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교무
홍대선 교무

[원불교신문=홍대선 교무] 한글이 미숙한 어린이에게 사물을 연결해주기 위해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내는 단어인 의성어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개를 보며 “개가 ‘멍멍’하네”, “저기 소가 ‘음매 음매’”로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의성어의 뜻과 다르게 상대를 비아냥거릴 때 사용하는 학생을 만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자기가 듣기 싫은 말을 상대가 하면 ‘멍멍’ 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 단어를 순수한 뜻으로 사용했을 텐데 자신이 만났던 환경에 대한 인식에 따라 본의는 잊고 자기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할 때 쓰게 되는 것이다.

언어라 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원망하는 관점에 놓이면 상대를 살리는 말보다 죽이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리(聲) 나는 대로 표현하기 이전에 본의(性)를 바르게 세우는 공부를 해야 한다. 단순히 소리만 표현하면 그 소리는 환경(環境)과 전달의 방법에 따라 왜곡이 생겨 문제를 만들지만, 본의를 세워 표현하면 그 소리는 환경(還敬)을 만들고 왜곡 없이 전달되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심법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대산종사는 “양(羊)은 풀을 먹고 완전히 소화 시킨 후 젖을 내는 조화를 부린다. 풀 그 자체가 조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소화 시키는 데 있다. 구전을 심수(口傳心授)해서 법을 받아 전해야 크게 감명받는다”라고 말씀했다. 다양한 인연과 환경에서 일어난 소리는 내 마음에 먹이를 제공한다. 그 먹이를 먹다 보면 마음이란 속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평소 마음 관리를 잘해 소화를 잘 시키면 건강한 어미의 젖이 새끼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처럼, 내 마음의 초원에 자란 풀은 누군가의 마음을 건강하게 살릴 수 있는 먹이가 될 수 있기에 구전심수로 주고 받는 심법이 필요한 것 같다.

대산종사의 완전히 소화 시킨 후 조화를 부린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전하려는 소리에 진리의 본의가 잘 담아져 감명과 감화가 늘 조화를 부리는 구전심수의 회상이 되면 좋겠다.

/훈산학원교당

[2021년 11월 8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