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원광새마을금고 양준 전무
대구원광새마을금고 양준 전무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어느 곳이든 탄탄대로인 곳이 있겠냐마는 대구경북교구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재가출가 교도들의 정성이 많이 필요한 곳이다. 이에 오래 전부터 교구 봉공회, 여성회, 청운회, 대구원광새마을금고 등이 합력해 독거노인 반찬 봉사, 사회복지기관 목욕 봉사, 교정 교화 등의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봉공활동의 큰 축인 대구원광새마을금고(이하 새마을금고) 봉공인 중에서는 양준(55·법명 성진·대구교당) 전무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새마을금고 근무 27년째에다 교구 청운회 봉공 활동도 얼추 비슷한 세월이다. “그 외에도 우리 새마을금고가 하고 있는 후원 사업으로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대구 원음방송 후원과 장학 사업 등도 있습니다. 교화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중요한 방향 중의 하나로 교단 내 금융기관을 들 수 있습니다.”

직업과 삶의 철학을 동시에 이루는 일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취업한 직장이 평소 그의 삶의 철학과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스승인 정인성 교무의 권유로 직장을 접고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왔다. 한울안생협 설립을 위해서다. 

“대학 때부터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생각이 좀 많았고 특히 생명 관련 공부를 하면서 가장 근원적인 운동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생활협동조합 설립을 구상하시던 교무님과 뜻이 맞았습니다. 생명도 살리고 조합원 간의 직거래를 통해 농민도 살리면서 소비자에게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이니 매력적이었습니다.”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대구에 내려와 생협 출범을 위해 1년 6개월 동안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영산 성지 유정란 등 건강한 상품들로 야심차게 준비해가던 대구 한울안생협이 담당 교무가 전출하면서 문을 닫게 됐다. 30년 전이라 아직 유기농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척박한 시절인데다 이제 막 출범했으니 적자가 누적되는 건 당연했으나 교구 사정상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한울안생협을 준비하던 시기와 거의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대구원광새마을금고가 설립됐는데 생협을 접게 된 그에게 새마을금고 입사 제의가 들어왔다. 새마을금고도 이제 막 출범이라 경제학을 전공한 직원 증원이 절실하던 때다. 그는 1993년 7월에 설립된 새마을금고에 1995년 1월에 입사하면서 거의 창립 멤버가 됐다. 

“처음엔 잠시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새마을금고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평소 내가 지향하던 협동조합이 바로 이 곳이구나 알게 됐습니다. 직장인 새마을금고에 근무하면서 교도로서 각종 봉공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직장과 교단 일을 동시에 주도적으로 활발하게 했습니다. 결국 직업과 신앙이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 즉 업무가 바로 신앙생활이더라구요.”

직업과 삶의 철학을 동시에 이루는 일, 공부가 곧 사업이고 사업이 곧 공부인 삶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진입했으면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소명의식이 있다면 좀 열악하더라도 교단 기관에 근무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이면서 동시에 신앙적인 삶도 살 수 있으니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후배들에게 가치지향적인 삶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7년을 달려온 소명의식, 
제대로 된 금융기관 만들어야
2025년 700억 자산이 목표, 
고객을 향한 정성이 경쟁력

‘특별한 인내와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인 바’
모든 초기는 시련과 난관이 있기 마련이라 월급을 4분의 1만 받고 일한 세월이 10여 년이었다. 제대로 된 우리 기관 하나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 그것이 그를 지치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오게 만든 동력이다. 

“우리가 시작하는 이 사업은 보통 사람이 다 하는 바가 아니며 보통 사람이 다 하지 못하는 바를 하기로 하면 반드시 특별한 인내와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인 바 -중략- 우리는 이 조합의 모든 조항을 지성으로 실행하여 이로써 후진에게 창립의 모범을 보여 주자.”(『대종경』 서품7장)

새마을금고를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늘 그의 책상 앞에 붙어있던 대종사 말씀이다. 

“대각 후 저축조합을 만드셨던 대종사님의 초기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교구 사정도 어려웠고 원불교 교도만 조합원으로 하는 단체 새마을금고이니 성장의 제약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종사님 저축조합처럼 자치 조직이니 교도들이 함께 참여해서 이익을 만들어내고 그 이익을 재투자하며 간접 교화의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만드는 일,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입사 후 10여 년이 지나면서 부장, 상무, 전무 등 새마을금고의 실질적인 일을 책임지는 실무를 맡게 됐을 때 이정택 교무가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향후 비전과 관련한 업무 보고를 받은 이사장이 “힘껏 밀어 줄테니 자네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한 번 해 봐”라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금융위기 등으로 외부 사정이 최악이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60억이던 자산을 3년 만에 120억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15년여에 걸쳐 150억, 200억, 300억을 이어오다 올해는 420억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임원들이 합력해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아직도 매우 열악하지만 3억으로 시작했던 초기를 돌아본다면 지금은 안정권에 들어선 셈입니다.”

설립 이래 세 번째 비전을 세운 새마을금고는 원기110년인 2025년에는 700억 자산을 목표로 뛰고 있다. 지점 개설로 일자리도 늘리는 등 내실과 성장을 함께 다져 장학금을 비롯한 각종 후원 사업으로 지역사회 교화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매일 아침 고객을 위한 심고부터
직업인이자 종교인으로서 그가 하는 일은 간절한 심고가 기본이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금고 발전, 임직원 합력, 직원들의 행복, 고객들의 가정에 지혜와 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심고를 정성껏 올린다. 

“자본력이 큰 일반 금융기관과 경쟁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마음’ 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지속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서 일반 은행에 가던 발걸음을 우리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는 결국 대학 졸업할 때 막연하게 가졌던 삶에 대한 비전이 실현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과 함께 진행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구경북교구에서 내실 있는 기관을 완성형으로 만드는 일, 즉 지금의 새마을금고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교구 또는 교단 차원의 큰 그림을 그려달라는 기대를 전했다.

“우리 교단의 금융은 중앙인 익산에 편중돼 있어요. 물론 익산 금융기관의 발전적인 성장은 무척 기쁜 일이고 큰 자산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교단 입장에서는 지역의 기관을 고르게 성장시키는 것이 지역 교화의 근본이 되는 것이지요. 지역의 열악한 기관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결국 큰 그림 아니겠습니까?”

[2021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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