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경남교구 봉공회장
안희연 경남교구 봉공회장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하늘이 응할 수 있기까지 기도하라/ 땅이 응할 수 있기까지 불공하라/ 사람이 응하게 되리라.’ 희타원 안희연(喜陀圓 安喜緣·64·마산교당·경남교구 봉공회장) 교도 책상 앞에 붙어있는 글이다. 

“솔직히 하늘이 응할 수 있기까지의 기도는 자신 없지만 땅이 응할 수 있기까지 불공은 열심히 진행 중입니다. 이후에 사람이 응하고 응하지 않고는 제 손을 떠난 일이고 다만 지금 여기서 불공만 할 뿐입니다.”


경남원광신협 25년 근무
안 교도는 경남원광신협 창립 원년인 1994년에 입사해 재작년에 정년퇴직, 25년 간 근무했는데 이 기간은 마산교당 봉공회를 맡아 총무와 회장 등으로 뛰어다닌 기간과 겹친다. 당시 원광신협이 마산교당 건물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되면서 담당 교무가 추천해 입사하게 됐다. 마침 마산교당 내 봉공활동도 매우 활발하던 때라 봉공회 총무일도 그에게 주어졌다. 신협을 퇴직하면서는 경남교구 봉공회장을 맡게 됐으니 결국 그는 입교한 이래로 늘 봉공으로 인과가 쌓인 셈이다. 

“교도이기에 신협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 싶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신협에서 일하다 교당에 일이 생기면 바로 뛰어가는 일도 일상이었습니다. 초보 교도였던 제가 신심이 확 달아오르게 됐고 그 신심이 확실하게 자리 잡게 만들어준 참 감사한 세월입니다.”


원불교 만난 건 행운
그는 함안교당 교도였던 친정어머니 연원으로 28세에 입교했지만 집이 멀어 5~6년은 이름만 올려놨다. 그러다 집 근처 마산교당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이동도 결석도 없이 30여 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교하고 보니 원불교가 너무 좋아 이어서 남편과 아이들도 입교시켜 바로 일원가족을 만들었다. 특히 아이들이 교당을 매우 좋아해 원광유치원 때부터 초·중등을 거쳐 대학 등 성장 과정에 교법이 정착된 것이 그가 가장 다행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원불교를 만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를 행운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고난, 즉 역경이었다.
 

역경, 내가 지은 
인과 갚는 중이니 행복해
기도는 일심으로 하되 
결과는 진리의 몫

역경도 진리입니다 
스물여섯에 고시 공부 중인 남편과 결혼해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게 살았던 기간이 8년이다. 그 사이 태어난 아이들이 부쩍 자라면서 늘 불안했던 그는 절을 찾아 다녔다. 절에서는 용왕에, 산신령에 빌면 된다고 이끌었고 그는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 현실의 고통은 그대로였다.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교당에 가니 교무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기복 행위는 근본 원리도 아니고 자신이 지은 업은 피해갈 수 없다는 인과 설법을 들으면서 이것이 정법이구나 확신이 들었다. 

“이후부터 미신을 딱 끊었고 마음이 정리됐습니다. 내가 지은 것을 내가 받고 있는 중이라 하시니 피하면 안 되겠더라구요. 남편 고정 수입이 없어 제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집을 꾸려가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갚고 있는 중임을 아니 행복했습니다. 일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원불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파란고해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겠는가. 그는 원불교를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표현하며 이후로 남편도 직장에 나가게 됐고 아이들도 원만하게 잘 자라는 등 일상이 다 잘 풀렸다고 했다. 그럼 원불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살고 있는 환경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느라 고생할 수도 있겠다는 질문에 돌아온 그의 답.

“아니지요. 사는 건 똑같을 겁니다. 그건 각자가 지은 업대로 나타난 인과이므로 생활은 어차피 이대로 이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른 것이지요. 지금 펼쳐진 삶이 순리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니 모든 것이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이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파란고해의 삶을 살고 있겠지요.”

원불교를 만나건 만나지 못했건 삶은 자신이 지은 업대로 그대로 흘러갈 것인데 그 삶을 순리로, 진리로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에 고와 낙이 갈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현재의 고생이 그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임을 알고 나니 오히려 감사하게 됐다는 그다. 


기도는 일심으로 해야
기도 경험을 듣고 싶다는 질문에 25년 전 아파트를 마련하던 일을 떠올렸다. 전 재산이 천만 원인데 분양가 8천만 원이었던 집을 분양받아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교당에서 집에서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신기하게도 이런저런 경로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침 그도 신협에 입사하게 되면서 대출금도 갚을 길이 생기게 돼 일이 술술 풀리게 된 것이다. 

“기도를 했기 때문에 복이 왔다기보다 진리를 알게 된 경험이지요. 기복행위가 아닌 진리의 위력을 알게 됐습니다. 기도는 일심으로 할 때 이루어집니다. 한 톨이라도 의심이 있다면 이루어질 수가 없구요. 또한 기도는 이루어지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기도할 때의 그 마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참회가 나오더군요. 내가 지어놓은 업이니까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니 오로지 일심으로 기도만 할 뿐이라는 말. 

그는 20여 년을 봉공으로 뛰어다니는 몸공부 하느라 바빴지만 요즘은 교리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교구청에 함께 있는 마산교당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공부 기회가 풍성해져 매우 기쁘다는 그다. 


감사는 기다림이 아닌 실천
“공부를 할수록 주위의 도반님들이 다 스승 아닌 사람이 없더라구요.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다 본받을 점이니까요. 그러다보니 특히 좋은 사람도 특히 싫은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경계 따라 요란해질 때도 많지만 그건 잠깐이고 결국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요즘 늘 그를 따라다니는 단어는 ‘감사’다. 봉공회 일을 오래하며 단단한 신심이 생기게 돼 감사하고 주변 도반들이 모두 스승이니 감사하고 공부시켜 주는 역경이 감사하다. “감사는 말로만 하거나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늘 놓지 않고 깨어서 지켜봐야 할 화두이자 서원입니다.”
그가 공부하는 방법이자 공부 후 도달한 그곳이 바로 감사다. 

[2021년 9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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