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산 오광익 원로교무
궁산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한학과 한시에 깊은 조예를 가진 궁산 오광익 원로교무(宮山 吳光益·77). 원기56년 교화부 주사를 시작으로 원광고등공민학교, 서울보화당, 부산보화당에서 근무한 그는 이후 상주선원, 서초교당, 서울회관, 금천교당, 시민선방, 변산원광선원, 교화훈련부 등지에서 근무한 후 원기99년 퇴임한다. 한학을 통해 대종사의 법을 빛내는데 힘쓴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한문 공부로 인연이 된 원불교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태어난 오 원로교무. 빈한했던 농촌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한기인 겨울, 동네에서 한문 선생님을 모셔다가 공부를 시키는 기회가 있어 오 원로교무도 그곳에 참석했다. 백지상태에서 처음으로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우고 익혔음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그를 보며 훈장 선생님은 무척 흐뭇해했다. 겨울이 지나가고 한문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오 원로교무는 왕촌부락에 있는 원불교에서 한문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왕촌교당을 찾아가게 된다.

“나이가 지긋한 교무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며 내일부터 바로 한문 공부를 하자고 하셨어. 그분이 전산 양경서 교무님이야. 다음 날 갔더니 『사자소학』이나 『추구(推句)』도 아닌 붓으로 쓴 생소한 『철자집(綴字集)』을 공부하자고 하셨어.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글자는 다 알겠는데 뜻은 원불교적인 용어가 있어서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했어.”

그렇게 공부한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양경서 교무는 그에게 전무출신을 하라고 권한다. 오 원로교무는 두 마음 없이 “예”라고 답하고 전무출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남들은 특별한 서원을 세우고 왔는데 나는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인연이 바로 불연(佛緣)이요, 법연(法緣)이며 기연(機緣)으로 이것이 진연(眞緣)인 것 같아.”


공부 방향 알려준 고산 이운권 종사
오 원로교무는 원기49년부터 3년간 수계농원에서 간사 근무를 하고 수학과정을 마친 뒤 원기56년 교화부 주사로 첫 발령을 받는다. “당시만 해도 전국의 모든 입교원서가 총부로 모였어. 그것을 간추려서 어른들께 나눠드리면 법명을 지어주셨어.” 한문에 능숙했던 그는 법명을 기재해 입교증을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교무부장이 한산 이은석 교무님이었는데 형님인 고산 이운권 교무님이 교정원장이셨어. 한산님이 ‘너는 교정원장님을 모시고 살아라’고 해서 구조실에서 고산님을 3년간 모시고 살았지.” 하루는 일을 끝내고 들어오는 그를 불러 고산 교정원장이 말했다. “네가 한문을 했다고 하는데 한문을 통해서 대종사님의 법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대종사님 법을 통해 한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앞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한문에 재능을 보이는 오 원로교무에게 공부의 방향을 알려준 고산 이운권 종사. “그때의 말씀을 늘 가슴속에 품고 글을 쓰거나 시를 쓸 때, 대종사님 법을 기저로 하고 한문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노력해 왔어.”


한학 공부에 깊이를 더해
교화부에 이어 원광고등공민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오 원로교무는 학교에서 행정일을 보면서 한문과 국어를 가르쳤다. 원광고등공민학교는 정식으로 중학교 과정을 밟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원기63년부터 3년간 서울보화당에 근무하며 그는 한학 공부를 심화할 수 기회를 얻는다. “서울보화당 사장님의 외숙이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근무하고 있었어. 거기서 한문을 가르친다고 하니 한번 가보라고 소개해 주셨지. 마침 갔더니 수강생 모집기간이니까 입학시험을 보라고 했어. 30명을 모집하는데 11등으로 합격해서 공부할 수 있었어. 교수진이 상당히 실력 있는 분들이라 재미있게 공부를 많이 했었어.”
 

