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주요 관심은 종교성(宗敎性), 영성(靈性)의 함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종교에서 세속사회 영역에 속하는 교육이 존재할까. 물론 서구의 중세 시대 교회는 교육을 담당했다가 점차 세속사회로 그 역할을 넘긴 바 있다.

그에 비하여 원불교에서 세속사회의 영역에 해당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심지어 원불교 핵심 교리인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비롯해 구체적으로 태교로부터 열반에 이르는 교육 등을 교리 곳곳에서 밝혀주고 있다.

교육이라면 흔히 학교 교육을 든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도 교육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원불교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이 공간이 교법의 사회구현을 위해서 교육과 관련해 풀어야 할 과제를 중심으로 공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런데 원불교 교단 내에서 교육에 대한 정의는 대체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고 인격을 길러주는 모든 활동과 과정, 말과 글로써 의식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심신을 길러가는 것 등으로 정의되고 있다. 일면 지자본위를 강조하는 한편 훈련과 교육의 경계가 모호하고 심지어 지식교육 조차도 건지(乾知), 지식의 노예 등으로 왜곡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양면성마저 있다. 그러나 사실 교육을 보는 눈도 정의방식도 다양하다. 비록 다양한 정의방식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더 나은 인간화의 노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원불교에서 교육을 어떻게 이해할까.

첫째, 교리적인 면에서 보면 교육을 인간의 삶 전체로 보는 매우 포괄적인 접근을 한다. 굳이 교육기관에서 지식이나 기술의 전수를 넘어 인간의 삶 전체를 교육으로 보기 때문이다. 평생교육, 영육쌍전, 이사병행 등 교리 전반이 교육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참다운 지식교육이나 기술교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앞으로 탐구 과제로 남는다.

둘째, 교리의 현실 구현의 측면에서 보면 교육과 관련해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지만 총체적인 관점을 지향한다. 왜 예비교무 교육 지원자가 급감하는가를 들여다보자. 넓혀보면 예비교무 교육은 단순히 특정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요인이 상호작용한다. 물론 우선순위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과정이나 양성제도 등의 문제가 결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시적으로 보면 이에 대한 일차적인 책무는 해당 교육기관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단 전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한마디로 예비교무 지원자 감소 현상은 교단의 교화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 재정. 교무들의 삶의 질과 의식구조, 문화 등이 결합하여 출현된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간과하고 예비교무 지원자 감소 등 예비교무 교육에 대해 논의한다면 이는 선후 본말이 전도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셋째, 원불교적 교육은 영생을 일관한다는 점에서 급속한 성취 기대감보다는 준비하고 협업하는 가운데 이뤄내는 기다림의 미학임을 절감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위에서 지속 가능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사람(기관)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교육을 보는 눈을 교조 정신에 비춰 바르게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원광대학교

[2021년 11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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