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
이은희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장.

[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문화유산을 시민의 소유로 보전하는 운동을 한다.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는 시민운동의 형식을 일컫는 말로 이 운동은 내셔널트러스트 정신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국내외 기업, 단체, 개인의 기부, 기증, 기여 행렬에 의해 발전해 왔다.
 

1895년 영국에서 시작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1895년 산업혁명을 통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영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영국에선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 파괴 그리고 자연·문화유산의 독점적 소유에 의한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스스로 내셔널트러스트를 탄생시켰다. 1895년 변호사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 사회 활동가 옥타비아 힐(Octavia Hill), 목사 하드윅 론즐리(Canon Hardwicke Rawnsley) 세 사람에 의해 출범한 영국내셔널트러스트의 정식 명칭은 ‘자연이 아름답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를 보전하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for places of Historic Interest and Natural Beauty)’이다.

이후 1907년 내셔널트러스트 특별법(the National Trust Act)이 제정돼 내셔널트러스트가 확보한 자연·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개인이나 국가의 소유가 아닌 ‘시민의 유산’으로 사회적 소유가 실현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 또 이러한 제도화로 인해 내셔널트러스트가 확보한 시민유산은 ‘양도불능의 원칙’이 보장돼 ‘영원한 보전(permanent preservation)’이 가능해졌다.


국제적 자연·문화유산 보전운동
2007년 12월 ‘세계내셔널트러스트기구(International National Trusts Organization, 이하 INTO)가 발족했고 전 세계 30여 개국이 활동하는 국제적 자연·문화유산 보전운동으로 확산 중이다. INTO는 각국의 내셔널트러스트 및 유사 단체들을 연결하는 비정부 네트워크 기구다. ‘전 세계인들과 미래 세대를 위해 모든 국가의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전하고 증진시키는 것을 최대 과업’으로 삼고 있다. 다만 각 나라의 내셔널트러스트는 독립적이며 INTO의 산하단체는 아니다.

1500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 봉사하고 있는 조직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00년 1월 창립됐고, 그 시작은 창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4월 21일, 지구의 날을 맞이해 환경정의시민연대(현재 환경정의)가 개최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한국사회 적용을 위한 워크숍’이란 토론회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포문을 열었다. 그 후 약 1년간의 창설준비를 하면서 현재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기틀이 다져졌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출범과 함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 기여 등으로 보전해야 할 대상을 시민들이 직접 획득해 시민의 소유 하에서 영구 보전한다’는 이 운동이 당시로선 획기적인 대안적 보전 방식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따르면 시민유산의 획득과 보전은 멸실 위기에 처한 자연 및 문화유산을 지켜 미래세대에게 온전히 남겨주는 것을 뜻한다. 보전대상을 공유자산으로 만든다는 것은 사적 소유제 하에서 만연하는 개발, 멸실, 훼손, 처분의 압력을 비껴갈 수 있게 해준다.

이은희 이사장(한국내셔널트러스트)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창립 당시 우리나라는 그린벨트 해제가 사회적으로 거론이 되고 있었고 금강 영월댐 건설 등 중요한 유산들이 개발명목으로 사라져가거나 파괴되는 위험한 시기였다”고 전했다.
 

시민유산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시민유산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시민유산’ 개념 선보여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확보한 첫 시민유산은 강화도에 있는 매화마름군락지이다. 이곳은 멸종위기식물인 ‘매화마름’이 서식하는 논습지로 2008년에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이후 성북동의 ‘최순우옛집’을 매입하고 (재)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을 창립해 분가했다. 또 동강 제장마을, 연천DMZ 두루미서식지 등 8곳의 자연유산을 확보하는 등 현재까지 시민유산 11개소(사단법인 소속 자연유산 8개소, 재단법인 소속 문화유산 3개소)를 취득했다. 보전용 토지의 경우 13만6천106㎡를 확보한 상태이며, 2020년까지 시민 기부금으로 총 78억4천만 원이 모금됐다. 활동 성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지난 20년 동안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시민유산이란 개념을 선보이고, 이를 실현해 낸 것을 으뜸으로 꼽는다. 보전대상을 시민의 이름(소유)으로 영구히 보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간의 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실제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민 성금을 통한 보전자산의 획득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보전자산의 획득, 즉 시민유산의 형성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시작과 끝이다. 전국민적인 운동으로 많은 국민들이 참여해 활발한 기부문화가 확산되도록 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양도불능의 원칙 완성돼야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또 있다. 먼저 전략적인 소규모 면적 확보다. 부동산의 금전적 가치는 오르고 있고 시민단체는 개발에 대항하기 위해 전략으로 소규모 면적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운동의 ‘현지화’다.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를 성장모델로 삼고 출범한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미래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모델이 필요하다고 본다. 운동의 현지화라는 방법을 새롭게 구상해 낸 이유다. 이 이사장은 “영국과 비교해서 우리는 이 운동의 역사도 짧고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 지역에서 매입이 이뤄져도 관리할 인력이 없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우산 역할을 하며 지역조직을 많이 확보해 같이 활동을 하면 지역도 지키고 지역 문화유산도 발굴하는 등 더 활발한 활동이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민유산 내성천 범람원.
시민유산 내성천 범람원.

또 영구보전을 위해 확보한 자산의 안정적인 보전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06년 제정된 ‘문화유산과자연환경자산에관한국민신탁법(이하 국민신탁법)’의 개정을 위해 2018년 3월부터 정부부처 및 관련 NGO단체와 협의를 진행했고 다행히 희망적인 신호가 감지됐다.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신탁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 개정안엔 자산의 안정적인 보전뿐만 아니라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통한 자산확보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보존가치가 높은 대상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기부금의 모집, 자산취득에 따른 세제혜택 그리고 영구보전을 위한 대항력과 양도불능 원칙의 적용 등의 내용이 주요 골자이다. 양도불능의 원칙이 완성되지 못하는 등 미흡한 점은 있지만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확산을 위한 여러 유리한 조건들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어떤 개인의 이익도 없지만 스스로 훼손 위기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찾아내고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 단체는 말한다. “우리는 자연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을 지녔다. 지켜내기 위해 함께 행동하는 회원들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다. 누구든지 동참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일 것이다”라고.

[2021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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