궁산 오광익 원로교무
궁산 오광익 원로교무

재가교역자 양성·요선회 조직
그가 중앙총부 상주선원에서 근무할 때는 간사교육과 재가교역자 양성 교육을 담당했다. “그때는 중앙총부에 간사가 30~40명 정도 있었어. 간사 때 교육을 잘못 받아버리면 삶에 방황이 될 것 같아 일기점검, 염불, 좌선 등을 철저히 공부시켰지. 저녁에는 자경문을 통해서 한문을 가르쳤어. 열심히 배운 사람들은 그때 배운 것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고들 해.” 

원무제도의 시초가 되는 재가교역자 교육을 처음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교도수에 비해 교무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재가교역자를 양성하자고 했지. 재가교역자가 되고자 하는 교도를 대상으로 상주선원에서 『대종경』, 『정전』, 『법어』, 한문 등의 교육을 2~3년간 시켰어. 재가교역자를 양성한다는 의미로 자격고시를 치러서 11명이 합격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서초교당을 세운 승타원 이여진 법사야. 그 인연으로 서초교당에 초청돼 근무하기도 했었어.”

그는 시민선방 초대교무 및 제3대 교무로 근무하며 선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인 요선회를 조직한다. “각 교당의 중진급들이 다 모여서 선을 했어. 조직화해야겠다 싶어서 요선회를 조직했지. 일주일에 2번 정도 모여 오전에는 선을 하고 오후에는 금강경, 수심결 등의 공부를 함께 했어. 신타원 김혜성 종사도 멤버중 하나였어.” 그는 시민선방에서 교도들에게 속 깊은 마음공부를 지도하며 대외적으로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조직하고 이사로 활동한다.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종교들이 모여서 협의회를 만들었어. 청소년들이 자신의 얼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의 혼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얼 찾기 운동을 했었어.” 


한학으로 대종사의 법을 전해
그는 직접 지은 한시를 담은 시집을 9권까지 출간했으며, 대종사의 생애를 한시로 엮은 『이 땅에 오신 새 부처님』, 원불교 교전에 나오는 한자를 쉽게 익힐 수 있는 『원불교 경전 한자쓰기』 교본을 발행했다. 이 밖에도 휴휴암좌선문·목우십도송·사십이장경·대적공실 해의, 수심결· 좌선법·법구경 역해서 등 그의 저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현재까지도 집필 작업을 쉬지 않고 있는 그는 올해 초 1월 『교리도 해설』 1권, 2권을 발간했으며, 이 책을 토대로 WBS 원음방송에서 교리도 해설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 횟수가 많아지고 깊어갈수록 스승님이 짜주신 이 교리, 즉 일원진리와 사은사요 삼학팔조가 일목요연하고 조리정연해 전무후무한 무상대도라는 사실을 심감(深感)하게 돼. 성경현전(聖經賢傳)인 고전을 많이 읽고 가져다가 우리 교법을 증장시키는데 비교하고 활용해 보면 정말 잘 짜인 법임을 알게 되고 또한 이 법이라야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제도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거야.” 


후진들에게 전하고픈 말
그의 딸인 오덕만 교무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무출신의 삶을 살고 있다. 그가 딸을 비롯한 후진들과 교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내용, 영생의 공부 다짐을 한시를 통해 전했다.


丕緣斯會入 큰 인연으로 이 회상에 들어와서
專務獻盟天 전무출신하기로 하늘에 맹세 드렸네
宿劫吾師法 숙겁토록 우리 스승님의 바른 법을
長生主佛連 긴긴 생애에 주세 부처님 이을지라.

難遇宗師邂 만나기 어려운 대종사님 만났으니
宗徒自性明 원불교 교도로 자기 성품 밝힐지라
暗無光失路 어둠에서 빛이 없으면 길을 잃고
不敎者喪精 교화되지 않은 사람 정신 잃으리. 

永劫宗師法 긴긴 세월 대종사님의 법으로
度生建樂園 중생 제도하고 낙원을 세우리
學恩知福得 삼학과 사은에 지혜 복락 얻어
眞理一圓源 참된 진리를 근원으로 삼으리라.

[2021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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