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 기자
이은선 기자

[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외출하고 돌아오면 나를 반겨 주고, 마음이 허전할 때 바로 옆에서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주는 반려동물.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에는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존중하며 동물을 장난감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보는 의미가 담겨있다. 실제로 함께 잠을 자고, 산책을 하는 등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반려동물이 누군가에게는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면 또 다른 어떤 이에겐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반려동물로 인한 갈등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공동주택에 울려 퍼지는 개 짖는 소리는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공원에 방치된 배설물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 휴양지에선 반려견 출입을 놓고 관리인과 피서객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동물을 대하는 입장의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식당 등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는 동물이 자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기자는 ‘공존’이라는 단어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동물과 인간은 모두 이 지구를 잠시 빌려 살아가는 공존 관계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 폭이 줄어들지 않을까. 다만 공존 관계라는 점을 인정한 뒤에는 그것을 실천으로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동물의 배설물을 길가에 그대로 방치하지 말아야 하고 반려동물이 내는 소리로 주민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대안을 찾아야 한다. 또 반려동물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동물을 방해꾼으로만 여기지 말고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도라면 더욱더 이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만유로서 천지·만물·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다”고 했다. 또한 ‘동포은’은 사은 가운데 하나로, 동포는 같은 포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체를 의미하며, 좁게는 같은 모태, 같은 종족으로부터 넓게는 자연의 포태를 공유하는 일체생령을 의미한다. 원불교에서 이들 동포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서로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끼친다고 본다.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는 일은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수록 동물과 인간의 행복도 커지지 않을까. 

[2021년 11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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