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경 교도/영광교당
최인경 교도/영광교당

[원불교신문=최인경 교도] 일과를 마치고 바람의 협곡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가위를 들고 세 명의 교사가 한 학생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모습. 순순히 머리를 대주고 있는 남학생도, 정성들여 좌로 우로 돌아가며 맞춰 자르는 교사도 얼마나 진지한지 오히려 주변에 관람객까지 생기며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꾸러기들이 바가지 머리가 될 것 같다며 놀리지만 꿋꿋이 기다려주는 이 남학생. 아무리 외모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선뜻 머리를 맡기지는 못할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모습이 하도 괴이해서 사진을 찍어 어머니께 톡으로 보냈다. 집에서는 그렇게 미용실에 가자고 해도 안가고 버텼다고 하시며 혹시 망칠까봐 소심하게 자르는 중이라고 하니 어차피 머리카락은 자라니 과감하게 잘라 달라고 했다. 

아들이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은 듣는다며 소심한 주문을 하곤 한다. 큰 욕심 없는데 아이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걱정이란다. 성지송학중학교에서 3년을 보내고 영산성지고등학교로 입학을 결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집 근처 공업고로 진학하겠다는 아이, 일반 학교 다녀봐야 들러리 설 게 뻔하다며 대안교육을 희망한 어머니와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청개구리 마냥 엄마가 말하면 뭐든 반대로 하는 녀석, 엄마는 가만히 있고 주변에서 나서기로 했다. 몇 차례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가족캠프 등을 거쳐 어렵사리 입학을 결정했다. 

중학교에서 학부모 대표를 맡았기에 고등학교에서도 잘해 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학부모회에서는 영광, 광주를 오가는 버스를 계약하고 저녁 간식도 책임져 주었다. 소소한 것 같지만 학교에서 접근하기 애매한 부분을 담당해 주었다. 덕분에 매주 귀가·귀교 길이 편안해졌다.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인연이다. 스쳐 지나갈 뻔했으나 중학교에서 학부모교육, 주말프로그램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유대관계를 맺었고 3년으로 부족해 다시금 인연을 연장했다. 동생들이 크면 우리 중·고에 보내겠다며 미리 약속을 하기도 했다. 과거 영산성지고등학교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선뜻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개교 이래 현재까지 사제동숙을 이어가고 있는 학교는 영산성지고등학교가 유일무이하다며 교사들의 헌신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럼에도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학교가 변하고 학생들이 달라졌음에도 사람들 기억 속에 영산성지고는 부적응, 비행 등이 각인되어있는 것 같다. 오히려 자유로움 속에 더 강한 규칙이 존재하고, 친숙함 속에 절도가 존재하니 학교폭력이 일어날 수가 없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일반학교가 맞겠지만 자유로운 환경에서 꿈 찾기가 필요한 학생도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는 자신의 꿈을 디자인하는 맞춤형 학교이다. 매일 부대끼는 시간이 많은 만큼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이해의 폭도 커지며 지도하는 과정에서 참스승, 참 제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하는 것이 교육인지 돌봄인지 헷갈리며 정체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기도 했다. 돌봄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돌봄을, 배움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배움을. 소규모학교의 장점을 살린 맞춤형 교육, 그것이 진정 우리학교가 추구하는 대안교육의 방향이 아닐까? 한 아이를 살리고 한 사람의 운명을 개척하는 길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이 허투루 하는 일이 아니리라. 꿈 찾기가 필요하면 꿈을 찾아주고, 길 찾기가 필요하면 길을 찾아주며 각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 원불교 대안학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이 아닐까.

/영광교당

[2021년 10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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