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은 운영위원
이해은 운영위원

[원불교신문=이해은 운영위원]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의 하루, 영동의 시골길을 걸었다. 가볍게 산책하듯, 그러나 마음은 ‘차별금지법이 올해는 반드시 제정되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서원을 안고 20㎞의 길을 걸었다.

우리나라 헌법 11조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있다. 이 조항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차별금지법, 평등법 따위를 만들자는 논의는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은 2007년에 처음 국회에 제출된 이래 발의자가 혐오 조장 세력의 압력에 굴복해 법안을 자진 철회하거나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되면서 일곱 차례나 계속 무산됐다. 다시 이번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된 지 1년 4개월이 지났고 국민동의청원이 국회에 제출된 지도 3개월을 넘겼는데 또 60일을 미뤘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점은 미뤄진 시간만큼 우리 사회 누군가는 차별로 고통받는 시간 또한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두 명의 인권활동가가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가 법안논의를 하겠다는 11월 10일에 국회에 도착할 예정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 행진에 나섰다. 서울을 향한 두 사람의 발걸음에 각 지역의 시민들이 합류해 함께 걷고 있다.

스스로 차별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세상은 온통 차별과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혐오로 가득 차 있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등 차별의 모습은 다양하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차별금지법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차별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고 어떻게 차별행위를 중단시키고 피해자를 보호할 것인지를 주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학교나 일터에서 차별금지와 다양성 존중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차별 예방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법이기도 하다.

원불교 교리 가운데 사요의 교리는 바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로 인도하는 길로서 평등사회를 건설하는 교리를 대종사가 밝혀준 것이다.

자력양성에 의한 인권평등, 지자본위에 의한 지식평등, 타자녀 교육에 의한 교육평등, 공도자 숭배에 의한 생활평등. 국민성의 근원적 개선만이 평등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하며, 이것이 주세교단의 시대적 사명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권리와 지식과 교육과 생활이 평등하지 않고는 낙원 세계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대종사는 건강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 반대로 불평등한 사회는 병든 사회로 봤다. 그러므로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의 사요 교리를 통해 어떻게 하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고 다 함께 발전할 수 있으며 더불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대종사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행하는 길은 개인 구원, 가족 구원이라는 좁은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낙원 사회로 만들어가는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원불교도의 제대로 된 신앙과 수행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이 가을, 기꺼운 마음으로 20㎞의 길을 걷는다.

/원불교인권위원회

[2021년 1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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