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교당 최병원 교도회장
여주교당 정우진 교도회장
강남교당 이현지 교도

 불합리한 교헌개정 위해 역량 집중할 때

최병원 교도회장
최병원 교도회장

정수위단 선거에 이어 호법수위단원과 봉도수위단원이 선출됐다. 당선된 수위단원 여러분에게 축하의 뜻을 전한다. 하지만 필자의 마음속에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는 것은 유권자이면서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권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필자가 기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투표할 대상자를 골라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수위단원 선거는 남녀 각 54인의 추천된 후보자 중에서 남녀 각 9인, 모두 18인을 선출하는 선거방식이다. 그런데 현행의 선거방식으로는 유권자가 후보들의 면면을 거의 알 수 없다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선거란 사람을 뽑자는 일인데 후보자들의 사람됨을 모르면서 어떻게 투표할 대상을 18명씩이나 가려내겠는가.

아쉽게도 현행 수위단원 선거에서 후보자를 유권자에게 알리는 방법은 거의 없다. 선거공보가 있다 할지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후보자의 성명과 사진, 경력 정도를 기재하는 정도를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후보자의 소견발표도 실을 수 없다. 혹시 경력을 보고 선택을 하면 된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거기에는 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교단의 요직을 거쳤다거나 큰 교당의 주임 교무를 했다는 등 호화로운 경력이 그 개인의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교단의 인사가 공평 무사(無私)했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추천제도도 문제가 있다. 수위단원을 추천하는 추천위원을 수위단에서 선임하는 것도 불합리하고, 또 일단 추천하면 당사자가 사퇴할 수도 없다는 조항도 비인권적 독소조항이다. 가장 완벽한 교리로 합리적으로 교단을 이끌어간다는 평가를 받는 원불교의 선거제도가 이처럼 불합리하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다.

아무튼 대상을 판단할 근거가 전혀 없는 필자로서는 부득이 투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연필을 굴려 답안을 고르듯 아무렇게나 기표를 하면 그나마 표심이 더 왜곡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추천된 54인의 후보자들은 누가 되든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훌륭한 소양을 지닌 분들이겠지만 선거라는 건 유권자가 더 나은 후보를 골라 뽑자는 제도인데 이처럼 불합리한 선거제도하에서는 선거의 목적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둘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교단의 명운은 이제 새로 구성된 수위단원의 활동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지금 우리 교단에 닥친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선거제도를 비롯해 교헌이 비민주적인데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면 수위단원은 다른 안건에 우선해 선거제도를 포함해 불합리한 교헌을 개정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한다. 종법사 1인에게 집중된 교권(敎權)을 균형적으로 조정해 교단의 민주적 리더십을 끌어내는데 전심전력을 다 해줄것을 바랄 뿐이다


공부와 수행, 법위검증 정직성 회복해야

정우진 교도회장
정우진 교도회장

3년 임기의 새 수위단회의 출범은 교단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동일한 불성 위에서 진리를 놓고 정정당당하게 문답하는 대도정법으로 갈 것인지, 출가자 중심의 상명하복문화에 충실하고 재가는 침묵한 채 따르기만 하는 유사종교집단으로 갈 것인지 판가름 날 것이다. 이 분기점에 서 있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새 수위단회는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 확장에 있어 그 역사적 책임이 크다고 본다. 

근 100여 년 만에 우리 사회에 중심 종교로 일어선 교단이 언제부터인가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정신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과 같다. 이유가 뭘까. 외적으로는 더 화려해지고 더 대중의 눈에 드러난데 비해 내부의 모습도 그만큼 충실해지고 단단해졌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8만 5천명까지 줄어든 교도 수, 출가교무들의 급여 양극화와 경제적 고통, 정직한 검증없는 법위양산, 출재가의 수직화 등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 면에서 대중은 이번 수위단회에 빚을 지고 있다고 본다. 때문에 축하 대신 개혁을 위해 몇 가지 제언한다.

