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혜 교도 /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조은혜 교도 /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원불교신문=조은혜 교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우리나라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한 말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 등장한 것은 독일 나치즘에 저항하던 목회자들이 만든 ‘고백교회’ 비밀신문이다. 나치의 탄압으로 암담한 현실이지만 진리(신)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용기를 잃지 말자는 격려와 다짐의 글에 인용된 것이었다. 수백 년 전 격언으로 사용된 이 말을 매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주 월요일, 꼬박 9년여 , 오전 10시 반이면 어김없이 탈핵나무를 심는 사람들, 영광한빛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원불교대책위 탈핵순례단이다.

생명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전히 묘목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탈핵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기도를 이어간다.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통제 불능의 원자력은 쓰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지구 공동체의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임”을 알게 되었으니 과학문명을 바르게 선용하라는 도덕적 자각으로 “결코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핵발전을 중지”하기 위해 걷고 기도한다. 때론 길게 늘어선 한 무리의 외침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이 오롯이 그 자리를 지키는 소수 순례자의 기도로 채워진다. 그렇지만 사고뭉치 영광한빛핵발전소가 위험천만한 고비를 수십 차례 넘기면서 ‘제2의 후쿠시마’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매주 한빛핵발전소 앞에 선 탈핵순례단의 안전감시 활동과 기도 덕이기도 하다. 해마다 국정감사 단골 메뉴가 된 한빛핵발전소 부실은 올해도 변함없이 뉴스를 만들어 낸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크고 작은 구멍이 발견된 데다 콘크리트 안에 있어야 할 철근이 외부로 노출된 건수가 가장 많은 사례로 한빛3호기가 적발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모든 핵발전소에서 외부로 철근이 드러난 사례가 작년보다 2배 늘어난 847개나 발견됐다. 첨단 기술로 안전하게 관리된다고 큰소리치는 핵발전소들이 부실시공으로 ‘근본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 사례가 속속 드러나는 것은 ‘사고 예고’와 다름없는 징후다.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알리는 탈핵순례 걸음이 더 분주해진다. 지난 9월 27일, 광주전남여성민우회 회원 10여 명이 탈핵순례에 걸음을 보탰다. 백신도 없는 방사능 유출이 코로나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란다. 2012년 11월 26일 첫 순례가 시작된 이후 두어 번 함께 했던 경험이 있는 한 활동가는 “다시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탈핵희망을 지키는 순례기도가 큰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믿고 더 많이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는 11월 29일, 탈핵순례 9주년을 앞두고 순례자들은 다시 마음을 챙긴다. 값싼 전기가 주는 편리와 공동체 안전을 담보로 한 이익에 눈먼 사람들은 부정하려 하지만 탈핵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시대적 흐름이다. 기후위기로 핵발전소 사고 위험이 더 커지고 있는 지금, 탈핵은 미룰 수도, 양보할 수도 없는 이 시대의 불공이다.
 

[2021년 10월 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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