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공관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온몸이 ‘용기’로 넘친 인물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주저 없이 말했고 행동했다. 그리고 기꺼이 일부러 좁고 험한 길을 걸었다.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야말로 “일체생령을 위해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의연함이 바위 같았다.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운명을 바꿔놓은 40일간의 금식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야란 자신을 편하고 익숙한 공동체로부터 일탈시키면서 자신의 나약한 점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성령이란 하늘에 둥둥 떠도는 영이 아니다. 성령이란 예수 자신 안에 존재하는 거룩한 소리다.

‘용기’의 첫머리에서 말한 ‘파레시아’(용기있게 진실 말하기)에 대해서 말한다면 예수가 주인공이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학자들의 위선과 악행을 보고 “위선자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회칠한 무덤 같은 놈들아! 화를 입어라”고 악담과 저주를 거침없이 퍼부었다.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율법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당신의 제자들은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습니까?” 그러자 예수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다. 전통을 지킨다는 구실로 하나님의 계율을 어기는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꼬집은 것이다.

예수는 성전에서 돈벌이하는 장사치들에게 분노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죄하기 위해서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 반드시 바쳐야 할 것은 양이나 비둘기와 같은 제물이었다. 그것은 꼭 깨끗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의 결정권은 사제한테 달려 있었다. 사제가 불결하다고 단정하면 ‘깨끗한 제물’로 다시 사야만 했다. 반드시 성전 안에서 사야만 통과하는 것이다. 제물을 사려면 성전에서 쓸 수 있는 돈으로 바꿔야만 했고, 환전상은 차액을 남겨 사제와 이득을 나눠 가졌다. 이는 모두 민중을 착취하는 수단의 하나였다.

‘환전상’이란 것도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로마제국의 돈을 사용하려 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생긴 직업이었다. 반드시 튀리안 화폐(The Tyrian currency, 예부터 사용해온 히브리 쉐켈과 비슷한 돈)를 사용해야 한다. 매년 내는 성전세(The annual Temple tax)도 이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마가복음』 12:38~40에는 율법학자들의 허위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율법학자라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된 엘리트들인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예수는 그들의 위선을 열거했는데, 기다란 예복을 걸치고 다닌다.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잔칫집에서도 최고 상석만 골라 앉는다.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교육·제식·문서작성·법률문제 상담 등 서비스에 대한 공식적인 월급이 없었기 때문에 부자들의 후원금으로 생활했다. 이런 제도가 부작용을 낳아 민폐를 일으켰다. 그에 대해 예수가 거침없이 이야기를 한 것이다.

요즈음 한국 기독교사회의 일부도 교회의 사유화, 기업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수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는 엄중한 질책은 성전이 한낱 시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1년 10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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