새 수위단회는 맨 먼저 교단의 지난 잘못들을 명명백백하게 처리해야 한다. 전서폐기 참사를 일으킨 관련자에 대한 징계와 손실금 보전, 수위단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선거부정행위 관련자에 대해 규정대로 징계해 교단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또 이와 관련된 전 수위단원들은 새 인사에서 가장 낮고 어려운 곳의 교화현장을 자청해서 가야 회상과 대중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재가출가가 평등한 교헌과 교규의 개정이다. 재가가 교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수위단회 선거인단 구성부터 재가출가가 평등해야 한다. 종법사 1인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도록 한 낡은 규정을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 또한 출가 교무들의 급여 양극화 해소방안을 제시하고, 당장 올해 인사부터 공정한 순환인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인치가 아닌 법치교단이 되도록 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공부와 수행풍토를 어떻게 진작시킬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교단적 차원에서 공부에 출중한 재가출가 수행자를 모아 체계적인 견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간만 지나면 승급이 되는 법위 검증도 정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 외에도 성주 소성리 힐링센터 건립문제와 소태산 기념관이 아닌 다른 곳에 원음방송국을 건립하는 문제도 대중의 의견을 반영해 예산낭비가 없도록 재검토해야 한다. 경인교구 중심교당인 분당교당의 정상화 문제도 교도들의 고통을 그만 멈추고 교단차원에서 적극적 나서 해결해야 한다. 새 수위단회가 교단 역사에 길이 남을 개혁수위단회로 자리매김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사력을 다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가

이현지 교도
이현지 교도

6개월여 만에 교단 지도부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맥없이 무너졌다. 게다가 모든 사실과 과정을 있는 그대로 알기란 교단 내부보다 외부 언론을 통해서가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교도들은 진리관은 물론 교헌, 교규까지 조목조목 체크하며 함께 공부했고,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행동했다. 법과 진리로부터 자유로울 자가 누구인가. 대중은 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는데 누구에게나 균등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는 더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혁신을 해야 한다. 위기는 최고의 기회이다.

새로운 수위단회가 구성됐다. 한편에서는 혁신의 물결을 타기엔 임기도 짧고 애매한 성격의 수위단회라고 한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지중한 책임이 있는 지도부이다. 법치를 세우는데 가장 근간이 되는 교헌, 교규 개정부터 교단의 운영 시스템과 풍토 개선, 각 분야별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활동, 무너진 교단의 신뢰 회복, 소통 채널 마련 등등 당장 다급하다는 요구들만 해도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본질을 회복하는 기틀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원불교는 깨달음과 실천의 종교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칫 소태산 교조주의로 흐를 염려도 무시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원불교의 뼈대요 정신인 법신불 일원의 진리관을 바르게 재정립하고, 법에 어긋나는 것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교법과는 별개로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비법적인 행태들을 철저히 솎아내고 진정한 원불교의 모습을 바루어가야 한다. 초기 불교가 본질을 벗어나면서 탄생지 인도에서 사라져야 했던 역사를 교훈으로 새기자.

디지털노마드와 탈종교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세계는 종교가 아닌 영성 시대이다. 변화가 너무 빨라서 인식조차 어려운 이 시대를 함께 하려면 그간의 모든 물질 노예적인 태도를 벗어나 시대에 맞는 교리 해석을 하고 세대 간 계층 간의 소통과 이해가 온전한 정신으로 이뤄져야 한다. 각자 우위를 꿈꾸며 치열하게 다투는 세상에서 누구나 차별 없이 우위인 세상·평등·평화. 그것이 시대정신이고 동시대를 이끄는 공동체로서 종교가 담아야 할 가장 큰 몫이다. 시대정신에 배치되면 전체 사회의 요구에서 멀어지게 돼 존재의 의미마저 상실할 수 있다. 멸망으로 갈 것인가 성숙한 공존으로 갈 것인가는 다만 우리의 선택일 뿐이다.

다시 시작하는 거다. 낱 없고 사 없는 가운데 빈틈없이 판을 짜야 한다. 윤리적 차원에서 마지못해 가하는 수정이 아니라 온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차원의 변화, 개혁이다. 그런 모습이라야 어느 때 어디를 향해도 그름이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력을 다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가. 그것이 최고지도자를 위시한 수위단회의 사명이다. 법치교단의 토대가 되어야 할 수위단회이기에 스스로에게 더욱 엄중하고 매서워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수위단회가 절실하다.

[2021년 1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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