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희 교도
정천희 교도

[원불교신문=정천희 교도] 올해로 82살이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 양장점을 하다가 22살에 남편을 만나서 결혼했고 3남 1녀를 뒀다. 열반한 우리 남편은 전남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큰 요정집을 했다. 전라남도에서 남편 이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재산도 많았다. 그 당시 아가씨들이 가야금을 켜고 노래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외지로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다.

“애들아 너희들을 가까이서 키울 수는 없지만 너희들을 위해 엄마는 항상 진리부처님, 일원상부처님께 기도생활 하고 있단다.” 남편이 열반하기 10년 전부터 몇 개의 재판에 휘말리게 됐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너무 아프다. 이 법을 만나지 못했으면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10년 넘게 재판하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남편이 재판에서 지기만 하니 주변에서 기도해도 소용없다며 비웃기도 했다. 아무일도 할 수 없었던 난 오직 진리에 의지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남편이 떠나고 만덕산 황토방으로 들어왔다. 황토방에서 15년째 기도생활하며 승산종사께 일원상 진리를 배웠다. 또 중길리교당을 다니며 상시훈련공부를 하고 있다.

처음 만덕산에 들어와 5년간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초선터를 다니며 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초선터를 갈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황토방 옆 큰 바위에 성불바위라 이름을 붙이고 그 성불바위를 나만의 기도터로 삼아 기도를 올렸다. 그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올리고 기도하고 있다. 

또 중길리교당을 다니며 교무님에게 공부한 것, 생활하는 것을 일일이 문답하고 있다. 아침에는 기도하고 수양정진한 것, 낮에는 보은 봉공한 것, 저녁에는 참회반성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것이 상시공부, 상시훈련이라는 말씀에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도를 해 보니, 진리의 체험이 있기에 기도를 안 할 수가 없고, 공부를 안 할 수가 없고, 모두가 은혜이기에 감사생활을 안할 수가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하루하루 살아 갈수록 진리부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별 탈없이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자녀들이 어떤 시험이 있거나 큰일이 있을 때는 50일씩 100일씩 특별정진기도를 올리고 있다. 기도할 때는 몸과 마음을 더 챙기고 먹는 것도 사육은 삼가고 매일 정성껏 헌공금을 올리고 기도정진을 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얼마 전에는 둘째 아들이 경찰 총경에 승진해서 세종시 경찰서장이 됐다. 이러한 많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고 있다. 자녀들도 나에게 기도해달라고 전화하고 손자녀들도 가장 먼저 나에게 합격 소식을 전할 때는 부족한 할머니지만 정말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

저번 추석에 자녀들에게 갔을 때 손자녀들이 “어머니, 할머니 원불교에서 기도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 기도의 위력이 큰 것 같아요” 라고 말을 들으니 너무 행복했다. 자녀들에게 말했다. “나는 원불교 아니였으면 이렇게 기쁘고 감사하게 살지 못했을 거야.” 지금도 생각하면 그 많은 재판 속에서 전 재산을 잃고, 남편도 병으로 열반한 상황에서 내 맘을 잡아 줬던 것은 교당에서 배웠던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모두가 은혜입니다”라고 한 마음의 표준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아침마다 황토방을 내왕하는 중길리 교무가 항상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오늘은 뭐 좋은 일이 있으세요”하고 묻는다. 난 모든 것이 감사하다. 사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항상 싱글 벙글 웃으며 지내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중길리교당

[2021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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