 휘말려 잠시 원불교 신앙인의 정체성까지 의심할 정도로 마음을 빼앗겼다. 이제 그동안 서로 다른 입장에서 충정을 담아 교단의 변화를 외치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겸허하게 자신을 바라볼 계절에 들어섰다. 가을의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다음 세대를 위해 물러날 채비를 하는 초목의 인내와 수용을 배워야겠다.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선(禪)이 제일이다. 선(禪) 자를 뜯어보면 홀로 본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 선 수행은 좌선이 기본이다. 『정전』 <좌선법>에는 좌선의 요지인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임을 골자로 하여 좌선하는 방법, 공덕, 단전주의 필요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좌선법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면 심신의 건강은 물론, 모든 수행인들이 꼭 성취하고자 하는 꿈의 열 가지 덕목이 모두 담겨있어서 좌선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공부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일분 선, 멍 때리기 등 변형된 갖가지 명상이나 간단한 선법들이 있는 데, 이는 일시적 마음의 안정을 얻는데 한 방편은 될지언정 진정한 선법은 아니다. 좌선의 진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해서 심신 조복(調伏)과 시간을 초월하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 좌선을 통해서 맛볼 수 있는 진경을 단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 좌선의 방법 말미에 있다. ‘이상과 같이 오래오래 하면 필경 (物我)물아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없는 심락(心樂)을 누리게 되리라.’ 때로 이 경지에 이르면 내가 어찌 다행 이법을 만나 이렇게 더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는가 하고 절로 대종사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오르게 된다. 대종사가 체험해 가르쳐 주신 법을 믿고 실천하여 얻는 기쁨이라 하겠다. 이 가을, 좌선을 통해 각자 스스로 변하면 교단의 변화도 오지 않을까.

/목동교당

[2021년 9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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